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빵 월령가] 프롤로그

말하자면 나는 (여러 가지를) 파는 사람이다. 보통 파는 사람들의 조직을 회사라 하고 그 조직의 수장을 사장이란 부른다면 나는 사장이다.

2015년 방송된 화제작 ‘응답하라 1988 ’에서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장면 하나. 덕선이가 정환이의 아빠 김성균을 만날 때 한 팔을 높이 들고 서로 “어이 김 사장”, “어이 성 사장”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우스꽝스러운 몸동작으로 인사하는 장면이다. 사장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사장이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는 등식이 대부분 성립됐다. 그러나 어이 김 사장 , 어이 성 사장 하는 시절이 시작되면서 그 등식은 많이 깨졌다. 너도나도 사장인 시대, 사장은 그냥 일자리의 한 종류가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최근에는 그러한 현상이 더 분명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에서 늘어난 일자리 절반이 자영업자라고 한다. (지난 1분기 자영업자는 55만 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만 명 늘어나 1분기 취업 증가치인 47%를 차지했다)  가히 사장의 전성시대다.

나도 이러한 사장의 전성시대를 만드는데 한 힘 보탰다. 사실 나는 어쩌다 사장이 됐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여차여차한 이유로 사장이 된 것이다. 다만 특이사항은 친정 아빠의 가업을 이어받아 친정 엄마와 같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 이름은 사장이지만 내용은 영업사원이었다. 회사 내부 일은 엄마가 맡고 나는 밖에서 영업을 하게 된 것이다. (마케팅이라 하면 좀 더 근사해보이려나) 일은 쉽지 않았다.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기에 별 재미가 없었고 보람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나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사장님 마음을 갖게 되었다.

때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월 초.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나의 첫 번째 일은 주요 거래처인 학교를 돌며 샘플 교재를 돌리는 것이었다. 대체로 학교 현관에 교재를 풀어 놓고 거기서 학년별로 구분해 각 학년 교무실을 도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이때는 시간이 금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학교를 다 돌려야했기에 점심은 주로 걸렀고 책을 들어 걷지 않고 뛰었다. 

그날도 그랬다. 시내에 있는 큰 중학교였는데 마침 주차장에서 현관 가장 가까운 곳 자리가 떡하니 비어있었다. 차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바로 현관이었다. 교재 분량이 꽤 되기에 수레에 실어 나를까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수레를 접고 펴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이 가득 든 박스를 등에 졌다. 짐을 날라본 사람들은 안다. 나르면 나를수록 힘이 세진다는 것을. 그래서 무거운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뭐였나. 현관에 박스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는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선생님과 순간 눈이 딱 마주쳤다. 여고 동창생이었다. 그 동창생도 나를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그 순간 나는 그냥 부끄러웠다. 책 서너 권을 팔에 끼고 가볍게 걸어가는 친구와 책 박스를 등짐지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됐다. 책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차로 왔다.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부끄러워하는 나의 모습을 남처럼 바라보았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제 멋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부끄럽니
나쁜 일 아니잖아
그냥 나의 일을 하는 거잖아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지 말고 내 마음으로 나를 봐

짧은 시간 깊은 생각 후 내가 찾은 정답은 부끄러워하는 게 더 웃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학교 현관으로 돌아가 학년 교무실을 돌며 교재 배부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내가 그때 그런 정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독서의 힘이었다. 평소 많은 책을 읽으며 키워놓았던 생각주머니가 바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타고난 성실함과 열정으로 한 발 한 발 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난 성공궤도를 달리는 큰 사장이 되지는 못했다. 다만 지독히 느린 속도긴 하지만 뒤로 가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러다 이제 드디어 다시 한 번 길모퉁이를 꺾어 돌아보려 한다. 이왕 시작한 일 더 재미있게 더 잘하고 싶은 것이다. 당연히 모른다. 길모퉁이를 돌아 어떤 세상과 만나게 될지. 

하지만 가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뜬금없이 내가 왜 이런 별 재미도 없는 개인의 추억을 들춰내는가. 어쩌다 사장이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좌충우돌해왔던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뒤늦게 이런 장한 결심을 하고 뒤돌아보니 후회스러운 일이 참 많다. 누군가 나를 이끌어 줄 선배가 있었다면 더 빨리 여기로 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먼저 나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뒤에 오는 그 누군가는 좀 더 편하게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업을 하는 여자후배들에게 (명백한 성차별 인정) 전달하고 싶다. 나의 경험을 디딤돌 삼아 더 빠른 길로 가라고.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라는 가사가 있다. 조선 헌종 시절에 다산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지은 가사로 농가에서의 일 년 생활을 그렸다. 나는 여기서 제목을 벤치마킹해 ‘ 점빵 월령가’라는 제목으로 내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큰 조직이 아니라 작은 조직이니 ‘점빵’이라는 이름이 족하고 농사처럼 그 달에 해야 할 일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될 것 같은 몇 개의 주제를 잡아 보았다.

185888_213225_0125.jpg
▲ 홍경희 제주교재사/바람섬교육 대표.
특별한 경험도 아니고 능력도 없지만 혹시 몇 명이라도 성원해 주신다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단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홍경희 제주교재사/바람섬교육 대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