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56) 앨리스 플래허티 『하이퍼그라피아』/노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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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 플래허티, 박영원 역, 『하이퍼그라피아』, 휘슬러, 2006.
“창조적인 작가란 다름 아닌 글쓰기에 문제를 겪는 사람이다.” 이 책은 20세기의 위대한 문학평론가인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제사(題詞)로 삼아 출발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는 소설가 토마스 만의 말도 덧붙이고 싶다. 괴상한 말로 들리지만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들이다.

물론 작가들은 글쓰기의 인지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통의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지녔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글쓰기에 남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느낀다. 작가로서의 중압감과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에 대한 고뇌 때문일 것이다. 겨우 한 문장조차 쓰기 어려운 작가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이다. 

사람들은 작가들을 인터뷰할 때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썼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정작 작가들은 글이 얼마나 써지지 않아 고생했는지 말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은 창작의 어려움에 대해서 고백한 많은 글쓰기를 남기고 있다.

소설가들은 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창작의 고통에 대해 수많은 작품들을 쓴다. 소설 속에서 소설가들은 소설 쓰기가 어려워 괴로워하고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엉뚱한 사고를 치고 다닌다. 그런 사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설을 움직이게 만든다. 시인들이라고 다를까? 시 쓰기의 고뇌 그 자체가 시의 핵심 주제가 되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시작(詩作)의 곤혹이 시 쓰기의 동력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 평론가는 다를까? 소설가나 시인들보다는 덜하겠지만, 그들은 대신 더 변명조로 그리고 더욱 현학적인 방식으로 ‘이 시대 비평 쓰기의 곤경’과 ‘비평(criticism)의 위기(crisis)’를 관습적일 만큼 들먹이지 않던가? 그것 역시 우회적이지만 결국 비평 쓰기의 어려움을 말한 것일 수 있다. 단지 논문처럼 형식적 제약이 많은 글쓰기에서나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쓰기가 힘들 뿐이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든 작가들은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신나게(?)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시간에 마땅히 써야할 글을 썼다면 더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그 글쓰기 재능으로 글을 썼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텐데’ 하는 정당한 질문을 독자들이 제기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그 질문 역시 그저 외부자의 시각에서 피상적으로 생각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블로그에는 매일 새로운 글을 올리면서도 정작 박사 논문은 몇 달째 쓰지 못하고 있는 대학원생처럼, 동일인이라도 블록 현상과 하이퍼그라피아에 동시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196쪽) 

이 책은 이처럼 작가들이 글을 쓰지 못해 고통스런 상황에 빠지는 작가의 블록 현상(writer’s block)이나 그 반대, 즉 미친 듯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의학적으로 지칭한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 현상과 같은 글쓰기의 신비를 다룬다. 글쓰기의 신비를 다루되, 단지 작가나 예술가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의 관점에서 탐구했다. 게다가 저자 자신이 쌍둥이 아들을 잃은 뒤 ‘산후 기분 장애’를 겪고 우울증과 조증에 이어 하이퍼그라피아 현상을 환자로서 실제 경험한 것이 중요한 관점이 되었다. 과학자로서, 의사로서 그저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은 것이 이 책을 더욱 흥미 있게 만든다.

저자인 앨리스 플래허티는 신경과학자로서, 의사로서 과서증과 글쓰기 장벽의 양극단적 현상을 뇌 구조와 함께 더불어 설명한다. 우리가 글을 어떻게 그리고 왜 쓰는지, 창의성에 관해서도 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작가이자 환자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저 연구 결과들이나 뇌과학적 지식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선다. 절절하고 열정적인 자기 고백은 3인칭적 관점의 기술을 극복하게 하며, 그 자체로서 흥미롭게 하이퍼그라피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철학자 니체, 화가 고흐 등 열정적으로 때로는 거의 미친 듯이 글쓰기에 매달렸던 많은 작가와 예술가의 사례가 신경과학적으로 서술되는 대목들도 매우 흥미롭다. 간질이 있었거나 측두엽 발작을 경험하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글쓰기에 광적으로 집착했다는 것이다. 또한 조증과 우울증 역시 글쓰기의 주요한 동력이 됨을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많은 작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우울과 애도가 글쓰기의 크나큰 동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저자는 이를 과학적 논거들로 제시한다. 

“제이미슨의 연구에 의하면 작가들 중 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비율은 일반인에 비해 10배나 높고, 시인들의 경우엔 무려 40배나 된다고 한다. 또한 시를 쓰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조울증 성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47쪽)

문화적 활동이기도 한 글쓰기가 단지 작가의 신체나 뇌 상태만으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몸의 존재이므로, 글쓰기 역시 ‘언제나 신체적 활동’의 하나이다. 창조적 영감을 얻는 순간이 뮤즈의 왕래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지라도 그것 역시 신체적 현상의 하나이다. 글쓰기는 인지적 능력에 의존하지만 우리의 감정과 신체적 상태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글을 쓰기 위해서 술이나 커피를 마시거나, 심지어는 약물을 복용하는 작가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 상태를 변화시킴으로써 글쓰기를 위한 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글쓰기라는 행위의 문화적이며 신체적인 이중적 성격은,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이 문학을 창조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블록 현상과 같은 문제를 의지의 실패로 보기보다는 치료 방법을 체계적으로 확인해 봄으로써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362쪽)

글쓰기의 신비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도, 그리고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에 동조하는 작가들도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글을 미뤄 마감을 앞둔 이 새벽에야 겨우 글을 마무리하는 바로 나 같은 그런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 책에 환호할 것이다.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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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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