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회고록 ‘영초언니’ 저자 사인회...“영초언니 기억해달라”

IMG_9939.JPG
▲ 4일 제주 간세라운지x우유부단 크림공작소에서 열린 '영초언니' 저자 사인회.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이날 조심스레 책의 뒷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 제주의소리

“자, 아직 책 안 읽으신 분들만 맞춰주세요. 천영초는 본명일까요 아니면 당시 운동권이라 어쩔 수 없이 사용했던 가명이었을까요?” 사회를 맡은 여성학자 오한숙희의 질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명이라고 답했지만 정답이 아니었다.

‘영초언니’에 등장하는 천영초(고려대 신문방송학과 72학번)는 실존인물이다. 1976년 고려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대학생 서명숙(현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의 4년 선배였다. 독재시대 학생운동에 모든 걸 걸었고, 많은 후배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던 지식인.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도 등장하는 ‘하는 일마다 잘난체 없이 든든’했던 사람.

4일 오후 제주시 간세라운지x우유부단 크림공작소에서 열린 ‘영초언니’ 신간 사인회는 민주화 인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대중들에겐 낯선 천영초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서명숙 이사장은 고려대 교육학과 재학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연행돼 236일간 구금생활과 감옥살이를 했다. 그 당시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제공했던 인물이 바로 천영초다.

서 이사장이 수감 이력으로 한동안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하고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했을 때도,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2007년 제주로 돌아와 올레길을 만들었을 때도 차마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영초언니’는 1970년대 독재정권의 폭력에 맞선 천영초를 비롯한 ‘당대의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펼쳐보인다. 어떤 민주화운동에 대한 섬세한 증언이다. 야만의 시대에 겪었던 끔찍한 일들을 서 이사장은 침착하게 서술해냈다. 당시 독재정권의 비정상적인 폭력들을 영화처럼 묘사해낸다.

이 책의 중심인물이자 그의 인생을 바꾼 천영초의 근황을 얘기할 때 서 이사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서 이사장은 이 책의 인세를 어디다 쓸 것이냐는 물음에 천영초의 치료비에 쓰겠다고 답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두 눈은 실명됐고, 뇌도 너무 다쳐서 과거에 어떤 건 기억하고, 어떤 건 기억하지 못해요. 인세는 그의 가족에게로 기부를 할 예정이에요. 영초언니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2002년 대선 앞두고 들었어요. 당시 정치부장임에도 휴가를 내서 영초언니를 보고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언니를 기억해주고 다시 불러주면 점점 더 기억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IMG_9894.JPG
▲ 4일 제주 간세라운지x우유부단 크림공작소에서 열린 '영초언니' 저자 사인회. ⓒ 제주의소리

본래 이 책은 4년 전인 2013년 출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런 서 이사장을 뜯어말렸다.

“조정래 선생님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이게 나오면 서명숙이 망가지고, 올레가 망한다고 절대 안된다고, 큰일난다고 했어요. 올레를 버티게 하는 곳곳의 후원들도 멈추게 될 거라고. 저는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답했죠. 그런데 다음 날 조 선생님 부인께서 전화가 와서 ‘그 책 출간 때문에 남편이 안절부절하며 밤에 잠을 못자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사실 이번 최순실 사건 겪으면서 ‘그 때 책 냈으면 큰일날 뻔 했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죠(웃음)”

관객들과 격의없이 질문을 주고 받던 서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짧은 당부를 남겼다. 이 책을 써야만 했던 이유와도 맥이 닿아있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가 지금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그 언니를 기억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천영초의 삶의 궤적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된다. 오는 27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오영훈 국회의원, 조정래 작가, 주진우 <시사인>기자가 패널로 참석하는 서울지역 북콘서트가 열린다.

IMG_9910.JPG
▲ 4일 제주 간세라운지x우유부단 크림공작소에서 열린 '영초언니' 저자 사인회. ⓒ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