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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 사진=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권영후 칼럼] 5.18 신군부, 나치 부역자, 차별·혐오주의자...악의 평범성에 정면 대응해야

1980년 5월 직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광주에서 군인들이 시민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과 관련, 신군부는 무고한 시민들을 폭도나 빨갱이로 낙인찍고 이를 수용하도록 대국민 홍보에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 부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폭포수처럼 퍼붓는 홍보와 교묘한 선전술에 속아 비극적인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감각해진 부끄러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공작원이 사주하여 일어난 폭동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생각할 능력이 없는 행태가 얼마나 우리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영혼 없는 인간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과 상통한다. 정권이 바뀌면 ‘영혼 없는 공무원’이 회자된다. 막스 베버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관료제는 개인감정을 갖지 않으며, 이상적인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제도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움직이는 관료가 아니라 정권에 뜻을 맞추고 충성하는 머리와 영혼이 없는 공무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소신 없는 공무원을 지칭하거나 공무원이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와 변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광주의 비극은 신군부의 탐욕뿐만 아니라 아렌트가 지적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추종자들의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고력의 결여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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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전범자 8명의 자녀들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책 '나치의 아이들' 출처=인터파크.
최근 발간된 타냐 크라스난스키의 《나치의 아이들》은 600만명의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히틀러 측근인 나치 전범자 8명의 자녀들이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버지들의 범죄가 밝혀진 뒤 성장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아버지의 죄상을 반성하고 평생 죄책감으로 산 자녀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사랑이 넘치고, 자상하고, 훌륭한 아버지로 기억하고 아버지가 살인자이며 범죄자로 처형된 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하였다. 이들은 평생 극우파를 지지하고 나치를 재건하려고 했다. 광주학살자들의 행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이유다.

영혼 없는 인간, 악의 평범성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와 파시스트 단체 등 극우 세력이 저지른 버지니아 샬러츠빌 유혈사태의 원인인 인종차별주의는 대표적 사례다. 세계최고의 문명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 미국 우선주의가 백인 우선주의로 바뀌어 맹목적으로 뒤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인종 차별은 생물학이 아닌 정치 사회적 문제로서 근대 서구 식민지 지배체제가 발전하면서 악화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계층 분열과 결합되고 포퓰리즘이 가세하면서 극단적이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루이 알튀세르가 지적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인 공무원, 교육, 군대, 교도소와 같은 국가 체제를 지탱하는 제도의 이면에는 고착화된 악의 평범성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부각된 갑질은 차별이나 폭력, 배제, 억압과 같은 악을 사회 경제적 시스템으로 당연시하고 경제주체, 공무원, 전문가, 대중들의 심리에 용인되고 굳어져 순종하는 상태로 진전되었지만 그 이면에 잠재된 을의 불안감이 커져 폭발한 현상이다.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체벌, 성희롱, 왕따는 극심한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나 이를 용인하는 교육계 인사와 학부모들의 내면에 잠복한 악의 평범성에 근거하고 있다. 군대에서 발생하는 구타, 차별, 혐오에 대해 옛날의 가혹한 군사문화와 비교하여 군필자들이 당연시하는 태도나 교도소의 재소자에 대한 현재 처우를 보고 이전에는 저보다 더 험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교도소 유경험자들의 행위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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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영혼 없는 인간, 악의 평범성은 인종차별주의나 국가를 유지하는 제도만이 아니라 핵폭탄을 만든 과학기술과 전문성에 대한 맹신,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폭력, 반대파를 종북이나 빨갱이로 낙인찍는 행위에도 깃들어 있다. 

인간은 무한 경쟁사회에서 돈과 출세만능주의로 인해 소외와 상실감이 커지고 체제에 순응하면서 비판정신을 상실한다. 인간이 사유할 능력을 무시하고 포기하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질병에 감염되고 악은 성찰하고 자책하는 대상에서 사라진다. 여기에 긍정, 순종, 적응이 미덕이고 명상과 내면의 힘으로 행복 찾아 고통을 잊으라는 유혹이 더해진다. 악의 평범성은 정면대응과 과감한 수술이 필요한 병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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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4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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