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실세와 낙하산인사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할 즈음에 일본 본토에는 약 200만 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용되었거나, 일제가 탄광 등 위험한 직종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게 위해 강제이주 시킨 사람들이다. 

해방을 맞아 이들 200만 명 중 약 140만 명은 국내로 송환되었지만 나머지 60만 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에 남게 되었고 남은 이들이 재일교포사회를 형성하였다.

과거 우리 고향 마을에는 집집마다 자신들만의 ‘일본하르방’이 있었다. 제주방언이 가미된 이 말은 ‘일본에서 가끔 고향을 방문하는 친척 어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과거 춥고 배고프던 시절 선물꾸러미를 짊어진 ‘일본하르방’의 고향방문은 반갑기 그지없는 집안경사중 하나였다. ‘부자’ ‘일본하르방’은 일제시계, 카세트, 구두 등 진귀한 물품을 풀어놓기도 했고, 1년에 용돈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골 어린이들에게 모처럼 용돈이란 걸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하르방’의 고향 방분이 항상 고향 친족들에게 기쁨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가끔 ‘일본하르방’은 자신에 대한  존경을 유도할 목적으로 친족 간에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가끔 노망이 들어 일본에 처를 남겨두고 고향에서 후처를 거느리며 고향 친척들에게 자신의 후처에게 ‘효’를 행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대게 이런 경우 ‘일본하르방’은 친족 간 불화의 원인이 되기 일 수였다.

필자가 대학에서 해운을 전공하고 해운회사에 취업했을 당시, 우리나라 해운시장에는 또 다른 ‘일본하르방’들이 군림하고 있었다. 국내 우수한 선원인력이 외국 선박에 승선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을 당시, 국내 송출 회사들은 국내 선원들을 승선시킬 수 있는 배 한 척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외국 선사들에게 끊임없이 로비를 벌이고 있었다. 더 많은 선원을 송출할수록 송출회사들에게는 당연히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외국 선사들 중에는 국내 선사들의 이런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특히, 그리스계 회사들 중에는 폐선 직전의 낡은 선박을 미끼로 국내에 입국하는 자들이 많았다. 물론 해외 선사 직원들이 입국한다는 소식에 국내 송출회사들은 공항에서부터 환대를 준비하였다. 이들 해외선사 직원들은 두어 척의 선박을 미끼로 국내 송출회사 간부들을 두루 만나고 다니면서 접대를 즐기고 다녔다. 그 와중에 그 선박의 송출을 맡게 된 회사는 단기간에는 매출이 확되었겠지만, 낡은 선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고장과 사고로 인해 무구한 선원들의 목숨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필자가 동경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교포들의 생활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일본에서 중산층 정도의 생활를 누린다는 이 친척의 아파트는 너무 좁아서 샤워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부자 ‘일본하르방’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렸음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그들의 삶이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스계 또 다른 ‘일본하르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 선원들에게 폐선 직전의 선박에 목숨을 걸고 승선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의 선사들도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베트남, 필리핀, 중국으로 진출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일본하르방’이 우리에게 금의환양을 강요할 정도의 궁핍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최근 제주의 소리의 기사를 통해 접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감사직을 놓고 일고 있는 잡음은 내 안에 옛 추억으로 간직되었던 ‘일본하르방’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다시 현실 속에서 부활시키고 있다. 감사직에 거론되는 후보들 이름을 듣고 있노라니, 이들에게서 직위에 맞는 전문성이나 사회적 경력을 보이지 않고 중앙의 권력실세들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각종 크고 작은 선거판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했다는 공통점만이 보인다.

물론 이들 후보군들이나, 이들을 중앙에서 지원사격하는 권력실세들이나 처음에는 원칙과 개혁을 부르짖으며 참여정부의 출범에 개미군단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다. 다만 이들사이에  교류가 잦아지니, 이들에게 권력이란게 주어지다보니 정치권력을 잘만 이용하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저절로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닿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권력실세로 분류되는 모 수석이나 모 의원 등은 현재 감사의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일본하르방’인 셈이다. 과거 원칙과 상식을 들먹거리던 자들이 일부는 권력실세인 ‘일본하르방’이 되어 돌아오고, 또 나머지는 ‘일본하르방’의 추종자가 되어 떡고물을 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용 없이 구호로만 존재하는 개혁의 본질을 세상에 드러낸 참여정부의 공로에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5.31 지방선거의 패인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실세들과 그 추종자들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5.31선거의 결과로 저들의 말많은 개혁잔치가 이미 끝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저들에게는 아직도 먹을 음식이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권력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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