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을 맞은 제주올레. 외적으로는 크게 발전했지만 올레 길 인근 마을과의 연계사업 등 주민 소통은 과제로 남아있다. ⓒ제주의소리

올레. 한동안 쓰이지 않던 이 제주어가 지금은 제주를 대표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9월 7일로 제주올레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됐다. 제주가 좋아, 걷는 게 좋아 몇몇이 뜻 모아 시작한 제주올레는 어느새 일본 숲속과 몽골 벌판에 마스코트 ‘간세’를 새길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다. 제주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혁신적인 평가 뒤에는 지역주민 소득과의 연계 미흡 등 과제도 공존한다. <제주의소리>가 제주올레 10주년을 맞아 올레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올레 10년] ③ 결국 주민이 행복해야...제주올레 “글로벌, 로컬 모두 잡을 것”

제주올레가 걸어온 10년은 국내 걷는 길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선도적인 위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다만, 수백 년 전까지 기원을 거슬러 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 시코쿠 오헨로 같은 해외 유수의 걷는 길과 비교하면 제주올레는 이제야 출발선에서 발을 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제주올레는 빠른 속도로 길을 넓혀갔다. 2007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를 출발하는 1코스가 생긴지 5년 만에, 올레 길은 제주섬 한 바퀴를 연결했다. 서명숙 이사장과 가족, 지인, 동료 몇몇으로 출발한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무국 역시 지금은 체계적인 조직을 갖춰 20명 규모로 커졌다. 

제주올레를 우려하는 의견 가운데는 이런 가파른 성장에 대한 부작용을 꼽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민과의 소통. 개발 관광지가 아닌 자연과 마을이 있는 길로 시선을 돌린 점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하지만, 과연 그 길에 살고 있던 주민과 얼마나 함께 했나 라는 지적이다.

(사)제주올레도 이런 고민을 놓치진 않았다. 개장 초기인 2009년, 마을과 기업을 연결하는 '1사 1올레' 결연 사업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 3년 간 대통령소속 지역발전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예산 25억 2000만원을 받아 제주시, 서귀포시와 함께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을 진행했다. 참여 마을은 세화3리, 신산리, 화순리, 세화2리, 추자도, 의귀리까지 6곳이다.

다만, 이런 노력이 얼마나 결실을 거뒀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의 차이가 있다.

1사 1올레의 경우 무릉외갓집 정도를 제외하면 마을과 기업을 연결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린 사례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주민행복사업은 지난해로 종료됐지만 녹차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생산한 성산읍 신산리와 허브 아로마 공병 캔들을 만드는 표선면 세화3리 정도를 제외하면 추진 동력이 약해졌거나 사업 말미에야 시작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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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신산리에 위치한 마을카페.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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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산리 마을카페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 고구마, 무화과 등으로 만든 음식료를 판매한다. ⓒ제주의소리

다만, 주민행복사업 자체가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마을 별로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사업 내용도 단기간에 두드러진 성과를 얻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주민행복사업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김태윤 제주발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주민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제주올레, 행정 및 민간 영역의 입체적인 노력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올레 길로 인해, 여행자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민·마을과 지역 환경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과제는 앞으로 (사)제주올레가 계속 안고가야 할 숙제이다. 주민의 이해, 공감보다 길이 먼저 생긴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후원회원 가운데 도민 비중이 30% 밖에 되지 않는 건 제주올레의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제주올레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잇따른 개발은 올레가 의도한 현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올레길과 부동산의 연관성은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다.

2014년 발표된 논문 <제주 올레길이 인근토지가격상승률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제주 올레 7코스를 대상으로>에 따르면, 올레 7코스로부터 1m 멀어질수록 토지가격 상승률이 0.03%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올레 길이 역세권 마냥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역 생활정보지 등을 보면 ‘올레길 인접’ 등의 문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올레 길을 대하는 ‘토박이’ 도민 여론과 이주민으로 대표되는 타 지역사람들의 시선 차이에 대한 연구도 있다.

지난해 남수연 씨가 미국 Texas A&M University에서 발표한 논문 <신흥개발국 정치생태학: 제주 올레길의 영토화, 스케일, 그리고 경관>을 보면 “제주 지역민들은 농촌 경관을 구성하는 농촌의 생산 기반시설이 더욱 개발돼 근대화되기를 염원하는 반면, 도시 중산층은 근대화 이전의 농촌의 자연 및 문화적 경관을 제주 올레길을 통해 감상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두 사회 그룹 간 대립이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주민 소득 사업, 부동산 영향, 올레에 대한 인식 차이 등 제주올레 앞에 놓인 과제는 모두 만만치 않다. 10년 축배를 기쁘게만 들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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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올레 길이 오랫동안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 겸 상임이사는 “초창기 보다 제주올레 길에 대한 도민들의 인식은 상당히 개선됐다고 느낀다. 제주올레를 대하는 서귀포시와 제주시 여론의 차이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국장은 “주민행복사업은 1년에 한 마을씩 제대로 자리 잡도록 긴 안목에서 진행하겠다. 이와 함께 다른 국가로의 진출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비록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어려울 지라도 제주올레는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 모두 놓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제주올레 유명세? 주민 사업은 주민 모두 의지가 필수”

[인터뷰]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 성산읍 신산리 사무장 이명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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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산리 이명희 사무장. ⓒ제주의소리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지역발전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제주시, 서귀포시와 함께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을 추진했다. 세화3리, 신산리, 화순리, 세화2리, 추자도, 의귀리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가운데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의 녹차 초콜릿·아이스크림은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2006년부터 마을 영농조합이 재배해 왔지만 홍보뿐만 아니라 판로 개척이 어려웠던 신산리 녹차와 수제 초콜릿 전문점 카카오봄 고영주 대표의 기술을 융합해 상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올레 3-b코스와 가까운 마을 소유 공간을 아담한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파란색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신산리 마을카페는 이제 녹차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맛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신산리 사무장 이명희(45) 씨는 주민행복사업 시작부터 참여해 카페 운영까지 자리를 지킨 주민이다. 사업 초창기 초콜릿, 아이스크림 기술을 배운 주민들 가운데 가장 오랫 동안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운영이 어려운 시기에는 고등학생 딸까지 투입시킬 만큼 의지를 가지고 임했다.

평일임에도 화창한 날씨에 쉴 틈이 없던 지난 8일, 신산리 마을 카페에서 이 씨를 만났다. 그는 카페를 운영한 지난 2년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사)제주올레의 권유로 사업에 참여하긴 했지만, 기술만 배웠을 뿐 카페 운영에 대한 지식이 전무 했기에 인력 관리 등 하나부터 열까지 맨땅에 헤딩하듯 진행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카페 직원들이 그만두고 자신 역시 잠시 카페 일에서 손을 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자신을 포함해 5명이 이곳에서 근무하며 정상 운영 중이다. 안정을 찾자 공간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녹차 제품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재배하는 무화과, 고구마, 청귤을 가지고 신메뉴를 개발했다. 마을 정착 예술인이 만든 수공예 제품도 판매하고, 지역 농가의 귤 직거래도 주선한다. 마을 녹차 역시 납품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신산리 마을카페는 지난 8월에만 1000만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는 “제주올레와 함께 하는 주민행복사업이라고 했지만 중요한 건 결국 주민이 하는 일이다. 지역 주민 모두가 사업을 자기 일처럼 여기지 않는다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다.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주도적으로 일을 맡는 사람에 대한 권한과 합당한 대우 역시 지켜져야 한다”며 “우리는 준비 없이 달렸는데, 앞으로 있을 마을 사업에서는 사후 컨설팅 과정이 있으면 좋겠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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