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9) 강나루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제주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답답하고 막혀있어 탈출하고 싶은 섬이었다가, 특별함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고향이기도 하다. 

26일 오후 2시 카페 웨이브에서 열린 아홉 번째 탐라순담은 강나루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이 ‘나랑 제주랑 좋든 싫든 엮여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날 탐라순담에 둘러앉은 이들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또래들이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바깥에서 지내다 다시 돌아왔거나, 줄곧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한 이들이었다.

이들 모두 학창시절엔 제주를 떠나고만 싶었다. 제주에 남은 이들은 패배감에 젖어 지냈다. 수도권 대학이 아니더라도 제주에 남기는 싫었다. 막상 제주를 떠나 보니 고향을 다시 보게 됐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라도 제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금수저와 비견할 ‘제주수저’라는 것.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언젠간 제주를 위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주에 돌아와 지내는 일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눈치'. 누군가와 업무상 관계를 맺더라도 그 밖에 엮여있는 연줄이 여럿이기에 관계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정당한 요구를 하려다가도, 관계를 망칠까봐 참는 경우도 더러 있다. 처음 본 사람이더라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서로 아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좁고 견고한 인맥도 한 몫 한다. 소식이 끊긴 초등학교 동창들의 소식을 부모님들은 알고 있을 정도다. 주변 소식을 속속들이 꿰고 있기에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도 상당하다. 교사나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 다른 길을 택한 이들에게 부모의 걱정은 끊이질 않는다. 끈질긴 설득으로 부모님은 납득시키더라도 친척과 주변 지인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불균형한 산업 구조로 직업군이 다양하지 않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에서 지내는 기대감이 더 크다. 눈치와 억압이라고 느껴지던 좁고 견고한 인맥도 바꿔서 생각하면 오히려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한다. 서울에선 '소비' 주체였지만, 이곳에선 열악하더라도 동지들과 '생산' 주체가 될 수 있다. 뜻이 맞는 또래들을 만나는 것도 기대감을 높여준다. 숲과 바다, 자연이 주는 감수성도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다. 아무리 멀어도 30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는 지리적 특성은 일과 삶의 균형을 보다 찾기 쉬운 환경이다. 
참가자
: 강나루(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 유서영(제주청년네트워크 대표), 문성식(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대리), 김태연(제주의소리 기자), 김준기(제주도립미술관장), 황이새(제주도립미술관 학예사)
170826_01.jpg
▲ 탐라순담 아홉 번째는 강나루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이 ‘나랑 제주랑 좋든 싫든 엮여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를 주제로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강나루
: 이 자리에서 제주가 고향이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경험을 소개하겠다. 여러분과 다른 지역과 제주가 무엇이 비슷하고 다른지 얘기해보고, 내가 제주도에서 기대하고 있는 나의 삶과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제주라는 곳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왔고,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나와 어떻게 조화롭게 내 것을 잘 만들어갈지 만드는 과정을 겪고 있다. 

먼저 제주와 내가 어떻게 엮여있는지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제주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때까지 제주에서 자랐다.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거나 하면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게 내게는 긍정적이었다. 덕분에 특별한 대우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제주도에 고마움이 있었다. 또 환경적으로 바다와 숲, 아침에 보는 한라산을 보며 만족하는 취향을 갖게 됐다. 어릴 적부터 평화의 섬이나 국제라는 단어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게 제주도라는 환상을 더 갖게 해줬다. 재작년에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쓰는데 주제를 제주도랑 엮게 되니 동기부여가 잘 됐다. 그러다 지난해 2월에 제주도에 돌아와서 지낸지 1년 반 정도 됐다. 서울에 있을 땐 뉴스에 관심도 없었는데 여기선 달랐다. 제주에 와서 버스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제주 뉴스 듣는 게 신선했다. 그 뉴스가 나와 관련된 이야기처럼 들려서 재미있었다. 이곳 환경이 자연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동기부여가 잘 되는 장소이다. 마침 직업을 구하게 돼서 일을 하고 있다. 

김태연
: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입시에 실패해 제주에 남게 돼서 좌절감을 심하게 앓았다. 그러다가 제주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하던 게, 전공도 관련이 있어서 제주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일을 찾아 오늘에 이르렀다. 일을 하면서 제주에 대해 다시 보게 됐다. 그게 계기가 돼서 대학원에서 제주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공부를 더 하고 있다.

문성식
: 나도 수능에 실패했는데 제주에 남기는 너무 싫었다. 지방대를 갔다. 그 때부터 열등감과의 싸움이었다. 그걸 이겨내려는 노력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완성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놓여있다. 제주가 고향이라는 요소가 엄청나게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제주도 출신이다 보니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곧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주는 것이다. 말을 한마디라도 걸어준 게 감사한 거다. 외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더 고향을 사랑하게 됐다. 더 큰 관심을 갖게 되고. 서울로도 일도 하고 공부도 더 하는 과정에서 제주를 놓을 수가 없게 됐다. 어쩌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겨서 귀향을 하게 됐다. ‘사회적경제’라는 것을 접하고 지역을 위한 비즈니스를 지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소중하다.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다.

유서영
: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대학도 제주에서 다니다 중국으로 잠시 유학을 다녀왔다. 제주는 내게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섬 안에 갇혔다는 답답함을 느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답답하다', '탈출할 수 없을까'하는 생각에 육지에 있는 학교도 알아봤다. 그러다 제주를 떠나 보니 제주 출신이라서 주목받는 경우가 많았다.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제주에서 온 아이’로 통했다.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관계라도 우연히 제주를 오면 내게 전화라도 하고 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황이새
: 고등학교 때까지 제주에서 지내다가 대학을 가면서 제주를 떠나게 됐다. 평소에 조용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제주에서 왔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참 고마웠다. 조용한 내가 존재감을 갖게 되는 키워드였다. 대학원에서 문화재 전공을 하면서 제주도를 보게 됐다. 제주만의 특별함이 있고, 관광이 아닌 제주의 다른 면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기
: 제주와 엮이기까지 49년 걸렸다. 원래 고향은 강원도이다. 초-중-고는 부산에서 졸업했다. 입시에 좌절해서 재수를 하고 대학에 갔다. 미술이론 전공해서 마흔 살까지 공부하고 일하다고 마흔 살에 부산에 갔다. 그 다음엔 대전에서 지내다 마흔아홉에 제주도로 오게 됐다. 중간에 지리산 프로젝트를 하느라 전북 남원도 다녀갔다. 강원도, 영남, 충청, 호남, 경기, 서울, 제주까지 전국구의 삶이다. 제주도에서 1년 살면서 가장 매력적인 건 제주말이다. 제주말을 배우는 것이 새로운 삶을 사는 지표처럼 되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강나루
: 대학원 다니면서 1년을 코스타리카에서 보냈다. 50여 개국에서 100여 명이 동기인데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모여서 ‘가치’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한다. 세미나에서 제주도가 이슈가 된 적이 많다. 해녀나 유네스코 3관왕, 해군기지 등이다. 제주도의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로도 소통을 할 수 있는 주제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다.
다른 지역에서 생활했을 때 제주도와 비교해서 ‘이런 게 좋다, 나쁘다’ 얘기해보면 좋겠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지냈고, 호주에서 1년, 코스타리카 1년 지냈다. 제주와 서울을 비교해 보면 서울은 개인주의가 더 잘 이뤄지는 곳이다. 만난 사람들과 언제 헤어질 지도 모르고 이 모임에서 갑자기 나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고 가는 것이 가벼웠다. 제주도에 오니 업무적으로 만나거나 다른 걸로 만나건 나와 복합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관계가 엮인 것까지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에 제주도에 왔다가 제주 청년들이 모이는 행사를 갔다가, 그 느낌이 좋아서 제주도에 다시 남게 됐다. 제주에 이렇게 나랑 말이 통하고 같이 꿈꿀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그룹이 있다는 생각에 이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만족을 느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10년, 20년 지나서 나와 일을 하거나 모임을 갖든지 서로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환경이다. 서울에선 함께 자란다는 느낌이 없었다. 
또 한 가지는 소비 주체에서 생산 주체가 된 것이다. 서울에선 문화를 소비한다. 영화와 연극을 가서 보면 되고, 옷을 돈 주고 사면된다. 제주는 문화를 향유하는 게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아마추어이지만 같이 그림을 그리거나 소모임을 만들어서 이야기도 하고 있고 돈으로 소비하는 주체가 아니라 실제로 생산하는 주체로 바뀔 수 있다. 제주도에선 독립적이고 나만의 것을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유서영
: 제주에 그동안 살면서 너무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제주를 떠나서 느꼈다. 중국에서도 바다를 가려면 적어도 다섯 시간을 가야하는 내륙에서 지냈다. 그 때 처음으로 제주 바다가 보고 싶다는 느낌을 인지했다. 제주에선 바다를 보고 싶다는 감정이 바로 해소돼 잘 몰랐는데 중국에서 답답함이 느껴지니 향수를 많이 느꼈다.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방송 출연을 했다. 캠페인 광고를 찍었는데, 아주 짧은 분량인데도 제주에서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다. 10년 만에 만난 동창들도 TV에서 잘 보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제주에서 살면 나쁜 짓을 못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복합적인 인간관계라는 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재미도 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제주에 대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많이 고민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다들 제주에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태어나 보니 고향이 제주라는 건 금수저와도 같다. 그걸 타지에 가서 살아보니 알게 된 것이다. 

문성식
: 캐나다에 6개월 정도 지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마음이 국민정서인 것처럼 느껴졌다. 로키산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케이블카가 갑자기 멈췄다. 고장이 난 줄 알고 전화를 했더니 곰이 지나가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돈이 먼저가 아니구나,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도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면서 내 나라를 돌아보게 됐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건 이런 거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데 최대한 훈련을 안 시킨다. 그게 정말 자연을 대하는 자세인 것 같다. 제주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황이새
: 다른 지역이랑 제주를 비교하면 제주 사람들이 바쁜 건지 멀리 안 나가려고 하고 생활 반경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다. 제주도가 비교적 좁은 공간인데도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그런데 나도 막상 잘 안 돌아다니게 된다. 육지 사람들보다도 맛집이나 가볼만한 곳을 잘 모르기도 한다. 제주도의 특징이다.

유서영
: 음식점이나 관광지를 소개하는 일도 겸하고 있어서 내게 많이 물어본다. 그런데 삶과 여행은 굉장히 다르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나는 직장도 가고 관공서에도 가고 병원에도 가야한다. 이런 곳을 여행지에서는 찾지 않는다. 이런 게 삶이기에 30분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엊그제 서귀포에 갔는데 사람들이 아주 느긋했다. 서귀포 사람들이 조급해하지 않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자연환경이 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제주시에 사는 사람들만 봐도 여유롭다고 느끼는 것처럼 나는 서귀포에서 그런 걸 느꼈다. 내 경험이지만 서귀포는 기업이 많지 않아서 취업할 곳이 적다 보니 어린 나이에 장사를 많이 하더라. 우리 또래에도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사회 보는 눈도 빠르고,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느낌도 들었다. 
어릴 적에 제주도 사투리 말하기 대회에 우승한 경험도 있기도 해서 한번은 제주어 문법 정리 콘텐츠를 재미로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30만 명이 넘게 봤다. ‘좋아요’도 3만개였다. 제주말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다. 중국어 통역을 할 일이 있어서 갔더니 제주 해녀를 취재하는 일이었다. 다른 한국분이 통역하러 왔다가 해녀가 하는 말을 이해를 하지 못해서 내가 껴서 3중으로 통역을 했다. 그러다가 아예 내가 통역을 맡게 됐는데, 이건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자부심도 들었다. 

김준기
: 제주말을 해서 이득을 보는 경우가 있다. 나는 어디 가서 프레젠테이션 많이 하는데 호감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제주말을 쓰는 것이었다. 제주말이 내게는 제주 적응의 첫 번째 키워드였다. 

김태연
: 나는 대학 졸업때까지 제주말을 잘 안 썼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안 쓰던 제주말을 쓰기 시작했다. 제주에서는 제주말을 쓰는 것이 토익 점수가 높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 

강나루
: 이 자리를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는 탈출하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제주만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바깥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니 나이도 나이이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데 눈치를 보게 된다. 나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창의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이 걱정해서 해주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걸 막게 한다. 반면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함께 하면서 할 도리를 좀 더 하게 되고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부모님은 경제력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하신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청년 그룹에선 제주도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 같은데 집에서 아직 그렇지 않아서 더 힘들다. 그런 눈치에서 어떻게 소신 있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많다. 내가 가족들에게 그렇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지 몰랐는데 인정을 받지 못하니 주눅도 들고, 갈팡질팡하는 나를 보게 된다. 

김태연
: 나도 입사 초반엔 집에서 계속 말렸다.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 이직을 계속 권유했다. “나 지금 좋다”고 얘기도 계속 했다.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니 인정 받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유서영
: 어느 세대나 부모와의 소통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이게 문제인 건 제주지역이 너무 좁은 사회여서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반장을 했다. 그 때 반장 엄마들의 모임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잊었는데, 엄마는 더 잘 기억하고 있다. 이런 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조심하게 되는 것도 있다. 눈치보는 게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아마 제주에 살면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건 고등학교 문화다. 어느 고등학교 나왔는지 물어보는 지역은 제주밖에 없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사회적인 지위나 주변에서의 인정 같은 게 달라지기도 한다. 

강나루 
: 서울에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걸 말하기가 쉽다. 여기에선 나를 동등한 주체로 보는 게 아니라 나이가 많은 경우라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부당함을 지적할 때 소문이 퍼지거나, 전적이 생기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어른들도 평판을 묻곤 하지 않나? 그래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어도 말 안하고 참고 넘어가는 게 많다. 좋은 점은 이 행사에서 만난 사람을 저 행사에서 만나기도 한다는 점? 약속하고 만나지 않아도 우연이 자꾸 겹치는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성식에게 묻고 싶다. 다시 돌아온 지 6개월인데, 부모님과는 어떤지.

문성식
: 나는 부모님이 돌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루와 비슷한 불만들은 별로 없다. 그 전에 이 분야에 일하게 되면서 긴 설득의 과정이 있었다. 대학원 다니면서 비슷한 전공을 하다 보니 거의 4년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 요즘엔 뉴스 보다가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도리어 내게 알려주시기도 한다. 그럼에도 친척들은 아직도 이해 못한다. 교육자 집안이다 보니 구태여 비영리 파트에서 일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다. 

강나루
: 서영이 이야기했듯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갈등이 다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제주라는 산업구조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생계를 해결되는 게 다른 지역보다 더 한정이 돼서 더 부모가 ‘교사나 공무원이 좋은 거야’라고 하는 게 더 굳어지지 않았나. 다른 지역에선 NGO 활동이나 창업을 해도 부모들이 참고할 롤 모델이 보이기도 하는데, 제주에선 그게 아니니까. 

황이새
: 학교에서 새 학년이 되면 부모님 희망 직업, 학생 희망 직업 쓰라고 할 때 항상 공무원을 썼다. 그런 환경에서 있어서 그런지 당연히 공무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범대에 진학해서 뭘 할까 고민할 때에도 공무원 테두리 안에 택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러다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학예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립에서 일하는 건 이상하게 생각이 안 들었다. 아버지도 공무원이어서 처음에 출근했더니 ‘누구 아들’이었다. 처음엔 다가가기 좋은 점도 있지만 아버지 이름에 먹칠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어서 눈치 보는 게 있다. 

유서영
: 부모가 기대하는 바를 너무 연연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다가도 부모님께서 뒷바라지를 해줬던 걸 생각하면... 내가 유학을 다녀올 때만 해도 제주에서 중국어만 할 수 있다면 월급이 뛴다고 할 때였다. 부모님께서 내 취직걱정은 없겠다고 했는데, 언어와는 다른 길을 가니 갈등 과정이 있었다. 실은 대학원은 내게 하나의 무기였다. 누군가 뭘 하냐고 물어보면 ‘대학원에 다닌다’고 하는 게 방패였다.

170826_02.jpg
▲ 탐라순담 아홉 번째는 강나루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이 ‘나랑 제주랑 좋든 싫든 엮여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를 주제로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강나루
: 대학원 졸업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부모님이 박사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부모님께는 그런 게 방패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유서영
: 아직도 설득하는 과정인데, 적어도 부모님은 얘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하니 안도하는 것 같다. 아직도 그게 내게는 숙제다.

강나루
: 내가 가는 길에 대해 거창한 이유가 많이 있는 건 아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대해 그게 아니라 지금이 좋다, 행복하다는 말을 하다가도 그게 맞나 싶다. 선배 친구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때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해서 헷갈린다. 나만의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책이나 모임 같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있다. 태연에게 묻고 싶다. 내 선택에 대해 존중받지 못했을 때, 다른 선택을 고민해 봤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을 버틸 수 있는 힘은?

김태연
: 집안의 믿음을 받지 못했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컸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에 자녀가 나이가 어느 정도 찼는데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년 쯤 다니니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기도 하고, 6년이나 회사를 다닌 근성도 인정해주는 것도 있다.

유서영
: 나는 동지들을 많이 만나 또래 사람들이나 또는 이미 이런 과정 겪은 사람들 만나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문성식
: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는데, 어디선가 찾으려고 한다. 많이 배우려고 한다. 코딩도 연습하고 있고, 데이터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책을 본다. 거기서 힌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불안하지만 다음 세대에도 나처럼 확신 없는 걸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강나루 
: 학교를 다닐 때는 성적이 잘 나오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데 사회에선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내는데 인색하다. 실험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 지역에서 소소하게 모여서 아마추어라도 괜찮고 재밌으면 된다는 자신감과 누군가 응원해주고 그 과정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쯤에서 근황을 묻고 싶다. 제주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는 요즘에 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것을 갖고 싶다. 숲에도 가고 싶고 바다와 하늘도 보고 요가도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서 내 것을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혼란이 일 때는 운전할 때 클래식 나오는 채널을 켜놓고 차분하게 시간 보내고 있다. 
특히 오늘 오전에 어떻게 시간 보내는지 궁금하다. 

유서영
: 어제 잠을 잘 못자서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며 땀내고 샤워했다. 그 동안 힐링하겠다고 뭔가를 계획하면 오히려 힐링이 안 된다.

황이새
: 발령 받은지 얼마 안 되어서 오전에 출근했다.

문성식
: 요즘엔 코딩하는 재미에 살고 있다. 제주도에 오면서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싶어 MOOC로 코딩을 공부한다. 사회과학과는 다르게 코딩은 명료하게 결과가 나온다. 

김준기 
: 아침에 알뜨르 비행장에 가서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멤버들이랑 원희룡 지사와 함께 방송영상 촬영을 하고 왔다. 요즘엔 비엔날레 준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까지 일만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개인적으로 박사논문을 마쳐야해서 저녁 9시까지만 일하고, 9시에 귀가해서 논문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김태연
: 요즘 많이 바빠서 여유가 없다. 짧은 시간에 기분 전환할 수 있는 게 좋은 차를 마시는 것이다. 틈틈이 차를 사 모으고 있다. 

나루
: ‘요즘 어떻게 시간 보내고 싶으세요?’ 이 질문 했는데, 좀 더 얘기해 달라. 나는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피아노 치는 것에도 재미를 붙였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다. 

김태연 
: 요즘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우선 하다 보니 삶이 퍽퍽하다. 하반기에는 요리도 해먹고, 석사 논문도 쓰도록 공부하는 시간을 좀 더 갖고 싶다.

문성식
: 숲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싶다. 

황이새
: 인생에 있어 힘이 되는 걸 찾아보고 싶다. 

유서영
: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를 찾으려면 그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일과 일이 아닌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한다. 취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꼭 이 모임이 아니더라도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우리의 힘이 될 테다.

황이새
: 오랜만에 젊은 분들이랑 긴 시간 이야기한 거 같아 마음이 편했다. 생각할 시간도 갖게 됐다. 많이 얻어간다.

문성식
: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네, 이걸 알게 돼서 큰 소득이다. 기회될 때 많이 말을 걸어야겠다.

김준기
: 50세가 되면서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는 슬픔을 갖고 있었는데 청춘이라는 것에 위안을 얻고 간다.

강나루
: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같이 항상 시간을 보내면서 대화를 다양하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이런 면모만 보다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면모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일상적으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생각했던 만큼 좋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