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이상봉

도남 시민복지타운 내 행복주택을 건설하는 ‘도남해피타운 조성계획’이 발표됐다. 치솟는 집값을 감당 못하는 청년, 신혼부부 등 미래세대를 위해 불가피한 정책임을 강조했지만 발표와 동시에 ‘지사 퇴진 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낯설지 않다. 민선 6기에 들어 제2공항 건설사업, 대중교통체계 개편, 제2첨단과기단지 조성사업 등 신규정책이 발표될 때 마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와 반발에 부딪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들 정책은 정말 도민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책이 계획될 때마다 주민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는가?

필자는 그 이유를 ‘참여의 결여’에 있다고 본다. 반발하는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 정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제주도가 발표해 자신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왜 피해봐야 하는지 알고 싶고, 그 결정과정에 왜 자신들의 의견은 누락되었는지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들은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만으로 ‘이해도’와 ‘신뢰’를 높일 수 있는가?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학술적 용어로 ‘정치효능감’이라는 것이 있다. 정치효능감은 주민 스스로 정부와 정치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의되며, 참여는 정치효능감을 높이고, 정치효능감이 높을수록 정부신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의사결정과정에의 참여는 궁극적으로 정책순응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에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에서 찾을 수 있다. 숙의는 익을 숙(熟,) 의논할 의(議)자를 쓴다.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숙의민주주의의 방법론에는 타운미팅, 원탁회의, 공론조사, 시민배심원제, 합의회의 등이 있다. 여러 방법론이 있지만, 모두 최종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관련 정보를 수집해 충분히 검토하고 참여자들의 토론을 통해 의논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일반 여론조사가 ‘찬성’, ‘반대’만 묻는다면, 숙의민주주의 방법론인 공론조사는 찬성의 견해와 반대의 견해를 모두 충분히 듣고 토론하여 결정한다.

이러한 숙의민주주의 방법론의 도입에 대해 ‘참여와 충분한 토론’의 필요성은 동의하나 실제 그렇게 하기에는 의사결정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신속한 정책결정이 신속한 정책집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도민의 참여와 충분한 토론이 없이 결정된 정책에 대한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사후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고, 또 주민반발로 정책이 취소되어 다시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숙의민주주의는 오히려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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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봉. ⓒ제주의소리
민선 6기는 정책결정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협치’를 도정목표로 내걸었다. 협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마련돼야 하며, 그것은 숙의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필자는 지난 1일 숙의민주주의 방법론의 활용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다. 최종적으로 조례 제정을 통해 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의정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좋은 협치’가 완성되길 기대한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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