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8)김백기 서귀포문화빳떼리충전소 대표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란? 예술가는 늘 가난하고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 예술가의 삶이 도시와 지방에서 간극이 큰 이유는? 굳이 예술에 경계는 있어야 하는 걸까…. 

‘예술’에 쏟아지는 궁금증이다. 탐라순담[耽羅巡談]의 여덟 번째 순서가 그 해답을 찾으러 나섰다. 탐라순담은 지난 19일 제주 서귀포시 원도심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행위예술가 김백기 씨를 찾았다. 그는 현재 서귀포문화빳떼리충전소 대표를 맡고 있다. 

홍대 앞에서 30여년 활동해온 김백기 대표는 5년전 서귀포시로 이주해온 이주 예술인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치열한 예술 활동을 벌이던 그가 갑자기 서울을 떠나 고향인 전남 곡성이 아닌 제주를 제2의 예술활동 무대로 결정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오늘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숱한 이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백기 대표는 한때 홍대 앞 문화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자본의 논리에 변질되는 상업주의에 대항해 홍대 앞 문화수호 지킴이와 터줏대감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는 지난 2000년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을 설립해 그해부터 2013년까지 홍대 앞에서 매년 ‘한국실험예술제’를 개최해오다 2014년부터는 무대와 명칭을 ‘제주실험예술제’로 바꾸어 올해 16회째 장(場)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독일 베를린에서 한 달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 그가 그곳 예술인들과 우리나라 대도시의 예술가 삶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나라 대도시에서의 예술가 삶에 극한 회의감을 갖게 된 그 순간, 김 대표가 향한 곳은 제주 서귀포시였다. 

지역사회에 정착한 만큼, 지역사회에서 예술가 내지는 예술행사가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지만, “예술가로서 저의 삶이 풍요롭지 않지만 빚 안지고 살 정도니 감지덕지 합니다”라는 김 대표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봤다.    

참가자 

: 김백기(서귀포문화빳데리문화충전소 대표), 김준기(제주도립미술관장)

장정렬(제주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강효실(제주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송정희(제주위클리 대표), 이정희(꽃삽컴퍼니 운영자), 김응용(알뜨르프로젝트 매니저)

지호(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직원)

▲ 탐라순담 여덟 번째 자리는 김백기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대표가 이야기에 나섰다.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사회)

: 5년전 제주도에 온 계기는 ?

김백기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대표

: 홍대앞에서 30여년 활동하면서 대도시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계기는 2012년도에 베를린 한달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했는데 거기 작가들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난한데 여유가 많음 파티도 자주하고 피크닉도 자주 가고 굉장히 여유롭게 살아가면서 작품활동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치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서울에서는 거의 10여년동안 집에 12시 전에 들어간 적이 없었습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데 이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대도시에 대한 비전은 끝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고향으로 갈까 서귀포로 갈까 2군데 중 고민하다가 결국 서귀포를 선택하였음 좀 여유롭게 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김준기 관장 

: 제주시가 아니고 서귀포인 이유는?

김백기 대표

: 제주시는 대도시니까 서귀포는 제주시와 다르죠. 소도시이기도 하지만, 자연이 그대로 묻어나는 늘 즐길 수 있는 차이가 있지요. 

김준기 관장 

:실험예술제는 계속되고 있습니까?

김백기 대표

: 감귤을 주제로 감귤박람회와 연계해서 준비중입니다.

김준기 관장 

: 원래 축제와 연계했나요?

김백기 대표

: 여기(서귀포) 와서 연계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서귀포라는 지역에 대학이 없어서 축제를 하려면 스텝이 필요한데 스태프들을 구하는 이런 부분에서 애로사항도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햇어요. 실험예술제가 말 그대로 실험하는 거니까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준기 관장

: 작년 가을에 오랜만에 선생님 뵙고 실험예술제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올해는 못할 것 같다고 하셨는데 감귤축제와 연계해서 하신다니 다행이네요. 감귤축제와 어떻게 연계를 하실지요?

김백기 대표

: 2017년 실험예술제는 절대 안하려고 했습니다. 기금 신청도 안했었고요. 배낭여행으로 동남아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충전이 되어버렸죠. 완전히 방전된 채로 갔다가 거기서 충전이 되면서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서 예술활동하는 분을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제가 사치를 부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자마자 5일 후 마감인 기금사업에 공모해 선정이 되었습니다. 올해 감귤박람회는 전시 위주의 행사입니다. 전시 외에 볼거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제주 대표 농산물 감귤이라 중요한 행사인데 거기에 실험예술제가 볼거리나 즐길거리를 채워준다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해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예술가 내지는 예술행사가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시도라고 봐야 될 것 같고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만들어진 무대는 사용하지 않고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 녹차밭 자체가 무대가 되고 전체를 활용하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워크숍도 힐링 명상 제주의 특성에 맞는 그런 것들, 감귤을 테마로 한 설치미술전 자연친화적이고 예술과 농업이 좀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 그런 시도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준기 관장 

: 예산은요?

김백기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대표

: 4500만원입니다. 돈이 부족하지만 자꾸 늘려서 확장하다보니까 제가 힘들었나 봅니다.  아이템 생기면 돈에 구애받지 않다보니까요. 하하하... 

장정렬 제주도립미술관 학예팀장

: 탐라순담이 비엔날레와 잘 연계되어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인 나무 심기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부에선 조각을 전공했는데 조각 작품이 홀로 있는 것보다 자연과 잘 어우러질 때 가장 보기에 좋다는 걸 느끼고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제주라 생각했고 그래서 일하면서 자그마한 꿈을 이루고자 입도하였습니다. 

김준기 관장 

: 나무심기 프로젝트 하신다고요?

장정렬 팀장

: 프로젝트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제주도에 사는 동안 지인이 제주도에 오면 그 사람과 어울리는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입니다. 그 사람과 어울리는 나무를 고민했는데 일단 목련을 선택하였고, 그래서 제가 제주도에 땅이 없기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목련을 처음 심어보는 것으로 제 희망을 시작할까 합니다.  

송정희 제주위클리 대표

: 반갑습니다. 지난번 처음에 참여해보니까 유익하더라고요 배울 것도 많고 그래서 문화예술계에 계신 분의 의견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어서 왔어요. 비엔날레가 다양한 많은 분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귀포 문화빳데리충전소와 이정희대표님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위클리는 탐라순담 협력단체입니다. 기사도 쓰고 아트올레 스케치하려고 왔습니다. 

김준기 관장 

: 초창기의 스토리를 들어볼까요? 어떻게 예술을 시작하셨는지?

김백기 대표

: 운명 같은 일이었습니다. 25세 때였는데요. 길거리에서 40대로 보이는 사람이 무언가를 했는데 돈도 원하지 않고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그게 퍼포먼스이고 마임인지도 몰랐어요. 27살에 대학 가서 보니 그게 퍼포먼스였던 거죠. 어렸을 때 쑥스러움 많이 타서 친척집도 가지 못했었는데 그게 제 인생을 바꿨어요. 내가 공연할 때 100명중 1명이라도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이 의미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퍼포먼스를 대중화하는 역할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퍼포먼스 관련된 책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까지 10권 가까운 자료집을 냈고, 내 인생에 퍼포먼스 아트를 낳았다는 사실 때문에 제 인생이 많이 풍요로워진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지만 빚 안지고 살 정도니 감지덕지 합니다.

김준기 관장 

: 예술은 왜 가난을 자초하고 살아야 되나요? 풍요롭다고 말씀하셨지만 예술가는고통스럽고 고독하게 살아도 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는 거 같습니다. 예술가들이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 때가 된 게 아닐까요? 예술이 사회화가 덜 된게 아닐까요?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요?

김백기 대표

: 유럽은 예술의 경계가 없습니다. 예술과 사회, 정치, 경제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예술분야마저도 다 나눠놨잖아요 조각 따로, 회화 따로, 공예 따로이죠. 마찬가지로 부모들은 예술은 예술가만 해야하고 엄숙하고 경건해야 된다는 교육을 받았고 이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했죠. 그런데 예술은 삶의 일부분이잖아요? 예술 속에 삶이 있는게 아니고 삶이라는 우산이 있다면 그 하나의 예술은 하나의 뼈대일 뿐입니다.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예술이 아니고 삶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됩니다. 우리가 전시를 하는 이유 또한 사람들이 와서 보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고 예술가들만 하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늘 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옷을 살 때만 해도 디자인과 컬러를 보고요. 메이크업 할때도 마찬가지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은 우리가움직이는 것 자체가 춤이잖아요. 잘 추는 것 만이 춤이 되고 잘 그려야만 예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술과 비예술은 떨어져 있는게 아니에요. 이미 예술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늘 그런 미적 감각을 필요로 하고 결국은 늘 예술이 곁에 있는 거죠. 그렇기에 예술가들도 좀 더 예술을 못하는 사람에게 좀 더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하는게 1차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준기 관장 

: 심지어 생활예술, 생활문화까지도 예술의 범위로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거긴 아마도 학부시절 전공한 것이 도예여서 생활예술과 생활속의 문화가 어떻게 융합해야 하는 것을 고민하신 건가요? 

김백기 대표

: 도예는 거의 안했습니다. 회화를 지망했는데 2지망이 도예였습니다. 저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잘라버렸습니다. 퍼포먼스를 했기에 생각 자체가 확장이 된 거죠.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서는 1인 12역을 해야 하거든요.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했고 그런 경험들이 이렇게 시야를 넓혀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퍼포먼스이고 우리의 삶이 늘 실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것 같다가도 달라지지 않습니까? 늘 변하잖아요. 우리 삶이 늘 변하기에 예술가나 일반인도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삶이 재밌어지죠. 퍼포먼스가 별 거입니까? 대단한 것도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김준기 관장 

: 제가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퍼포먼스를 열심히 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유럽 1년 체류하면서 올린 글을 보면 홍대앞과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과 홍대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백기 대표

: 우리나라 같은 경우 예술을 위한 예술이 강하죠. 서울은 예술의 거리가 따로 있잖아요. 홍대나 인사동처럼.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화폭입니다. 차들이 한 바퀴 쭉 도는 게 40km 가량 되는데 그 양쪽에 그라피티가 끊이지 않습니다. 상업영화관이 거의 없고, 사교육이 없습니다. 학원이 아예 없어요. 갤러리를 가든 산을 가든 접할 수 있는 볼거리, 즐길거리들이 다양한 거죠. 한국은 초등학교때부터 과외를 보내야 하잖아요. 자연이라는 좋은 스승을 마다하고 돈 들여가며 아이들을 어떻게 보면 잘못된 경험을 시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쨌든 한국과 유럽의 차이가 이게 옳고 그르다는 기준보다는 환경이나 어떤 분위기가 다르지 않나요? 그러니 거기 조그만 갤러리들은 간판도 없고 누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곳들이 많은데 그런 곳들도 1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관람객이 많고 베를린 아트주간 개막때 같은 경우는 거리 자체는 왕복 6차선 도로가 사람들로 꽉 차서 갤러리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껴들어서 가야 볼 수 있을 정도예요. 거기 사는 사람들은 자기 일상속에 늘 예술이 있는 겁니다. 그런 차이들이 아마 우리 사회와 다른 점이 아닐까요?

▲ 탐라순담 여덟 번째 자리는 김백기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대표가 이야기에 나섰다.

김준기 관장 

: 베를린과 제주도 서귀포의 간극이 엄청날 텐데 역사적으로 예술이 자리 잡아온 시간도 다를 것이고 준비된 관객들도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 간극을 이번 생에 그걸 다 메꾸지 못하겠죠? 하지만 일종의 예술을 운동처럼 하시는 것 같아요. 

김백기 대표

: 홍대와 서귀포의 차이는 홍대 앞에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했었고, 서귀포에 와서는 자연 친화적이고 지역친화적인 걸로 포커스가 바뀌었죠 하나는 감귤밭 콘서트, 그 다음은 시장이었어요. 거리와 시장은 아주 다른 곳이죠. 시장은 의식주가 있고, 시장상인들은 공연장이나 축제에 가본 적이 없을 테죠. 시장은 입소문이 굉장히 빠른 곳이고 오히려 그런 분들을 행복하게 해줬을 때 좀 더 빨리 예술과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을거라 생각을 했었어요. 감귤은 제주도의 가장 중요한 특산물이기에 마을마다 감귤밭 콘서트만 열려도 예술가들의 일자리가 늘어나잖아요. 실제로 제가 와서 보니까 저처럼 엄청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감귤밭 콘서트도 200만원으로 시작해 나중엔 협찬받아서 예산을 1000만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없는 것도 때로는 만들어야 될 필요도 있고 때로는 지금 필요한 것이 뭔지 판단이 필요하고 결국은 내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간거죠. 먼저 시도해보고 결과나 과정을 보며 배우기도 하고 부족한 것들은 나중에 보완도 하게 됐어요. 실제로 시장 사람들이 퍼포먼스하는 걸 상상도 못한다고 하면 시장은 시장에 맞는 걸 해야 하죠. 다 잘 맞았던 건 아니고요. 대형사고도 났었죠 뉴욕에서 온 작가가 입에 갈치를 물고 빤스만 있고 서있으면서 갈치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습니다. 그게 만약 갤러리나 거리에서 했다면 괜찮을 텐데 시장이었기에 갈치를 파는 상인은 그걸 팔아서 자식들을 양육했는데 그걸 가지고 퍼포먼스를 했으니까요. 시행착오였죠. 

그 다음날 시장 영업에 방해되는 콘셉트의 퍼포먼스는 안하는 걸로 정리를 하고 주로 일본작가 한국작가들이 퍼포먼스를 했었는데 그 때는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끝나고 고기집 하는 상인회 상무님이 우리 40명 스태프들에게 흑돼지를 쏘고 2차로 가요주점에 가서 양주 맥주 몇 박스 대접을 받기도 했었어요. 그게 시장이라는 거죠. 아티스트들이 시장에 도움을 주고 시장이 좋아한다고 하면 그 관계가 좋아지죠. 이후엔 쌀이 없고 생선이 없으면 아티스트들이 시장 상인에게 자연스레 구할 수 있고요. 기브 앤 테이크가 될 수 있는 곳이 시장이죠. 

휴대폰 영상통화 : 이재성(재밋섬 대표, 경제학박사 문화예술기관 경영자)  

상품 포장 패션 디자인이라든지 독립적인 예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작가가 많다는 점으로 보았을 때 미술계도 특정 예술 단체라든지 특정 예술가들에게 일감이 몰리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완전 경제가 아닙니다. 불평등한 것이거든요 제주도립미술관, 정부, 지자체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김준기 관장 

: 며칠전 제주스타트업협회 멤버들과 대화를 나눠봤는데 경제학 경영학 박사들에게 그동안 예술가들하고만 예술경제에 대해 말했는데 이들과 이야기 했더니 차원이 다르더라 완전경제라느니 불완전경제라느니 뭐 재구조화이야기를 하더라 이런거 토론 한번 해보자 하고 전화 연결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 경제활동을 스스로 저버리고 노는 것을 목표로 제주도 오신 분 김응용 감독님은 왜 놀고 있는가요? 논다는 것의 의미와 제주의 삶에 대해 짧게 말씀해주세요. 

김응용 알뜨르프로젝트 매니저

: 알뜨르프로젝트 담당매니저입니다. 알뜨르 프로젝트도 많이 보러 와주세요. 제주에 온 지 3년 되었어요. 오기 전엔 무역회사를 10여 년 운영했습니다. 돈도 좀 벌었고요. 제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궁금해졌어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만 그냥 살다가, 조금 여유가 생겨 여행다니며 생각하니 진정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일이 무얼까 고민하게 됐어요. 다 정리하고 아침에 눈떠서 아무 일도 안하고 진짜 가슴 뛰는 일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주도에 왔습니다. 자전거 타는 거 좋아하고 주중에 노는 걸 좋아하는데 육지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면 백수라고 손가락질 받는데 제주도에서 자전거 탔더니 저 사람은 능력이 있어서 제주도에서 자전거 타는구나 하더군요. 그래서 제주도에 살면 재밌겠구나 집 짓고 놀았어요. 지금도 놀다가 올 봄에 친구가 술먹으러 가자는 자리에 관장님 뵙고 지금 재밌을 거 같아서 프로젝트 시작했고 힘들지만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이정희 꽃삽컴퍼니 대표

: 김 감독님처럼 제주도에 내려오게 된 계기는 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예술가 아내로서 노후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자급자족이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술작업을 자연과 더불어 할 수 있다고 하면 제 꿈은 4월은 고사리 캐고 5월부터는 소라와 낙지 잡으면서 이런 식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을 살면서 예술작업으로 가져가고 싶다는게 꿈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5년차 되는데 도시 생활하던 사람들이 1년 잘 놀았거든요. 1년 지나고 나니 지금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시니 동등한 기회도 주지만 2년차부터 바빠지더라고요. 도시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페이퍼 많이 만들고 있고 말이에요. 그것보다 몸을 더 많이 움직이고 싶었어요. 생체리듬이 자연스럽게 땅과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될까 고민이 들어요. 김백기 선생님이 광범위하게 활동하다보니 아내인 나까지 안해도 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작년부터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어요. 올해 지원금 신청한 게 잘 이뤄져서 지금은 진행하고 있습니다. 1~4년차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했다면 5년차는 자연스럽게 행복해요.

송정희 대표

: 입도 14년차로 영어신문한지 만 8년차입니다. 그 전에는 학교에서 7년 정도 영어를 강의했어요. 지금은 제주를 밖으로 알리는 작업을 위해 신문을 하고 보니 사실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먹고 사는 것이에요. 여기 계신 예술가들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매 달 말일만 되면 월급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일들을 하죠. 그래도 공공의 역할을 하고 있고, 제주 콘텐츠를 만들어서 밖으로 알리는 일이 어쩌면 공공적인 일이지만 해결을 해야 되는 문제가 있어요. 제주도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기본적인 언론의 정체성을 저버려야 한다는 점이죠. 제가 제주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돈을 받고 원하는 걸 써줘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요즘에 와서 느끼는 것은 참 그럼에도 어렵지만 제주가 주는 여러 가지 힘이 있구나 굉장히 감사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어떤 것 보다도 자연이 주는 힘에 놀라요. 서울처럼 큰 기획전이나 음악회는 없지만 지역의 냄새가 잘 살아있는 전시와 문화가 중요하게 다가오고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시간의 질에 있어서 만큼은 굉장히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요즘엔 좀 더 문화예술쪽으로 제주를 바라보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김준기 관장 

: 다른 이주민들이나 이재성 대표 이야기도 들어보고 예술노동에 대해서 놀이, 경제적 개념으로 잉여 부분들이 우리 예술과 어떻게 연결될까 다들 고민하는 것 같아요. 송 대표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고, 김백기 선생님의 서귀포에서 실험 자체가 예술이 우리 삶의 어떤 위치를 가져야하나 시도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해부터는 감귤박람회와 함께 개최하시잖아요? 지역공동체 속으로 스며들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참석하시는 분들 말씀 들으면서 다음 화제로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감귤박람회 계획도 말씀하셨는데 길게 보면 예술가 삶의 분기를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지 어떤 분기를 차지하는지 삶의 연대기를 정리를 부탁드려봅니다. 

김백기 대표

: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생에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으면 이렇게 바쁜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제 체질이란 것을 여기 와서 알았죠. 홍대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갔는데 저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제일 고민되는 건 예술을 하면서 먹고 살 것들을 찾고 있는데 완전경제가 뭔지 모르겠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공유경제라고 봅니다. 제 개인의 문제로 해결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일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들이 함께 풀어가면서 같이 하고 있거든요. 제주도의 경우는 올레가 있잖아요. 올레길마다 버스킹존을 만들어서 문학(시나 소설) 어떤 곳은 춤, 마임, 여러 가지를 하는 거예요. 올레가 진짜 아트올레로 가려면 문화정책과 같이 가야되는데 일자리 사업 하다보면 어르신들 5만원 주듯이 버스킹하면 예술가에게 5-10만원 책정해주고 버스킹하면 수입이 되겠죠. 각 마을마다 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최소한 한 달에 10일만이라도 올레 코스에 나가는 거예요. 자기가 하는 예술과 관계된 노동과 창조성 등 고정적 수익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에게 혜택이 가지 않을까 싶어요. 올레길에 아트가 들어가서 실제 아트올레로 확장시키는 개념은 아직 이르다고 판단합니다. 4~5년 전만 해도 제주도가 주거비가 저렴했는데 지금은 대도시랑 크게 다르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리다보니 사실 예술가들에게 메리트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주는 자연 빼고는 큰 메리트가 없습니다. 문화예술섬을 표방하고 있는데 예술가들한테 천국인 곳이어야 하잖아요? 돈 벌려고 예술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문화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예술가이지요. 좋은 그림, 좋은 음악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20~30년 동안 삶이 녹아나오는게 예술이죠. 계속 결과만 가지고 잣대를 잴 수 밖에 없고 예술가들은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에서만큼은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예술가들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서귀포에 살지 않고 곡성에 살았더라면 곡성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겠죠. 이것이 예술가의 사회적 활동이고 예술가가 거기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라는 거예요. 

김준기 관장 

: 지난 30여 년동안 활동해 오신 세월들이 아마 그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더 길게 예술가로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민들을 지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긴 시간동안 말씀해주신 김백기 선생님께 뜨거운 박수를 드립니다.

글.정리 / 강효실 제주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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