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44) 우무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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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무냉국. ⓒ 김정숙
감쪽같이 여름 간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몰이를 하며 가을 쳐들어온다, 그동안 친했던 찬 음식들도 정 떨어져 간다. 끝날 거 같지 않은 더위에 생각 없이 사다놓은 우무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물끄러미 날 본다.

텃밭에 늙은 물외를 따다가 씨를 파내고 채 썬다. 우무도 채 썰어 놓고 볶은 콩가루와 물을 붓는다. 국간장과 식초, 설탕으로 간한다. 새콤 달콤 고소한 국물이 입으로 후루룩 들어온다. 기분 좋은 맛이다. 이렇다 할 향기도 맛도 색도 없는 물외와 우무가 덩달아 새콤 달콤 고소하다. 양껏 먹어도 부담 없다. 평생 과제가 다이어트라는 요즘 세상에 우무냉국 앞에서만큼은 무장해제 되는 시간이다.

우뭇가사리를 삶아 내린 국물을 식히면 묵처럼 엉키는데 이게 우무다. 갈조류인 우뭇가사리를 볕에 말리면 적갈색이 사라지고 누르스름해지는데 이걸 저장해두었다가 우무를 만든다. 이 우무를 얼리고 말리고를 반복하여 한천을 만드는데 한천 또한 물과 함께 끓여 우무를 만든다. 우뭇가사리를 삶은 물에 설탕과 팥이나 호박앙금 따위를 섞어 굳혀서 양갱을 만들기도 한다. 우무는 열을 가하면 다시 원래 액체 상태로 돌아간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우무국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웠다. 만만하면서도 소중한 밥상 위의 존재였다, 볶은 콩가루가 좋지만 없으면 보리를 볶아 가루 낸 개역올 넣기도 하고 그것도 없으면 그냥 간장과 식초, 부추를 고명으로 띄우고 먹었다. 그 때는 얼음이 없어도 시원했다.

식품이 가진 영양적 성분의 중요성을 알아가면서 우무는 밥상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아무 맛도 향도 영양도 없는 우무는 그저 배고픈 시절을 달래주는 향수식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우무가 금의환향 했다. 영양소의 반열에 오를 만큼 중요해진 섬유질 덩어리요, 배불리 먹으면 장 청소를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섬유질이 부족하기 쉬운 현대 식생활에서는 일부러 챙겨먹어야 하는 약 같은 존재가 우무다. 게다가 콩과 식초를 곁들여 먹어야 하는 예쁜 짓을 또 한다.

아무리 좋은 식품도 편식하면 해롭다. 바람직한 식생활은 골고루 먹는 것이다.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맛있는 음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 편식을 뿌리치기는 정말 어렵다. 여름이 가도 한동안 우무냉국은 냉장고를 지킬 것이다.  편식한 뱃속과 마음을 위로해야 하니까.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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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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