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조시인 조한일, 첫 번째 시집 《지느러미 남자》 펴내

제주출신 시조시인 조한일 씨는 첫 번째 시조 시집 《지느러미 남자》(고요아침)를 최근 펴냈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으로 기록될 이 책에는 시조 70편이 실렸다. 저자 스스로 “약자의 편에 서서 소재를 찾아 묻혀있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 애썼다”는 평가처럼 책 속에는 땀과 먼지 느낌이 고스란히 풍기는 작품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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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 남자

조한일

아침부터 당도한 문자 열나을째 폭염 특보

오늘도 동문로터니 붐비는 수산시장 삼십 분 무료 공용주차장 귀퉁이에 오래된 봉고Ⅲ 1톤 탑차 부축해 앉혀둔다 흐르는 땀 눈에 들면 어찌나 따가운지 이마에 버프 질끈 두르고 은갈치 상자 나르는데 머리 많이 아프우꽈? 물어보는 주인아줌마 아무래도 우리 땅에선 이 모습이 낯선 걸까? 배달엔 젬병인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잠깐만 잠깐만요, 비켜주세요, 외쳐 봐도 꿈쩍 않는 밭담보다 더 길어진 제주땅 중국인 행렬 배워둘 걸 중국어, 왁자지껄 좁은 시장통 크루즈 타고 온 서양인들 옆을 지날 땐 익스큐즈 미, 익스큐즈 미, 24년 밥 먹여 준 영어가 모세의 기적같이 동문수산시장 길을 튼다 달그락대는 낡은 손수레가 지나는 고객과 부딪칠까 연신 되뇐다 제발 비켜달라고, 제발 비켜달라고…, 은갈치님 나감수다, 옥돔님 나감수다 제주바당 동문이 날마다 모이는 동문시장, 때로는 고등어도, 삼치도, 참조기도 얼굴을 내밀지만 역시 우리 회장님은 반짝반짝 은갈치다 냉동 짐칸 다 비우고서야 돌아온 그 주차장에서

파르르
내 젖은 몸에 돋아나는
지느러미

시 해설을 쓴 오종문 시인은 “조한일의 시조는 늘 생활 현장에 서 있다. 마치 그날그날의 뉴스를 보는 것처럼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것들은 시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강력한 잔상을 남긴다”고 호평했다. 

특히 “심오한 은유나 구불거리는 사색의 고통도 심미적 화려함은 없지만, 강철 소리가 쨍쨍 울리는 그만의 목소리를 가졌으며, 거칠고 투박한 시적 상황을 열고 나오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명쾌하며 희망적”이라고 설명했다.

1965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에서 태어난 시인은 2011년 《시조시학》 겨울호로 등단했다. 스스로를 “삶의 현장에서 서민들이 겪는 애환과 아픔을 다루고 생활 속의 파편을 주워 담는 ‘넝마주의’의 심정으로 작품을 쓰려고 노력한다”고 소개한다.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현대사설시조포럼,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도서출판 고요아침, 114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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