<제주 밥상 이야기> (34) 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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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국. ⓒ 김정숙

얼마 전 수망리 마을 체육대회가 있었다. 시내 공동주택에 살다가 마을주민이 되고나서 처음 참여하는 행사였다. 아침부터 스피커소리가 온 동네를 깨웠다.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운동장에 모였다. 반별로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한가득 쌓아놓고 이기고 지는 경기 보다는 얼굴 보고 박수치고 웃는 일이 그저 좋은 날이었다. 한 쪽에선 점심을 차리느라 분주했다.

옆 반에는 고사리육개장을 끓이고 우리 반에서는 몸국을 끓였다. 도시나 다른 곳으로 나가 사는 사람들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다 보면 먹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짐작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국은 가마솥에 넘칠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끓었다. 배가 부르면 남이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국그릇 반찬통이 이 반, 저 반으로 옮겨 다니며 체육경기를 빙자한 먹자 경기도 한 판 벌어진다.

오는 사람마다 ‘몸국 먹읍써, 몸국 먹으라.’ 이 얼마 만에 보는 풍경인가. 다 변한 줄 알았는데 따뜻하고 푸른 하늘이 여전히 양팔 벌리고 있는 것이다.

‘몸’은 모자반을 이르는 제주어다. 아래아 발음이 사라지면서 ‘몸국’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얻어 쓰는 게 아쉽다.

몸국은 돼지고기 뼈와 고기를 푹 고아낸 국물에 모자반을 듬뿍 넣어 끓인다. 모자반이 모자라면 푸성귀를 같이 넣기도 한다. 메밀가루를 물에 개어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약산성인 돼지고기와 알칼리성인 모자반의 환상적인 결합이다.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식감과 맛까지 나무랄 데 없는 궁합이다. 제주에서만 이 독특한 맛을 볼 수 있다. 해초를 어떻게 돼지고기와 짝 지었을까. 생각할수록 그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크고 작은 행사나 집안일에 돼지를 잡으면 고기나 순대 등을 삶은 뒤 육수가 남게 된다. 여기에 뼈와 그 자잘한 고기 덩이들을 같이 더 끓여 국을 만든다. 본 행사 보다는 행사를 준비하는 날,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오가는 사람들까지 나눠 먹던 음식이다. 밥이 없어도 요기가 되는 기특한 국이다.

음식점에서 사 먹을 수도 있고 집에서 끓여 먹을 수도 있지만 한 솥 가득 끓여 나눠 먹는 맛에 어떻게 비길 수 있을까.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이들도 잘 먹었다. 밥 말아 김치 척 척 얹어 먹는 줄은 또 어떻게 알아서...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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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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