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12) 기억공간 리본(re:born)

탐라순담[耽羅巡談]의 열두 번째 순서는 제주 세월호 기억공간 리본(re:born)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지난 2일 오후 2시부터 약 100분 동안 파인땡큐에서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쫓겨나는 기억과 공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공간 리본은 세월호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에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에 문을 열었다. 기억지기인 황용운 씨는 세월호 집회에 참가했다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세월호 기억공간 만들 결심을 했다. 제주로 건너와 우연한 기회에 바람도서관과 함께 공간을 꾸리게 됐다. 그렇게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선흘2리에서 자원활동가들과 더불어 세월호와 관련된 기획 전시와 행사, 서명 운동과 캠페인 등을 벌여왔다. 

기억공간 리본을 가리켜 납골당이라고 표현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를 속상하게 여기는 마을 주민이 더 많았다. 기억공간 리본이 선흘2리에 터를 잡게 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은 주민들도 있었다. 한 번에 그치기는 했지만 리사무소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인 <나쁜 나라>를 상영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말, 곡절 끝에 선흘2리를 떠나며 기억공간 리본의 시즌1을 마감했다. ‘시즌1’이라 명명한 것은 그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2를 준비하면서 ‘기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해 정권도 바뀌었는데 물리적인 공간이 꼭 필요한지, 공간을 꾸려간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기억공간 리본의 소식을 접한 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 탐라순담 열두 번째 이야기는 '기억공간 리본(re:born)'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제주의소리

황용운

: 자기소개 먼저 부탁하겠다. 성함과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알려달라. 나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기억공간 리본(re:born)의 기억지기이다.

유가향

: 기억공간 리본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 듣고 싶어서 참석했다.

현성미

: 기억공간이 타의에 의해 나가게 된 사정을 전해 듣고,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고 듣고 싶어서 참석했다.

박소희

: 기억공간이 처음 만들어지면서 문을 닫기까지의 과정을 계속 지켜본 사람으로 왔다.

윤여일

: 제주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정영신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소식을 접하고 오게 됐다. 여느 강연과 다르게 기억공간에 대한 기억-이중적인 기억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 그것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고, 또 미래형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엄문희

: 강정마을에서 ‘salon de moon’이라는 미술관을 4월 16일부터 시작했다. 그 공간에서 프로젝트로 강정기록공간을 하고 있다.  

김태식

: 광양에 사는 주민이다. 제주대에서 같이 일하는 정영신 박사에게 행사에 대해 듣고 왔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문제 관심 있고, 김동수 씨 토크쇼도 봤다. 재일동포인데 재일동포가 어떻게 기억이 되고 있는지, 4.3기억이라든지 이런 정치기억에 관심 많다. 

정영신

: ‘사회운동론’ 수업하면서 제주에서 살면서 운동이란 것을 하는 사람들을 학생들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누가 있는지 찾아보다가 기억공간 리본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제주에도 세월호 기억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학생들과 함께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에 기억공간 리본에 대해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이 공간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듣고 놀랐다. 죄책감도 들고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도 든다. 

강주형

: 파파이스에서 ‘시민의 눈’ 활동을 알게 되고, 제주에서 활동을 하며 인연이 닿았다. 좋은 정보 창구로 쓰고 있었는데 공간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놀랐다. 제주의 시민사회단체와 파파이스의 접점을 만난 느낌이었고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었는데 공간이 없어지면서 앞으로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오게 되었다. 

강성복

: 이런 사회활동에 그다지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제주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있지만 참여하기가 어렵다. 오늘도 아무도 모르는 이 공간속으로 오는 게 쉽지 않았다.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할 때 제주도민들이 제주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활동가들도 이들과 함께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보를 하고 전달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나 스스로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어색함을 무릅쓰고 오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알게 돼 왔다. 개인 밴드, 페이스북 등에 대한 곳에 제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명선 

: 마을 사무장으로 있다. 전에는 사회에 대한 반감론,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요즘 사회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저도 작은 불씨라도 되고자 참여하게 되었다.

문진, 김혜영 부부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 공간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다. 4시 이후엔 6시까지 제주시청 앞에서 서명운동 받고 있다. 가시적인 공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고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황용운

: 하고 싶은 얘기를 듣고 싶은 방식으로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냐, 어떻게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냐가 끊임없는 고민이다. 어떻게 공감해서 함께 한 걸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냐가 끊임없는 고민이다. 어떻게 보면 내 생각에 굉장히 나이브한 방식으로 전시장으로 시작했던 기억공간이 세월호 참사 1년 되던 날 공간을 열게 되고 2개월 전에 공간을 닫게 되었다. 그렇게 닫게 되기까지 기억의 정치화가 물리적인 공간을 통해 나타날 수 있을까 이런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과 번민 속에 보냈다. 오늘 이 시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고 마음껏 가감 없이 나누길 원한다. 제주에 내려와서부터 알게 돼 기억공간에서 기억지기로 활동해온 박소희 선생님이 진행을 맡아주겠다.

박소희 

: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와서 내가 잘못 생각한 지점이 있지 않나 반성하게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다들 기억에서 멀어지지 않았나,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담론이 아니라 이 시간이 단지 잡담으로 끝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억공간이 세월호가 3년 전 사건이 아니고 현재성을 띄고 있고 어떻게 뻗어나가야 할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송구한 마음까지 든다.

황용운

: 기억공간은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시작 되었고 어떻게 해 왔는지 설명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제주도 이주민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대참사 나고 그 해 5월, 경찰서에 처음으로 연행되었다. 거기에서 48시간 있었는데 용혜인 씨와 홍대에서 침묵행진 했던 분이 같이 연행되어서 꼬박 48시간 갇혀있었다. 그걸 계기로 6년간 활동했던 아름다운가게 퇴사 후 내려오게 되었다.

2015년 2월 23일 제주도 이사 / 도서관을 준비하는 공간에 공존공간 하기로 합의

2015년 4월 16일 ‘아이들의 방’ 1차 전시, 기억공간/바람도서관 오픈

2015년 6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진행 선흘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들어 세월호 관련 책들을 비치하고 함께 읽는 시간을 가지며 이 책들은 기억공간에 기증

2016년 1~3월 ‘나쁜 나라’ 영화관/공동체 등 15여 회 상영

2016년 4월 2일 세월호 2주기 때 ‘하이헬로하와유‘ 세월호 청소년 토크 콘서트라는 기억행사

2016년 4월 9일 ‘하이헬로하와유’ 세월호 2주기 행사 토크콘서트 희생자들의 형제자매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짐. ‘두해스무네달’ 2차 전시 시작 

2016년 6월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강제 종료되는 시점에 서명전과 행사진행

2016년 9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도민 집중행동 행사 진행

2016년 10월 ‘밝은 빛 기억을 더하다’ 3차 전시 시작

2016년 11월 ‘다시, 숨’ 4차 전시 시작

2016년 12월 ‘분노를 기억하라’ 북 콘서트 민간 잠수사 김관홍 잠수사 이야기를 쓴 거짓말이라는 책으로 북콘서트

2017년 1월 ‘세월호 참사 1000일 블랙기억퍼포먼스’ 함

2017녀 1월 기억공간 후원의 밤

2017년 2월 ‘고래의 꿈 304’ 304마리의 고래 인형을 만들어서 5차 전시 

2017년 4월 1일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세월호 3주기 기념행사에 앞서 동백꽃 지다 / 4.3이야기 

2017년 4월 15일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유채꽃 지다 / 4.16 이야기

2017년 5월 ‘세탁소’ 6차 전시 시작. 250명의 단원고 학생들의 꿈을 손바느질로 만드신 선생님의 이야기에 착안해 진행

2017년 6월 파란 바지의 의인이라고 불리던 제주도 출신 김동수씨의 이야기 ‘달려라 꼴통동수’ 행사 진행

2017년 6월 30일 6차 전시를 마지막으로 기억공간 시즌 1 마감

행사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이야기 했다.

박소희 

: 시작하기에 앞서서 전제하고 싶은 건 역사와 기억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싶다. 역사가 고착화 하는 것이라면 기억은 현재화 시키는 것, 체험으로 만들면서 내면으로 만드는 작용으로 기억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다. 내면화된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가치관이 되고 가치관이 모여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의 의미가 아니라 기억의 의미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먼저 조금 나누어 보고 기억이 밀려나는 계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왜 기억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풀어냈음 좋겠다. 

황용운

: 정권이 바뀌었는데 기억공간을 계속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그냥 평이하게 ‘기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해야한다’고 얘기를 했고, 그렇다면 그 기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이러한 질문부터 하게 되었다. 우린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기억한다고 세상이 바뀌냐? 그래서 기억이란 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주형

: 미국 911 테러 즈음에 우연히 그 빌딩이 무너진 그 자리를 가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하냐면 그 자리를 그대로 두었다. 그 현장에서 발굴된 것이 나오면 현장에 그대로 전시했다. 미국 사람들은 그 자리에 갈 때마다 계속 기억이 상기되는 것이다. 그 해 그 날 그  시간에 이런 참사가 있었고, 그 때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다 전시되어 있었다. 이 기억공간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 국가가 하지 못했던 것이 일반 사회 활동가가 어찌 보면 개인의 열정, 능력, 시간 모든 것을 투자해서 한 것이다. 

국가가 못 했던 것을 개인이 한 것이라 여기 온 사람들도 어쩌면 그런 부채감으로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같은 경우는 국가의 치명적인 실수가 너무 많이 있었고  정부 통제도 많았다. 세월호는 권력자로 인해 숨기지 말해야 할 것들이 숨겨지고 잘못된 시스템의 총괄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국가적 측면에서 세월호를 잊지 못하게 기억을 계속하게 하는 방안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받아서 고안되어야 한다. 독립유공자들이 못살고, 친일파들이 잘사는 현실이 아니라 세월호의 피해자들이 어렵게 살거나 정신적으로 계속 힘들지 않게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보상이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더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스템과 이런 사안들이 어떻게 제주도와 연계될지는 잘 모르겠다. 막막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기서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박소희 

: 지역사회에서 기억공간에 대한 역할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것은 말미부분에서 다시 논의를 해도 좋겠다. 

먼저 기억공간이 1200일 정도 조천읍 선흘1리에 있었고 나오게 되었는데 그 경위를 짧게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해난 사고가 아닌 우리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가 된 것은 아마도 사회 구조적 문제가 그 안에서 발견되면서 모두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아무도 하지 않았고, 그 때 대안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제주도에 만들어진 기억공간이었다. 기억공간이 나오게 된 것이 자발적인 과정이 아니어서 그 이야기를 잠시 듣겠다. 

황용운

: 기억공간이 왜 나오게 되었나?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2015년에 기억공간이 들어간 곳은 바람도서관이다. 내가 공간을 찾아 헤맬 때 전 직장 동료가 바람도서관을 소개시켜 주었다. 처음에는 3년간 그 공간을 무상임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공존 기간이 쭉 지나가면서 사실 올해가 연세를 내야하는 4년차였다. 어쨌든 올해 6월 그 곳을 나오게 되었다. 기억공간에서 웹진이 나오는데, 박소희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쫓겨난 것도 아니고 나가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의 압박 같은’, 여기 공간을 쓰려면 돈을 주고 아예 가지고 가든지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곳이 영업 공간이 아니기에 권리금을 내야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느껴 이를 계속 토로했지만 소통되지 않았다. 

박소희

: 기억공간이 나오게 된 시점이 마침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내부에서의 고민은 물리적인 공간이 지금 시점에서 과연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시적인 공간은 잃었지만 우리가 여기서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장이 마련 된 것인데 이것으로 부족한가? 정말 우리에게 장소가 필요한가 하는 고민이 있어서 이 것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나누어 봤으면 좋겠다. 물리적 공간이 다들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지 없이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을 끌어내고 싶다 그래야지 그 다음에 기억 공간이 어떻게 나아갈 지가 정해질 것 같다. 

유가향

: 반드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모여서 대화를 해야 하고 자주 만나 접해야 하는 데 그러려면 공간은 필요하다. 내 지인 중에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들끼리 학교의 부당함을 얘기할 수 없도록 교내의 벤치를 없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 모이는 행위가 얼마나 정치적인가, 그리고 권력자들이 이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공간의 물리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건축이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도청. 총알이 마구 발사 되었던 그 도청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편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없애려하는 데 사실은 그 이유가 아니다. 그 건물이 갖는 상징, 총이 발사된 흔적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책으로 접하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너무 다르다. 그래서 전남도청의 복원사업을 주도 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그 사건을 책으로만 배우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와 기억이 어떻게 만나야 되는가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역사는 그냥 과거의 지나간 일이 아니지만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단지 지나간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대화가 없는 역사 멈춰있는 수동적인 역사라 생각한다. 우리가 기억을 하면서 역사와 대화를 나누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용운

: 기억공간은 사실 역사의 현장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제주도를 생각했던 것은 세월호가 향하는 곳, 목적지가 제주도여서 여기에 공간을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이상, 이하의 이유도 없었다. 단지 우리가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은 자연스러워진다. 그럼 이걸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기억하기 위한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물리적인 공간이 갖는 힘이 크다고 생각했다.

윤여일

: 지금 얘기가 크게 두 덩어리가 있다. 지금 시점에서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이 하나가 있고 앞으로의 기억공간에 대한 얘기가 있을 텐데 순서상으로 앞에 있는 이야기가 나누어 져야 뒤에 있는 이야기도 이유가 분명해질 거 같다. 앞에 있는 것과 관련해서 아까 부채감이란 표현을 했는데, 세월호를 기억해야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사람들이 망각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한다는 것이 의무의 최소치이자 행동의 최대치인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억이 극적화를 얻어내기 위해서 사실 사회적 힘으로 하게 된 것이고, 그것이 지금에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켜 낸 중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그렇다면 그 전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과 지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 기억해야 한다는 것의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혹은 있다면 기억공간 시즌1과 앞으로 만들어 질 기억공간 시즌2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즉, 전에는 망각의 반대인 ‘기억’이라는 것이 강하게 필요했다. 사실 기억공간이란 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사물들이 채워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희생자를 떠올리게끔 하는, 망각으로부터 계속 붙잡아 두려고 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 만일 어떤 것들을 기억을 삼아서 공간화 시킨다고 한다면 그 방식은 전의 방식과 달라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자기한테 일어난 일이 아닌 타인에게 일어난 일, 사회적으로 일어난 어떤 일을 기억할 때에는 기억이라는 것이 과거를 지금 시점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끌어온다는 행위는 미래의 어떤 것을 끌어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떤 예감 속에서 미래의 무언 가를 기대하면서 지금 기억하고자 하는지 시즌2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이 기억과 결부되어 더 중요해 질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묘하게 시기가 정권이 바뀌는 이런 시기에 맞춰서 공간이 이렇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시즌1이란 표현이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서 강정마을의 지금을 시즌3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통해서 여기서 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던 것들이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다른 방향에서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것을 시즌1이라고 한다면 시즌 2는 지금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기억공간과 관련해서는 기억을 만일 물리적 공간에 둬야 한다면 거기에 기억을 어떤 식으로 배치해야 할 것인가 맞물리는 질문이기는 한데 앞에 있는 부분에 대한 얘기가 먼저 있으면 뒤의 앞으로의 기억공관에 대한 얘기가 좀 더 분명해 질 것이다.

강주형

: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좀 해 봤다. 세월호를 탔던 친구들이 제주에 왔을 때에 만나야 했던 자리는 제주항이었다. 결론적으로 황용운 씨가 시즌1을 준비했을 땐, 일개 개인 한명이었고 시즌1을 통해서 공론화가 될 수 있었다. 정부 혹은 정치인 이런 영역에서 어떤 제안을 했을 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한다면, 일반 개인이 항구에다가 무언가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이렇게 그룹화가 되어서 기획이 정확하게 되어 있다는 전제라면, 지금 정부에서도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어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이제는 공간의 형태가 사유지 형태가 아니라 공유지나 항구에서 그 아이들이 오길 원했던 곳이라는 어떤 테마라든지 예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예전 시즌1과 다르게 세련된 안으로 정부를 설득해서 만들어 내는 공간이라면?

황용운

: 내가 제주도에 오게 된 게 화가 나서였다고 말했듯이, 나에게는 망각에 반대되는 ‘기억’의 의미였다. 어쨌든 세월호 참사는 머리에서, 가슴에서 어떤 형태로든 잊혀선 안 된다. 선흘2리에 관광을 왔든지 근처 식당에 밥을 먹으러 왔든지 이곳으로 하여금 한번은 인식을 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세월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억공간 시즌2를 준비하면서 고민하고 질문을 하는 게 ‘국가란 무엇인가’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 삶에 국가가 뭘 하는지,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공간 시즌2에선 이 커다란 질문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이고 왔을 때 어떻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느냐 어떻게 교육하고 소통과 공감의 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강주형

: 4.3평화공원 영상에 대통령이 나와 결론적으로 국가의 수장으로서 4.3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인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게 위로라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에도 분명히 그 정도의 기록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결국 국가의 사과가 필요하다. 활동가 수준에서 기획된 그런 공간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전임자로서 제주에서 나름대로 기억을 하려고 노력했던 활동가로서 방향성과 기획 의도를 국가에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즌2의 완성인데 정부와 함께 완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게 기억의 완성과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엄문희

: 이상적으로 그런 방향을 펼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 아이들이 물리적으로 닿아야 했던 공간은 제주지만 그 아이들이 빼앗긴 세계, 닿아야 했던 세계는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통하는 세계 국가의 의무와 시민의 권리가 조화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그런데 밸런스가 깨지면서 극단이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적 체험으로 보면 정부의 기억과 시민의 기억은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왔고 그것을 조율해서 하나의 목소리로 하나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본다. 과연 이게 시즌2에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3평화공원만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친구 예를 들면 대만인들이 와서 2.28사건이라거나 대학살의 경험들이 있는데도 그런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입장에서, 4.3 평화공원을 보면서 굉장히 감동을 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세세하게 국가의 개입으로 인한 워딩들이 있고 여전히 무장대 출신의 많은 분들이 분향실에 와 있지 못하고 있기에 연결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정영신

: 기억공간이 죽은 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일 수도 있고 유족의 슬픔 달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시민들이 와서 애도를 표하는 공간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될 수 있다. 시즌1의 기억공간 리본은 망각에 대한 저항으로서 분노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국가에 대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는데, 공간 구성자체가 그런 의미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 때는 사실은 그게 꼭 제주여야 했는가? 세월호의 목적지로서의 제주라는 의미가 기억공간 리본에 담겨 있었는지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 공간은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간이 시즌1에 해당하는 시기에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기억공간이라는 곳을 새로 만든다고 하면 예전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와 협의해서 공식적이 추도 공간을  만들자는 건 이 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1차적으로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하고 그 분들이 원하는 지를 들어봐야 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시즌2가 가능한지, 또 필요한지 이런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1에서 자신이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위한 공간을 필요로 했는지 또는 그런 공간에서 힘 에너지를 받았나? 이런 부분들이 서로 확인이 되어야 그런 유의미성을 서로가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진 

: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의견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물론 4.3평화공원과 같은 추모공간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기억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4.3이나 5.18과 같은 기억과 다른 기억이다.  

일반 시민들이 이전 박근혜 정권에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수준이 ‘잊지 말자’는 외침밖에 없었다. 촛불을 드는 그런 행동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시점에 제주에 기억공간이 있었던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공간이 지금 없어지게 되어서 공간의 유무가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을 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공간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니 시민들이 세월호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결되겠지, 앞으로 잘 되겠지 생각하면서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차원의 큰 프로젝트가 생기면 전문가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자신의 의견을 굉장히 많이 피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활동가와 유가족 희생자들의 입장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유가족들이나 희생 당사자들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잘 알아서 하리라고 믿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다. 제주에서는 소규모의 활동에 의한 공간이 더 제주스럽지 않을까.

황용운

: 서울대 지리학과 신혜란 교수가 세월호 참사 이후 공간에 대한 논문을 썼다. 그 논문에서 기억의 영토화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 연구은 기억의 영토화를 분석틀로 삼아 세월호 추모공간 세 곳인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 서울 광화문 광장, 제주 기억공간 리본의 형성 과정을 분석했다. 제주도는 재영토화라고 표현하면서 오히려 우려스러운 관계는 공식적이고 큰 규모로 기억공간이 제도화, 공식화할 때 즉 갈등이 크게 표면에 있지 않을 때라고 한다. 제도적으로 큰 도시개발의 한 부분을 기억공간이 발전할 때, 기억의 측면에서 희생자와 유족들의 역할보다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역할이 커 진다. 예산이 커지고 공식적인 기억의 영토화가 진행될 때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슬픔 관광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전문가들이 세련되고 예술적인 형태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소외되고 박제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의 관건은 피해자, 생존자, 유족과 기억공간 형성의 과정을 함께 하려는 공감의 욕망이 전문지식으로 슬픔관광을 성공시키고 싶은 욕망을 이길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나도 굉장히 많이 공감한다. 

사실 올해 4월에 사월꽃 기억문화제라고 육지사는제주사름 단체와 제주시민단체가 제주시 탑동에서 공연을 했다. 뛰어난 문화예술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었고 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두고 3주기를 준비하면서 묘한 불편함이 어떤 형태로든 있었다. 그게 정부와 시민의 기억이 다르던 어쨌든 묘한 결의 다름이 있었다. 나는 기억공간은 철저히 풀뿌리, 시민들의 공감으로 한 걸음에 가는 게 유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여일

: 국가 차원에서 제 역할을 못해서 세월호 관련된 공간을 만드는 것과 기억공간이라는 곳이 앞으로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차라리 묻고 싶은 것은 기억 공간은 가령 구체적으로 전시를 위한 공간인가 활동을 위한 공간인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잊지 않게 하기 위한 사물들이 많았다고 하면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겠지만 기억공간이라고 하는 게 국가란 무엇인가 묻는 장소라면, 심지어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면 기억공간 탑동, 기억공간 제주대, 기억공간 강정과 같이 이동하면서 이 질문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활동의 측면에서는 공간의 이동을 통해서 그 곳을 공간화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한시적으로 2시간 혹은 3시간 동안 그 장소를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공간으로 하고 그렇게 다니면서 얻어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중에 어떤 공간이 실현된다면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때야 말로 시즌 2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공간이 무언가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이것과 활동을 하기 위한 것인가, 물론 활동을 하는 공간도 구체적인 물리적인 공간이 있으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한 가지, 전시에 있어서 아이디어를 내자면 페루 리마에 있는 기억박물관이다. 스크린이 있고 어떤 사람이 등장을 하고 이 사람이 5초 정도 지나면 왼편의 얼굴이 나오고 오른편이 나오고 뒷모습이 나온다. 손을 대면 그 사람이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시인 듯하지만 누군가의 증언을 계속 듣는다는 의미에서 서사가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국가 부재로 인해서 일어난 이 참사를 국가가 뭔가를 다시 만드는 방식으로 서사의 주어를 계속 국가로 둘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서사를 찾거나 어떤 주어를 찾거나 어떤 목소리를 듣고자 하냐가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런 대목에서 지금까지의 전시가 시각과 관련된 것이라면 독특한 시간을 그 공간에 들어가면 청각적인 것이 가미되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뭔가를 묻게 되거나 아니면 그 사람 기록을 남기게 되거나 만약 이런 식이라면 활동과 동시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공간이 무엇으로 채우고 미래의 무엇과 만나고자 하는 것인지에 따라 물리적 공간의 존재여부가 결정된다. 만약 있다면 어느 위치에 사람들과의 접근성도 따져야 할 것이다. 

박소희

: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각자 느끼는 바가 있는지에 대해 충분한 얘기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시민들에게 이런 공간들은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 아니라 자꾸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피상적이었던 것이 감각화되는 측면이 있다. 장소마다 돌아다니는 것도 어쩌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데, 기억공간을 마을의 할머니들이 납골당이라고 표현했다. 그 공간 자체를 그분들에게 인식케 하는 것이다.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감각될 수 있는 곳으로 의미가 있었는 생각이다. 나 역시 불편하기에 계속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이지 않았나 싶다. 다른 분들도 어떻게 느끼는 지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김영호

: 하드웨어적인 관점에서 공간에 대해 얘기하는데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어느 공간의 지역을 또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그 자체가 어떤 사람들에게 혐오시설이 될 수 있다. 세월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럴 것이다. 우리가 국가에 대해 기대하기보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세월호에 대한 아픔에 대한 기억 그 기억은 완성되지 않아 영원히 간다. 하드웨어적인 장소를 찾기보다 인터넷을 통해서 컴퓨터를 통해 그 공간에 만들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 가능하고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생산해서 예를 들어 음악으로 표현하고 공연하고 연극으로 표현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의 확장이 필요하다. 

정영신

: 리본에 두어 번 방문했다. 제일 처음 갔을 때 첫 느낌은 '이게 왜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외성이랄까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있는 것을 봤을 때 한편으로는 좋았고 한편으로는 이게 왜 여기에 있나 적합하지 않은 곳에 만들어 진 건 아닌가 아니면 모든 곳에 있어야 하나 등등의 의구심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팽목항에 못가는 이유와 기억공간 리본에서 느낀 감정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 때의 참혹한 감정들을 상기시키게 되고 그 감정으로 나를 끌고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 기억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기억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면 촛불에 의해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건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던 기억의 힘이다. 한편으로는 박근혜와 최순실에 대한 분노라는 감정도 있었지만, 잊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잊지 않고 나왔던 것과 잊지 않고 나온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정권을 바꾸어 냈다.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히 힘이 있다. 뭔가를 바꿔낼 만한 힘이 있는 것 같고, 그 기억의 힘이라는 게 그 때는 분노의 감정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힘을 발휘했는데 새롭게 기억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면 거기에서 우리가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기억에서 에너지를 끌어내고 그런 의미에서 공간은 계속해서 만들 필요가 있다.

▲ 탐라순담 열두 번째 이야기는 '기억공간 리본(re:born)'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제주의소리

박소희 

: 기억한다는 구호가 단지 사건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때 우리가 각성을 한 것 같다. '이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라는 질문 우리는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는가 이전에는 그런 질문을 전혀 하지 않고 개인의 불행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어떤 구조에 있는가 어떤 시스템에서 취미와 취향이 만들어지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국가란 어떤 것이가라는 거창한 질문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 계기였고 최순실 국정농단이 일어났을 때 합리적인 분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 안 된다는 다는 공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이제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한 데에서는 의미가 있다. 시즌 2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분노로 시작한 기억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즌2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지에 대한 것들이 이끌어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것은 다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혹은 가변적인 공간이든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고 그래서 이제는 그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보자.

윤여일

: 기억공간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사실 시즌 1에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묻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는 영탄이었고 하나는 분노였다. 만약 그게 질문이었다면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로 불어났어야 하는데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물음은 어떤 사회여야 하냐를 묻는 다른 물음인 것이다. 그 물음이 지금 문재인 정권아래에서는 증발됐다. 지금은 좋은 통치를 기대하고 성군을 맞이한 것 같고 그래서 오히려 세월호가 만든 물음에 이르지 못한 물은 이게 국가란 말이야? 영탄에 가까웠던 물음이 크게 불어나지 못한 상태로 지금은 그 물음이 사회적으로 증발되어져 버린 상태처럼 보인다.  

만일 지금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물음으로 늘어날 수 있는 공간일 텐데 정말 물음으로 나오는 그런 공간이다. 물음으로 나오는 공간과 세월호의 기억으로 어떻게 맺어질 수 있는 것은 서동진 선생님 같은 경우는 기억의 장소화가 가지고 있는 반정치화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즉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기억을 간직하기 어려우니까 그것을 특정한 경험 형태로 장소를 만들어 놓는데, 사람들은 기억한다는 경험을 하기 위해 가끔씩 그 장소에 가지만 그건 가끔일 뿐이지 실제 그것을 장소화 시킴으로써 기억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추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들에 대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기억을 보존하는 곳과 기억이 저장된 공간이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식이다. 만일 기억공간이 지금 시기에 이전의 형태로 지속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어쩌면 그런 박제화된 공간이 될 위험성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제 새롭게 공간을 해야 하는 시기라면 시즌 2는 묻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소희

: 이게 말은 쉽고,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도 쉽지만 구체화하는 작업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정말 다수의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이다. 

정영신

: 우리의 기억을 물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놨을 때 의미는 고정되어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만들 때 의미의 고정을 부정하는 형태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박소희

: 예를 들면 그런 공간을 어떤 식으로 만들 수 있는지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정영신

: 4.3 평화공원의 백비가 가장 좋은 예이다. 아무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비석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4.3을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현성미

: 사실 처음에 나왔어야 할 이야기인데 기억공간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떤 느낌인지 또 어떤 의미인지 나는 불편해서 일부러 피했던 지점도 있다. 기억공간 리본에 가면 감정이 너무 과잉될까봐 생각만 해도 울컥하는 사건이어서 그 현장에서 전시된 것들을 목도할 자신이 없었다. 몇  달 전에 방문하면서 울었다.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소품들이 없으면 기억하지 않게 될까,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러지 않더라도 기억할 것 가다다. 꼭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가능케 하는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박소희

: 그 공간은 아까 황용운 씨가 말했던 영토화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시적인 공간, 물리적인 공간으로 어떤 마음들이 모일 수 있는 의미로서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봤으면 한다. 

현성미

: 기억공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성향도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미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 공간으로 가는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그 공간으로 끌어 들일 것인가도 궁금하다. 

이명선

: 기억공간은 추모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칫 어렵고 무거울 수 있었는데 도서관이랑 함께 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주년 행사 때, 어떻게 보면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인데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픈 기억이지만 위안처럼 따뜻하게 해 줄 수도 있는 거구나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이런 공간이 선흘에 있다는 게 감사했다. 물론 뜻하지 않게 공간이 비워지게 되었지만 아까 물리적인 공간이 없어도 마음속엔 언제나 있고 또 세월호가 답답한 상황은 아니라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고 있고 기억공간은 좋은 의미로 시즌2를 잘 해서 좋은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마을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다.  

황용운

: 우리가 리사무소에서 <나쁜나라> 시사회를 상영했었다. 마을에서 기억공간을 운영하고, 상영회를 한다는 게 좋았다. 

윤여일

: 기억공간이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물리적 공간을 잃은 상태에서 전에 계획했던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정말 못하게 되었고 어떤 것들은 여전히 할 수 있게 되었고 뭔가 목록화 작업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하다. 관계를 맺은 사람들 사이에서 꼭 물리적 장소만이 아니라 선흘이라는 장소를 사용하거나 바깥에서 뭔가 하거나 이런 식으로 계획해 놓은 신 것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물리적 공간을 잃었다는 것이 얼마만큼 잃은 것인지? 그 공간이라고 하는 게 꼭 그 장소가 될 수만은 없다. originality가 필요 없다. 꼭 거기여야 할 필요는 없다. 

공간은 장이 되어야 한다. 만일에 이 경우 공간에 대한 이름을 붙인 다면 빈 그릇이 될 텐데,공간이라는 말 자체가 빌 공(空)에 사이 간(間)인데 어떤 의미로 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이 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 곳에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들어 있는가에 따라 의미 형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 그릇이라는 게 활동을 칭하는 것일 텐데 전에 했던 활동 가운데 어떤 활동은 못하게 되었고 어떤 활동은 여전히 가능하고 앞으로 어떤 활동들이 필요할 것인지에 따라서  그 공간의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여전히 활동부터 접근해야 더 구체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뭘하려는지 궁금하다. 

황용운

: 기억공간을 할 때 대안학교나 전교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공간에 오곤 했다. 공간에서 소통을 하고 있거나 영상을 같이 보고 있으면, 전시관인데 문을 열었다가 그냥 간다. 그래서 공간의 이원화 작업이 필요하다. 시즌2를 시작하게 되면 하나는 교육장 하나는 전시장이었으면 한다. 

오전 10부터 오후 2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기억지기 선생님들의 활동이 있었는데 공간이 없어져서 이 활동이 사라졌다. 그리고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월례회의도 없어졌다. 하지만 노란리본공작소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고 제주시청에서 서명활동은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월호 피해상담소가 제주에 있다. 피해자 스물네 분이 제주에 거주하고 계신데, 바느질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피해자들이 한 번도 의사 표현도 못하고 있는데 생존자들의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학교를 직접 찾아가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도 계획 중이다. 정형화된 커리큘럼 과정을 만들어서 공간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런 활동들을 직접 찾아가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성미

: 사실 나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울분도 들지만, 내 목숨이 보장받지 못하겠다 는 공포도 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남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고 내가 억울하게 죽었을 때 욕먹고 싶지 않다. 이런 질문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효할 것이다. 여전히 강정은 제2공항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계속 유효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소희 

: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정권이 바뀐 후에 뭐가 바뀐 것 같은 데 달라진 것 없는데 질문 자체는 너무 빠르게 소멸됨 느낌이 든다. 그래서 새로운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해결해 주겠지', '해결되겠지'라는 심리가 내 안에서도 훨씬 많이 풀어진 듯하다. 

황용운

: 안거리 밖거리가 있는 제주 전통가옥을 생각하고 있다. 전시공간과 질문 공간을 분리시키고 싶다. 사유의 공간, 소통과 교육의 공간으로 분리된 공간을 찾기 원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딛고 우리는 어떠한 질문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을 체험이든 영상이든 미디어든 글쓰기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좀 더 좁혀서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만나고 싶다.

윤여일

: 아이디어인데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도저히 못하고 있는 게 있다. 현재 세월호 담론이 안전담론으로 수렴되고 있다. 결국 국가의 역할로 흘러 갈 것이다. 즉 세월호를 일반화할 때 어떤 방향으로 일반화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카이빙 작업이 필요하다. 

세월호 직후에 엄청 많은 논의가 나왔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 많은 문제의식이 쪼그라들었다. 국가란 무엇이란 말로 환기되는 것이 안전밖에 안 남아 있나? 그 당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불거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어떤 부표처럼...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 떠내려 왔는지 봐야한다. 거기서 하나의 중요한 물음은 '국가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박소희 

: 마지막으로 제주도라는 곳에 기억공간이 위치해 있는데 논문에서는 대안공간으로 권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 곳으로서의 대안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긴 한데 지역사회 안에 있는 것이기에 기억공간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히 논의해 보자.

정영신

: 참 어려운 문제다. 기억공간 리본이 선흘2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게 선흘2리 마을에서 있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마을에서 세월호를 이야기 한달까 고통스러운 것들을 마을 안에 함께 두기가 가능해 졌다. 만약 내가 선흘2리에 가게 되면 마을 주민에게 리본이 이 마을에 있었을 때 어땠는지 사라지고 나서 지금은 어떤 지에 대한 물음을 하고 싶다. 제주 시내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또 다른 마을로 들어가서 그 곳에서 세월호 공간 만들기를 한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찾아간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를 더해가고 엮어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내 또래의 젊은이들은 긍정적으로도 바라보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데 어르신들은 정치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 공간은 중요하지만 지역은 의미가 별로 크지 않다. 위치적인 것보다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공간을 그런 지역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황용운

: 2년 2개월 간 그 곳에서 기억공간을 운영했는데 볼멘소리를 별로 들은 적이 없다. 납골당 소리도 들었지만 괜찮다는 마을 어르신들이 있었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듣고 속상해하는 주민들도 있다. 선흘2리는 이주민이 많아서 정서가 많이 다르다. 나는 마을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할까봐 마을청년회 가입하고 마을 이장님도 찾아가고 이렇게 시작해서 오히려 지역공간이라기보다 마을의 청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항감이 줄었다. 

박소희

: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물리적 기억공간이 필요하냐 아니냐 하는.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 생각한다. 

황용운

: 오늘 기억에 남는 것을 노트북에 적었는데 이것을 읽어보면서 마무리하겠다. 기억에는 이중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기억의 정치라는 표현과 국가의 방식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억과 제주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필요하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대화하지 않는 역사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한다는 게 의무의 최소치이고 행동의 최대치였다 기억을 공간화 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그림을 그리고자 할 때 이 질문을 염두하고 시즌 2를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세월호를 일반화할 때 아카이빙 필요하단 점과 안전으로만 수렴되는 이 시점에서 그 담론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 정권의 기억과 시민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는 것들을 상기시키겠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던 기억의 힘은 잊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잊지 않고 나왔던 촛불광장이었다.  물리적 공간은 무조건 필요하고 현실 정치에서는 바뀐 것 같은데 달라진 게 없는 상태-적어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될 때까지 이 공간을 할 생각이다. 이런 고민을 계속 갖고 계속 담론화 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을 갖겠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 기록 = 이지혜 코디네이터, 정리 =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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