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비자림로'

 
지금으로부터 약 4 년 전인 지난 2002년 건설교통부는 제주의 ‘비자림로’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바가 있습니다.

▲ 송현우 화백
건설교통부가 처음으로 시행했던 2002년 '아름다운 도로'선정공모에서 비자림로(지방도 1112호선)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하고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건교부가 전국에서 ‘아름다운 도로’를 공모.선정하고 수상한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교통망의 중심축에 있는 도로가 지금까지 물량확대 위주의 정책을 펴온 결과 미관을 비롯한 환경과의 조화와 편리성 등의 소홀함을 인식, 도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시키자’는 취지인 것입니다.


어쨌거나 건교부의 취지에 공감한 아름다운 도로 선정 공모에 전국의 광역.기초단체와 도로공사 등에서 총 88개 도로가 출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제주의 비자림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했습니다.

삼나무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도로 비자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구좌읍 평대리에서 비자림과 교래리를 거쳐 제1횡단도로로 이어지는 27.3km 구간을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천동 마을 사거리에서 송당리 마을 입구까지 약 4km 도로를 일컫습니다.


어쨌거나, 건교부의 이러한 선정 절차가 없었다고 해도, 이미 비자림로는 길 옆 양쪽으로 쭉 늘어선 삼나무 숲길이 마치 캐나다나 호주를 연상시킬 만큼 인상적이었던 곳인지라, 제주인들은 물론 일부 관광객들에겐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곳입니다.

마치 캐나다의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듯한 삼나무 숲길은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나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져서 이미 ‘알만한 사람들에겐’ 꽤 인기를 끌어왔던 휴식공간입니다.

제주에 터를 내린 저희들로서는 건교부의 요란한(?)행사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관광자원을 광고료 없이 전국에 알렸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쁘기만 했습니다.


사실 이 곳은 자동차로 내쳐 달리는 즐거움만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차를 세워 놓고, 울창한 삼나무 숲길을 산책하며 삼나무가 뿜어내는 짙은 ‘피톤치드’를 마음껏 호흡하노라면 어느새 맑아진 몸과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로움까지 느껴볼 수도 있는 그런 장소이기도 합니다.
도로 인근의 숲을 관통하고 있는 계곡에서 삽결살을 구워먹는 맛은 달리 비교할 수도 없는 맛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선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미 때 늦은 ‘뒷북’이긴 하지만 이 비자림로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을 했을때 ‘외양’에 치중한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고 정부가 공인한 이 도로.

이 도로의 양 옆에 늘어선 이 삼나무는 편백, 나한백과 함께 일본의 3대 수종의 하나입니다.

해방 이후 지난 수십 여 년을 줄곧 이 섬땅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나무. 이 삼나무가 제주의 생명산업을 이루는 갈귤나무를 지키며(제주의 과수원을 에둘러 지키고 선 나무의 99%는 이 삼나무입니다) 방풍림 역할을 하는 등 큰 역할을 해온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미 ‘토착화’하여 제주도민들에게 친숙한 나무이기도 한지라 '외래종'이라는 거부감도 덜합니다.
그러나 ‘동전에도 양 면이 있듯이’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제주 전역에 산재한 삼나무가 뿜어내는 꽃가루는 엄청납니다.
어떤 학자는 ‘이 꽃가루가 향후 10년 이내에 제주에 심각한 자연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주의 역사와 제주인의 정서와는 무관한, 이 일제의 잔재가 우리의 향토 수종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삼나무 밑에서 향토수종은 자라기 힘듭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됐고, 선정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공신인’ 삼나무.
그러나 뭐라 말할 수 없는 찜찜함이 드는 이유가 앞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먼 훗날 비자림로에 비단 삼나무 뿐만 아니라 제주의 향토수종도 함께 더불어 어우러지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선정되길 바랍니다. 정말로 가장 아름다운 도로가 제주 비자림로라고...
비자림로를 달리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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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뉴스는 도깨비뉴스(www.dkb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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