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역지사지의 공감의지가 없는 재판부에게 솔로몬의 지혜는 구약시대의 신화에 불과하다

달랑 두 쪽의 판결문

항소심 판사가 해직 교수인 강 교수에게 평생 교육자로서의 삶에 사실상 사형이나 다름없는 패소 판결을 내리는 데는 단 두 마디 말밖에 걸리지 않았다.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 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한다.”

지난 달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새 대통령의 취임사가 모든 언론을 일제히 장식하던 날, 대학의 재임용탈락 처분에 대해 강 교수가 제기한 민사소송 2심 판결이 드디어 나왔다. 그러나 강 교수가 이 날까지 기대와 불안 사이를 오가며 보냈던 숱한 ‘잠 못 이루는 밤들’과 그동안 법정에서 오갔던 수많은 반박근거들과 증빙서류들에 견주면, 달랑 두 쪽에 불과한 항소심 판결문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너무나 무성의하고 안이했고 오만했다.

아무리 재판부의 결정에 합법적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소송 당사자를 ‘까막눈’ 쯤으로 여기는 듯한 이런 판결에 누가 수긍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판결이 나오자 강 교수에게 순간 다가온 감정은 패배감이 아닌 분노감이었을까. 패배감도 판결에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마지못해서라도 저절로 권위에 굴복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법이다. 

해직의 진짜이유

하지만 강 교수의 해직을 둘러싼 지난 두 차례에 걸친 판결을 보면서 법원에 대한 이런 ‘아우라’는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오죽해야 상식과 원칙의 블랙홀이란 별칭까지 붙었을까. 아무리 겉핥기식 ‘탁상‘ 재판으로 원성을 들어온 사법부라지만 사안의 본질이 너무나 뻔하지 않았던가. 자초지종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학교가 강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진짜 이유가 그가 교수협의회 의장으로서 총장의 전횡에 소신 있는 발언을 해 왔던 것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이 강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에 대해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그의 3년간 업적평가점수가 재임용 기준 점수에 미달됐다는 것. 그러나 강 교수는 강의와 연구에서 재임용 조건을 거의 충족했지만, 문제는 대학 총장이 교수들에게 주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종합평가 점수였다. 이 항목에서 총장은 강 교수에게 통상적으로 15점 이상을 주다가 그가 교수협 의장으로 활동한 후에는 4점으로 낮춰 버린 것이다. 

무성의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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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커 키츠가 쓴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법과 정의에 대한 19가지 근원적 질문들》. 출처=교보문고.
이 바람에 강 교수의 점수는 재임용기준에서 일 년 기준으로 단 1.7점이 모자랐고, 학교는 이를 구실로 30년 이상 교직에 몸담아 온 강 교수를 학교사상 최초로 재임용에서 전격 탈락시켜 버린 것이다. 총장점수를 예년만큼만 받더라도 재임용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법정에서 학교는 총장점수를 갑작스럽게 낮춰 준 것에 대해 합당한 근거도, 그럴듯한 변명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소송은 강 교수에게는 평생 교육자로서의 명예만이 아니라 한 가장으로서 가족 전체의 생존권까지 걸려있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1심 판사는 자의적인 총장점수를 총장의 재량권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고, 항소심 판사는 상식과 동떨어진 1심의 판결을 오자(誤字)만 몇 자 수정한 채 그대로 인정하는 무성의한 판결문으로 한 교육자의 중대한 인생을 재단해 버린 것이다. 이런 식이면 구태여 우리지역에 항소심 제도가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다.

적폐청산이 쉽지 않은 이유

흔히 법은 판결에 따르는 사회의 의지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상식적으로도 원칙적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은 당연히 사법부의 신뢰성을 깎아먹을 수밖에 없다. 사안의 본질에서 애써 눈을 감아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는 판결이었다. 판결대로라면 교수들에게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총장의 비위나 적당히 맞추며 조용히 살라는 것인가. 이로써 총장의 비상식적인 ‘갑질’이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셈이다. 

평생 교육에 헌신해 왔던 노(老)교수가 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두고 표창은 커녕 총장의 말도 안 되는 ‘보복성’ 평가점수로 인해 교단에서 불명예스럽게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우리사회의 현 좌표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약자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은 이 땅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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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감의지도 그리고 당사자에 대한 설득의지도 없이 기계적으로 휘두르는 판사의 판결봉에는 지난 수 십 년간 민주화로의 변화의 물결에서 고스란히 비껴나 있었던 ‘갑의 오만함과 태만함’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다. 이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구약시대의 신화 같은 일이 돼버렸다. 그러기에 새 시대, 새 정부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적폐청산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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