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5) 자리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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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물회. ⓒ 김정숙

바짝바짝 기온이 오른다. 겨울이 끝 모를 추위가 구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면 여름은 더위의 끝을 올려다보며 하는 등산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보면 어느 날 밤 달라진 공기를 만난다. 잘 해 냈지 라며 별을 올려다보는 것도 잠시, 내려서야지 하는 시원섭섭함이 밀려온다. 어김없이 가 버릴 그 여름이 이제 시작이다. 꼭짓점을 새로 찍는다는 더위조차도 아직은 풋풋하고 발랄하다.

이런 날 점심은 자리물회다. 구이, 조림, 강회 등 여러 가지로 먹지만 자리돔 하면 단연 첫 번째는 ‘자리물회’다. 자리돔은 제주 인근 바다에 사는 생선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사람들의 자리돔 사랑은 유별나다. 모슬포 사람들은 모슬포 자리가, 보목리 사람들은 보목리 자리가 최고란다.

자리돔들도 그 지역 사람들을 닮아서일 거다. 모슬포 바다냄새를 맡으며 먹어도, 보목리 잔잔한 바다를 품고와도 자리돔은 맛있다. 모슬포, 보목리 아닌 그 어느 바다에서 왔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리돔은 맛있다. 익숙한 맛도 맛이고 마음이 가는 곳도 맛을 더해주기 마련이니까.

밤사이 잡아 올리는 자리돔은 비교적 온도에 둔감한 생선이다. 작은 고추가 매운 것처럼 작은 생선 자리돔은 당돌하다. 더운 계절에도 쉬이 물러지지 않아 물회나 강회 등 날것으로도 고소하다. 비늘, 지느러미, 내장, 머리를 떼고 나면 먹을 건 절반이다. 잘 다듬어 냉동하면 한두 달 정도는 회로 먹을 수 있다.

회로 먹을 자리돔은 위아래 길이로 얇게 저며 썬다. 오이, 미나리, 부추, 양파등 채소류도 자리돔과 비슷한 길이로 썰어 놓는다. 다른 채소가 들어가도 되고 없는 것들은 빼도 상관없다. 된장과 고추장, 식초, 설탕으로 맛을 내고 식성에 따라 잘게 채 썬 마늘과 초피잎, 풋고추를 넣는다.

요즘은 자리물회 국물이 좀 벌겋다. 고추장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자리돔과의 궁합은 된장이 좋다. 전통된장이 밀려나면서 양조된장으로 채우지 못한 맛을 고추장으로 보충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자리물회에는 초피가 화룡점정이다. 초피가 빠진 자리물회는 정말 앙금 없는 찐빵이다.

해마다 자리돔수가 줄어간다는 말이 들린다. 올해는 줄어 든 정도가 아니고 심각한 가뭄이란다. 가격도 많이 올랐다. 이러다가 희귀생선이나 전설적인 생선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제주사람들만 먹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그 조그만 생선의 맛을 다 알아버렸으니.

사람들은 모자라면 참고 기다릴 줄 안다. 씨가 마르지 않도록 가꾸는 일도 힘을 모으는 일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린 사람들이다. 쨍하던 해가 슬며시 들어간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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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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