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 칼럼] 초선의 세 의원께

초선의 세 의원께

안녕하십니까?
먼저 축하드립니다.
세 분 모두 국회의원 선거에는 처음 참여하셨죠.
그런데 곧바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니 무척 기쁘겠습니다.
향후 입법활동과 그에 맞는 정책연구 및 민의 반영을 위한 신선한 활약 기대합니다.

각설하고 필자가 세 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글 띄웁니다. 아마도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우(杞憂)에서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저보다 더 똑똑했던 과거의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국회에만 들어가면,
'민의'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거나 안 읽으려는 분들로 바뀐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울며 겨자 먹기로) 여러분께 기대해 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개원 전에 꼭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제넘게도 아래에 제 생각을 보내드립니다.

해방 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정치사는 너무 오랫동안 수구 냉전세력들이 정치를 좌우해 왔습니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상처를 최대한 활용하며, 다양한 성향의 국민들이 갖는 역동성을 잠재워 왔습니다. 아니 편향된 한 쪽의 길만을 가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합리적인 토론과 보편타당한 민의를 이끌어내는 아무런 제도와 장치가 없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부터 수구냉전 세력은 대한민국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여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의의 대변자라는 착각 속에 우리 역사를 오도(誤導)해 왔습니다. '식민잔재 청산과 분단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진심에서 실천으로 옮기지 않았던 그들입니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정권 안보'에 보탬이 되는 경우에 한해서 '민족통일'을 외쳤던 경우도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적십자회담 직후에 유신개헌이 있었습니다. 각각 같은 해인 1972년 7월, 8월, 10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 유신개헌은 서슬 퍼렇게도 지속되었지만, 남북 간의 정치적 만남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식민잔재 청산'의 경우, 1949년 반민특위법 제정 및 반민특위 구성까지는 그래도 국회를 국회답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탄압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이후 우리 정치사에서 '식민잔재 청산'은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일부 의원 사이에 이를 다시 점검하자는 움직임이 있어서 국회에 대한 인식이 다소 나아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우리 헌정사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실망스러웠던 대목은 솔선수범해야 할 국회의원의 '탈법과 부패'입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항상 재벌과 연계되어 천문학적인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하여 정치뿐 아니라 경제까지도 왜곡시켜 놓았습니다.

그 때문에 성실히 살아가는 다수 국민들의 경제관념은 근본부터 흔들렸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이제 대한민국 국회는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시각까지 더해졌습니다. 소위 입법부에서 탈법과 부패가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 못해 우습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정강 및 정책의 차별성을 띤 다양한 정당' 또는 '시대적 과제와 책무에 충실한 역사적 정당' 보다는 '당리·당략에 의한 정권 창출과 유지를 위한 집단' 만을 우리 국민에게 제시하였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당해 왔고, 따라서 '직무유기'를 저지르는 국회에 대해 불신감과 혐오감만 커져 갔습니다.

더욱 더 가관인 것은 그 간의 언론기관들이 그런 정치 행태에 대해 1면을 포함해 다수의 지면을 할애해 왔다는 점입니다. 속된 말로 '같지도 않은 정치(권력)'와 언론의 공생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말이 좀 빗나갔습니다만,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회는 아직까지도 다수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민족과 인류가 나가야 할 보편타당하며 다양한 진로에 대한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치 못해왔던 것입니다.

물론 1990년대부터 소위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담당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1인 보스 정치였고 과거 수구 세력과의 야합으로 탄생된 것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지역감정에 기대어 정권 안보에 초점을 맞춰 왔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김대중 정권 시절의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의 시행'만큼은 다소나마 그 한계를 극복키 위한 노력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평가할 만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제 2004년, 소위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권이 탄생된 지 1년이 넘어갑니다. 올해 4·15 총선은 그간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성에 대한 심판의 시작입니다. 그런 점에서 재선 이상이 아닌 초선의 여러분이 당선된 것에 대해 솔직히 기대도 해봅니다. 일부에선 제주 정가의 위상이 어떠니, 중앙정부와의 절충력에 문제가 있다느니 하면서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국회의 새로운 역사 창조에 여러분들은 선구자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저버리지 않는 국회,
중앙당이든 지역사회에서든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는 국회,
현재 처한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와 소명의식을 꿰뚫는 국회,
그래서 역사와 민의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국회,

그런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십시오.
그리고 본인의 역량을 국민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땐 미련 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되돌아오십시오.

20대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두 눈에 담으시고,
30대의 정열과 꿈은 가슴에 넣고,
40대의 희망을 온 몸에 꾸미며,

이제 대한민국 국회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첨병이 되십시오.

여러분들이 넥타이가 아닌 잠바를 입고 국회에 등원해도 국민들은 상관없습니다.
국회의 권위는 국회의원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인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랜저가 아닌 지하철·자전거·소형차로 등원해도 국민들은 상관없습니다.
국회의 권위는 자동차 차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항상 국민과 함께 하는 친구인가만 봅니다.

이제 국회에 들어가시면 제일 먼저 '관행 타파'에 앞장서길 기대합니다.
재선 이상 선배 국회의원의 소위 '관행'을 앞세운 여러 인적·물적 관계의 형성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미 며칠 전 여러분들이 소속된 정당의 당선자 연찬회에서 '초선 의원 군기 잡기'라는 해괴망측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께서는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시고,
대한민국 국회의 '관행'을 새롭게 창조해간다는 정신으로 임하시길 바랍니다.

훗날 가깝게는 동시대 국민들의 심판과,
멀게는 역사의 심판이 여러분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 때 가면 여러분들이 일궈놓은 '창조적 미래'만이 여러분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04. 5. 3(월)
<홍기표의 제주사랑 designtimesp=3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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