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11) 민들레 / 홍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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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 ⓒ 김여미

빗장 푼
대궁이 끝
달뜬 솜사탕 같은,
행인 발길 조심하라 노란 조끼 덧입혔던
그 아이 꿈을 먹는다
하얀 꽃씨
날리는.

- 홍성운 [민들레] 전문-

하필이면 행인들의 발길이 쏟아지는 곳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기까지 수많은 발길을 피해야 한다. 목숨을 부지하는 게 최대의 목표. ‘나 여기 있어요.’ 무지막지한 발길들에게 소리치듯 서둘러 노란 꽃을 피우고, 드디어 씨앗을 물기까지 얼마나 많은 조바심에 시달렸을까. 생채기 가득한 얼굴이 가엽다. 그 노심초사의 마음이 목젖까지 꽉 차 오를 때, 드디어 달덩이 같은 씨앗을 물었다. 두둥실 바람을 타면 그간의 모든 조바심과 노심초사에서 자유로워지리라. 

다행이다. 바람에 흩어진 씨앗들은 저마다의 꿈을 안고 자리 잡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꿈을 펼쳐 놓을 것이다.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리라. 그 윤회의 고리 속에 더러 스스로의 이름을 지우며 스러져 가기도 하고 더러는 군집을 이루어 쏟아지는 발길 따위에서 자유로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민들레 꽃잎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아이를 연상한 시인처럼, 노란 조끼에서 스크린 도어를 닦던 청년을 생각한다. 밟히지 않으려 기를 쓰고 살았지만 전동차의 금속성 발길에 무참히 쓰러졌다. 탱탱하게 영글어 바람타고 훨훨 날아가야 했던 꿈이 차가운 현실의 바닥에서 꽃잎처럼 스러졌을 때 그의 눈에도 봄  햇살은 내려와 앉았었을까.

따뜻한 봄.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발길에 밟히지 않으려 오늘도 뺑뺑이 돌 듯 아르바이트에 입사시험에 상처 입은 얼굴로 살아가는 이 땅의 무수한 청년 민들레들.  이들에게도 진정 따뜻한 봄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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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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