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19) 이민경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 열아홉 번째 순서는 지난 13일 오후 7시 제주 작당연구소에서 이민경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이 ‘그럼에도 내가 제주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유’를 주제로 진행됐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가리킨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한창이다. 제주에서도 페미니즘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자신과는 상관없거나 거부감이 들어 거리를 두고 싶은 일처럼 여겨진다. 이민경 조합원은 2~3년 전부터 페미니즘에 눈을 뜨면서 자신의 삶이 페미니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의 폭력에도 아무런 항거를 하지 못하는 아내, 강인하게만 비춰지던 제주 해녀의 이미지, 제주에 횡행하던 기생 관광으로 촉발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도처에 페미니즘 이슈가 들끓고 있다. 

특히 이민경 조합원은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제주시청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1인 피켓시위와 추모 캠페인을 벌였다. “강남역이 아니라 제주시청앞이었다면”이라는 질문을 작게 마련한 추모 공간에 써 붙였다. 자신의 일처럼 여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성범죄 피해자들로 쏠리는 시선에 경각심을 주고자 의상에도 신경을 썼다. 공교롭게 3개월 후 제주시청 공중화장실에서 강간 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이민경 조합원에게 페미니즘은 이 제주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너 즉,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이자 경험이자 목소리이다. 우리가 제주에서 좀 더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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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경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이 열여덟 번째 탐라순담 이야기꾼으로 나섰다. <사진 박건도>

이민경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
: 오늘 내가 할 이야기에는 ‘그럼에도 내가 제주에서 페미니즘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주제를 달았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있었을 때 제주시청 정류장에 추모 장소를 만들어서 포스트잇을 걸어놓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왜 페미니즘을 외치고 있는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사실 그렇다. 많은 이야기가 있다. 왜 이름이 성 평등을 외치면서도 페미니즘인가? 인간 평등이나 휴머니즘이어야 하지 않냐? 왜 여성이 들어가느냐? 왜 굳이 페미니즘을 외치느냐고 물을 것 같아서 이 주제를 선정했다. 왜 페미니즘을 공부하려고 하고, 또 하고 싶고, 제주에서 외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말을 하겠다.

페미니즘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생각하는 것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여긴다. 그래서 거리감을 두려는 거 같다.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들을 필요가 있냐며 거부감을 느낀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먼 이야기가 아닌지 진부하지만 ‘엄마’라는 키워드를 가져와봤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려는 이유는 엄마가 크다.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과정에서 자랐고 늘 의문을 가졌다. 왜 우리 엄마가 맞아야 할까? 엄마는 왜 맞으면서 신고하지 않을까? 나조차도 신고하기 무섭고, 왜 끊임없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며 살았다. 스무 살까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도 그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이런 것들을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던 계기가 페미니즘이었다. 어떤 구조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나는지 나와 엄마는 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는지 책을 읽으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자료를 같이 보자. 제주여성가족연구원에서 2015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총 10명 중 1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남성은 33%, 여성은 67%의 비율이다. 여성들은 배우자나 남편으로 받은 폭력이 가장 컸다. 남성은 절반이 아버지다. 가정폭력에도 여성과 남성, 어른과 아동의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 자료에 나온다. 지난 5월에 나온 기사를 보면 가정폭력과 성폭력 비율이 전국에서 높은 편으로 나타나고 있다. 2년 사이에 가정 폭력이 8배 늘어났고 대부분 아내에 대한 폭력이었다.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페미니즘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한 가지있다. 또 한 가지는 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가까이 지냈다. 해녀인 할머니가 자랑스러웠다. 해녀로 대표되어지는 제주 여성의 이미지는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제주 여성은 기가 세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나의 할머니는  강인한 모습보다도 많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바닷일뿐만 아니라 집안일과 밭일까지 할머니의 몫이었다. 여기에 조금씩 의문을 가졌는데 2~3년 전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고 나서 논문이나 책을 읽으며 제주 여성은 강인하다는 이야기되어지는 것 또한 하나의 틀로 작용해서 제주에서 살아가는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해 <물숨>이라는 해녀 할머니의 삶을 담은 영화를 봤다. 마음이 아팠다. 흔히 해녀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나 콘텐츠에는 아름답게 그려내거나, 천혜의 자연에서 전복도 따고 소라도 따는 어여쁜 장면만 보여준다. 실제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삶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바다에 매번 나간다는 건, 매번 목숨을 걸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 있는 진짜 모습을 우리가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제주평화나비라는 대학생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동아리다. 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논문도 읽고 페미니즘을 처음 알게 됐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를 할 때 일본군 위안부를 떠올리면 제주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 얘기된 계기가 무엇이냐면 1990년대 제주도에 기생관광이 횡행했다. 일본에서 제주도로 기생 관광을 많이 왔고, 그에 대한 페미니즘 세미나가 처음 열리게 됐다. 거기서 처음 언급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오늘 1300번째 수요시위가 진행됐다. 수요시위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며 1992년부터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 더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25년 넘는 세월동안 지속되어 왔다. 정부의 공식 등록된 피해자 가운데 얼마 전에도 한 분 돌아가셔서 35명이 생존해 있다. 제주엔 0명이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제주에서 살아온 분들이라면 괸당 문화라는 것 작은 섬, 고립되어 있는 섬에 혈연이나 지연, 괸당문화가 뿌리 깊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범죄는 특히나 여성들이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낙인들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다. 50년이 지난 후에야 말을 하게 됐다. 제주 사회는 이런 문화가 만연해 있기에 더 이야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평균 연령이 90세에 육박해 있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상황에 페미니즘, 여성주의에 대해 외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말을 하게 됐다.  추산되는 20만 명의 피해자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강남역 근처 노래방에서 한 남성이 화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 먼저 들어온 여성을 살인했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이를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거기에 없어서 살아남았다’면서, 추모의 물결이 일어났다. 처음에 들었을 땐 ‘또 여성혐오가 일어났구나’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제주시청에서 1인 시위를 하게 됐다. 평화나비활동을 2년 가까이 하면서 1인 시위를 굉장히 많이 했다. 하루에 2~3번씩 하면서 내게는 익숙해져 있다. 위안부에 관련한 시위를 할 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내가 이걸 들고 있음으로 인해 공격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 피켓에 어떤 내용을 담았냐면 사람들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야하게 입어서 그렇다’, ‘술을 마셔서 그렇다’ 피해자를 탓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에 반해 슬럿 워크(slut walk)라는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나도 하이힐도 신고 핫팬츠도 입고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런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1년 반을 넘게 전화 상담을 했었다. 매번 성 상담을 가장한 성희롱 전화가 왔다. 여자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면 희롱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는 전화 상담을 하고 있는데 그날 하루에만 여섯 통이 넘게 성희롱 전화가 왔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게 너무 괴로웠다. 특히나 며칠 전에 강남역 여성혐오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계속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인 시위를 하면서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또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함께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 버스정류장에서 포스트잇 추모를 시작했다. 문구점에서 8절지를 사서 “Stop. 여성 혐오를 멈춰 주세요”라고 적고 포스트지 몇 개도 붙이고 국화를 몇 개 사다 놓았다. 일주일가량 진행을 했는데 내가 아침, 저녁으로 또 새벽에도 가서 수시로 확인을 했다. 툭하면 떼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대체 왜 떼어 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굴하지 않고 매번 가서 포스트잇을 붙이고 국화를 사서 가져다 놓았다. 작은 종이가방에 포스트잇과 펜을 뒀다. 행인들이 언제든 추모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포스트잇 한 장에 한 글자씩 <강남역이 제주시청앞이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은 서울 강남역이지만 만일 그 장소가 제주시청 정거장이었다면 사람들이 나의 일처럼 여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문구를 붙여봤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5월에 일어났는데 이로부터 3개월 뒤 제주도 공중화장실에서 살인 미수 사건 발생했다. 제주의소리에 <몹쓸 짓 하려 제주시청 여자화장실에서 30분간 대기>란 기사가 있다. 한 남성이 새벽에 화장실에 가장 먼저 들어온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행과 강간시도를 하려고 했다. 잘 안되어서 가지고 있던 휴대폰 충전기로 목을 졸랐는데 피해여성이 소리를 질러 지나가던 시민들의 도움으로 붙잡혔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몹쓸 짓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것은 몹쓸 짓이 아니라 성폭행이다. 강간이 맞다. 이 단어 하나하나에도 여성혐오 범죄의 핵심을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것들도 조금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일이 강남역에서 일어났을 때는 멀게 느꼈지만 3개월이 채 지나지도 않아 제주에서 이 일이 일어났다고 들었을 때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람들이 알아줄까? 나와 먼 얘기가 아닌데,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이걸 계기로 좀 알아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리빙 트래블’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왔다. 이 키워드는 내가 활동하고 있는 제주청년협동조합의 청년 기행 프로그램이다. 내가 맡아서 진행을 하고 있다. 삶을 여행한다는 콘셉트로 청년들이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행이다. 처음으로 했던 기행이 내가 스토리텔러로 나서서 <뚜벅뚜벅, 제주 여성을 상상하다>란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내 고향 성산 온평리의 해안선을 걸으면서 제주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사전답사를 갔다. 기행지 중 한 곳이 마을 용천수가 나오는 곳인데 2~3년 전에 갔을 때에는 깨끗한 물이 콸콸 나왔었는데, 물이 거의 안 나오고 오염되어 있었다. 과연 이걸 참가자들에게 보여줘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천수가 나오는 공간은 예전 제주 여성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여성들이 모여 설거지, 빨래 등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공간이란 생각이 들면서 용천수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고 오염된 이유는 옆의 해안도로가 개발될 때 투입되었던 사람들이 제주에서 삶을 살아갔던 여성들이 투입이 되었더라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삶을 살아왔던 제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이자 경험이자 목소리이다. 우리가 제주에서 좀 더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된다. 이런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제주에서 특히나 페미니즘을 외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탐라순담의 주제로 <그럼에도 내가 제주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유>라고 붙이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나와는 먼 이야기인가? 처음 시작할 때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이를 자신과는 먼 이야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몇 가지 나의 삶의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면서 얘기 했던 것처럼 이것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제주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너 즉,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로 대표되어지는 여성들과 다른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었으면, 들으려는 노력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제주여성영화제 준비를 함께 하는데 제주여성영화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여성주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9월에는 여성영화제가, 다음 달인 10월에는 제주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축제가 제주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소망한다. 이 축제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분을 모셨다. 축제를 준비하는 공동위원장인 김기홍 씨의 이야기를 짧게 들어 보겠다.  

김기홍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 퀴어의 가치와 제주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 최소한의 목표이다. 여러 가지 운동도 겸했으면 좋겠지만 보이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와 주면 좋겠다. 

이민경
: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는데 많이 참석을 못해서 아쉽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건도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
: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존재로서 존중을 받고 싶다. 그래서 다른 그 누구도 다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단지 사회의 시선으로 그들을 가리고 우리를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한 폭력이고 우리가 그것을 같이 싸워 나가는데 힘을 보태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강귀웅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
: 민경과 가까운 사이라 어깨 너머로 좀 들었었는데 이번처럼 온전히 듣기는 처음인 것 같다. 공감이 갔던 말이 우리가 어느 순간에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갖기도 한다. 어느 순간엔 우리가 기득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기득권이냐 소수자이냐가 아닌 그것을 인식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난 그 때는 그게 어떤 이슈인지도 잘 몰랐는데 나중에 서울에 갈 때 강남역에 들리니 갈 때마다 꽃이 놓여 있는 걸 보았다. 그 후로 서울에 갈 때면 들리게 되었다. 내가 느낀 건 내가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면 그런 사건이나 일이 있어도 이게 어떤 일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가거나 잘못된 이야기들을 알게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공부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공부를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김기홍
: 아까 가정폭력 통계를 이야기했는데, 가정폭력을 가정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이라 생각한다. 설문의 물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민경
: 기사로 처음 접하고 그 사이트에 가서 자료를 찾아봤다. 거기에 있던 질문 중에 이 가정폭력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와 같은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질문이 굉장히 많았다. 그 중에 몇 가지 추려왔다. 거기에 나타났던 제주의 특징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을 했다는 비율이 굉장히 낮았다.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 집에 가정 폭력이 있다는 것을 얘기 하는 것이 가해자의 잘못이나 사회 구조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 되어 버리고 나의 엄마가 부끄러워버리는 특히나 괸당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제주사회에서는 더욱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가정폭력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봤다. 가정폭력이 증가된 이유 중 하나가 제주에서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피해자 탓이 아니라는 그리고 경찰 혹은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되면서 신고횟수가 증가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제주에서 가정 폭력이 높게 나온 이유에 대한  경찰 측의 답변이 제주의 음주문화와 경제침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주문화는 핑계다. 술을 마셨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량이 감소되는 게 잘못인 것처럼 경기침체로 인해 가정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서로 많이 아는 괸당문화가 자리 잡은 제주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전달되어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가정 폭력이 있던 환경에서 자랐다. 나는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이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 얼굴에 먹칠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할머니도 가정 폭력 피해자였다. 아버지가 이를 보고 자랐고 대물림이 되었다. 그 때 당시 이게 잘못된 것이고 사회구조가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더라면 이어졌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제주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유라고 했는데 결론을 이야기 하면서 사실 이런 일들이 있고 이런 이유들이 있는데 페미니즘을 외치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고 질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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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경 제주청년협동조합 조합원이 열여덟 번째 탐라순담 이야기꾼으로 나섰다. <사진 박건도>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 그냥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주를 붙이는 이유가 있나?

이민경
: 나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나의 할머니는 해녀였다. 제주 여성은 강인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해녀들의 삶을 굉장히 고단하다.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기에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도 바다로 뛰어 들어야 했다. ‘제주 여성은 강인해’, ‘할 수 있어’라는 말들이 나오는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와서 진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들의 진짜 삶을 비춰 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강남역에서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1인 시위를 하던 나에게 ‘왜 당신이 제주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제주시청 버스정류소에서 추모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지 얼마 안 되어 제주시청 공중화장실에서 여성혐오 살인미수사건이 일어났다. 우리가 외쳐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왜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정신질환자가 살인 사건을 저지른 건데 왜 그걸 가지고 여성혐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남자 여자를 가르느냐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여성을 노린 여성혐오 범죄였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고 당신의 이야기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외쳐야 하지 않을 까 하는 뜻에서 제주에서도 페미니즘을 외처야 한다고 주제를 정하게 되었다. 
또한 제주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제주의 진짜 모습을 잘 아는 여기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제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천수에서 삶을 살아왔던 제주 여성들이 이 용천수가 왜 중요한 지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주를 잘 아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제주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들렸더라면 혹은 개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제주 여성들이 투입이 되었더라면 제주의 모습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김기홍
: 제주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나 같은 성소수자들을 얘기할 때 페미니즘을 오해하는 얘기들이 있다. 워마드와 같은, 워마드에서는 나와 같은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식으로 사진을 유포하거나 젠신병자(트랜스젠더 정신병자라는 말의 합성어)라고 부르거나 자기들의 페미니즘은 여성 위주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사람들이 행동력이 좋다보니까 어쨌든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잘 안 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중에 페미니즘이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이 많다. 트랜스 여성은 트랜스 여성대로 트랜스 남성은 트랜스 남성대로 비난을 받는다. 젠더 퀴어는 젠더퀴어대로 비하된다. 지역에서 페미니즘운동이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면 옆에서 이를 겪으면서 극단주의나 혐오가 페미니즘이 아니라 단지 혐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준기
: 나는 4남 5녀 중 막내이다. 형제가 많고 가부장 질서가 엄격한 집에서 자랐다. 페미니즘에 관해 특별히 공부할 계기가 없었다. 딸을 키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아이가 자라나서 어떤 환경에서 자랄까를 생각하게 되고 페미니즘이란 게 남의 문제가 아님을 체감하게 되었다. 이 정도가 가장 단계가 낮은 페미니즘이라고 하더라. 강의를 해 오면서 수업시간에 페미니즘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본인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특히 여학생들에게. 그런데 뜻밖에도 다수의 여성들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어떻게 여성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 있냐 고 얘기만 할뿐 더 이상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여성으로 산다면 당연히 페미니즘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왜 부정하는지 궁금했다. 

이민영
: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한다. 이러는 사람들이 많다. 너 페미니스트지?라는 물음에 하나의 낙인이 있다. 페미니스트는 과격하고 기도 세고 이런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이것도 또 하나의 억압 작용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이런 것이고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모습이라 얘기 했을 때 자신은 그런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아하는 두려움들 때문인 것 같다. 분명 얘기해 보면 공감하는 것도 굉장히 많다. 사실 페미니즘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삶의 경험을 같이 공감하면서 페미니즘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리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어던 것과 같은 맥락이냐고 생각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50년 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 못한 것, 성폭력 여성이 그 이야기를 못했던 것, 내가 혹은 내 어머니가 가정 폭력을 당해왔는데 얘기 못했던 것.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런 두려움이 작용해서 이야기를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다 페미니즘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김기홍
: 학교에서도 페미니즘이 얘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민경
: 맞다. 나는 사범대를 나와서 교생실습을 다녀 온 후 임용고시를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립학교의 수직적인 문화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 환경이 있다. 천명의 사람 있으면 천명의 삶이 있는 것이고 천개의 길이 있는 것인데 이를 인정 하지 않는 모습들을 굉장히 많이 봤다. 특히 여학생에 대해 억압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예를 들어 청소년 흡연에 대해 얘기를 할 때에도 여학생에게 홍보하는 배너를 만들 땐 피부가 나빠진다든지 임신할 몸이기 때문에 흡연은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하지만 임신에 대해서 말할 거면 남성도 똑같이 흡연하면 안 좋은 거다. 하나하나 여성혐오가 작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나 학교라는 공간에서 내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김기홍
: 페미니즘 관련된 것들은 성 교육에서 얘기된다. 음악 과목에서 이야기가 된다고 해도 실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 분위기가 그래서 말로 하기 그렇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행해지는 화장품 압수나 복장 단속 등을 했을 때 와서 얘기하고 피난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다. 이걸 왜 빼앗지? 그것도 그냥 빼앗은 게 아니라, 소지품 검사를 해서 그것도 같은 학생끼리 해서 빼앗은 것이다. 정부가 지역사회 갈등을 조장해서 지역마을 무너뜨리고 그 곳에 뭔가를 세우는 강정이나 밀양이나 그런 느낌과 너무 비슷했다. 폭력이 별 차이가 없구나. 그렇기 때문에 불의하다고 생각하면 더 뛰어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안 뛰어들면 안 바뀌니까. 학교에서 학생회 선거할 때 나온 공약 중 하나가 살색 스타킹 허용이 너무 웃겼다. 이게 왜 허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금지했던 조항이 있었던 거다. 금지 이유가 동부지역 학생부 교사 협의회에서 얘기하길 여학생들이 살색 스타킹을 신으면 속바지를 안 입고 다리를 벌려서 민망하다고 하면서 엄한 사람 탓을 하는 거였다. 책상 앞에 가림 막을 하거나 자신들이 안 보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갖다 붙이는데 이를 잘못되었다고 인식시켜줄 사람들이 필요한데 이게 잘 안 된다. 설령 이에 대해 얘기해도 반발이 너무 심하다.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반발이 심하지만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당장은 안 되더라도 결국 나중에는 나이 권력이란 게 생기는데 포기하지 않고 싸워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이민경
: 그래서 더 멈출 수 가 없다. 이 페미니즘은 이런 게 있구나, 알게 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멈출 수가 없는 게 이제야 나의 목소리로 얘기 시작했다. 어려서는 미세먼지에 대해 얘기 한 적이 없지 않나? 하지만 미세먼지라는 게 있고 우리 몸에 굉장히 나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뭔가 더 목이 아픈 것 같고 더 신경이 쓰인다. 페미니즘도 그런 것 같다.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갈 수 도 있는 건데 알고 나니 하나하나 불편하고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다. 드디어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내 목소리를 내고 내 지역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잘 그들의 편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김준기
: 나는 지리산 프로젝트라는 걸 계속 배우고 있다. 전남 남원 산내면이란 곳에는 귀농 귀촌 인구가 아주 많다. 그 곳에 우연치 않게 고등학교 선배가 살고 있는데 형수가 쎈 페미니스트다. 지리산의 마을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자, 가사분담 실천부터 시작해서 혁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살던 기존의 삶을 다 접고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많이 배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것도 있고 글로 몇 줄 본다고 다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의 전공 영역에서 예술 작품과 페미니즘이 만났을 때 문제들 가끔 대면한다. 미술관 종사자면서 예술에 대해 연구하는 게 내 직업중 하나이다. 혹시 2012년도에 홍성담 작품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을 기억하나? 대선 앞두고 나온 그림이다. 그 당시 박근혜 후보자가 출산하는 그림인데, 태어난 아기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논란이 아주 많았다. 예술분야에서는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시민사회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에게선 인간의 모성을 건드린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드러나기도 했다. 논란 중 하나가 여성의 모성을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모성은 보호되어야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과 관련된 문제인데 이를 풍자의 대상을 삼았다는 점. 이 그림을 처음 보셨다니까 혹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  

이민경
: 나는 딱 봤을 때 전형적인 여성혐오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나온 풍자하려고 그린 그림인데. 나는 모성은 신화라고 생각한다.  강요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여성은 모성이 당연히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비혼모의 경우 비난이 여성에게만 간다. 모성이 있는데 어떻게 애기를 버릴 수 있어? 낙태의 경우도 모성이 있는데 어떻게 한 생명을 버릴 수 있어? 하지만 정자를 제공한 인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여성들에게만 비난이 가해진다. 방금 그림 처음 봤는데 보자마자 드는 생각이 그 작가가 부성에 대해 다른 남성 후보자에 대해 풍자를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부성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풍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풍자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촛불 시위를 했을 때에도 나는 여성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 다른 피켓을 들었다. ‘**년’ 이런 표현들이 난 너무 불편했다. 박근혜가 여성이기 때문에 잘 못한 게 아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해 비난을 해야지 그 인물이 여성인 걸 가지고 비난하는 건 국정농단의 문제의 본질을 흐트러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늘 대상화 되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내년이 4·3 70주기여서 많은 행사가 있다. 내가 제주 4·3과 여성이란 스터디그룹을 하고 있다. 이런 전쟁이나 4·3과 같은 일들엔 여성들이 많이 지워지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얼마 전 4·3 관련 전시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이렇다 얘기하는 것들이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부터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 그림이 4·3에서의 여성을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는 지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제주도에 해녀를 표현하는 조각들이 많이 있는데 굉장히 육감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진짜 해녀들의 삶을 표현살 수 있는 작품, 조각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 해녀들의 옷을 보면 천으로 되어 있는 옷인데 옆이 트여 있고 묶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임신했을 때에도 옷 사이즈를 조절해서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굉장히 가혹하다. 이것이 해녀의 삶을 대단하다고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걸 통해 해녀의 삶이 가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자리들이 좀 더 많이 있어서 젠더감수성을 같이 더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준기
: 타이완 작가인데 난징대학살 비판하기 위해 의자에 묶여 있는 여성의 나체를 조각으로 만들고 폭행당한 시체에다가 얼굴을 일본의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의 얼굴을 조각을 해 놓은 작품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을 것 같은데, 페미니즘을 이성적 관점에서 학문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만큼이나 감성적 차원에서 여혐이 일반화 되어 있는지, 일상적으로 어떻게 재생산 되어 가고 있는가도 연구 주제 일 것 같다.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젠더지수를 어떻게 갖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미술작품이나 문학에서도 이를 계속 발견해 나가고 재해석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이민경
: 사실 페미니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기존 남성 기준으로 되어 있는 것들을 다 뒤집어 가는 작업이다. 심지어 언어 같은 경우도 사회적 약속이기에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나도 이 사회에서 자라온 사람이기 때문에 문득 문득 내 안에 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언어들 이 사회에서 학습되어진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나로부터의 변화가 내 옆의 사람을 변화하는데 도움을 주고 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시작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자리가 작지만 결코 작지 않는 자리라고 본다. 

김준기
: 우리 딸이 앞으로 10년, 20년 후엔 사회생활을 할 텐데 아직까지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엔 어린 나이지만 아이 엄마가 상당히 페미니즘 지수가 높은 사람이어서 가정에서는 가정 폭력이나 마초같은 분위기 없이 자란다고 본다. 그러나 사회가 전반적으로 나아지지 않으면 어려우리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반갑게 경청하고 싶다. 

이민경
: 알고자 하는 것 자체가 놓치지만 않으려는 게 중요하다. 젠더 권력이란 게 공기와 같아서 느끼기 어렵다. 이 권력 가진 사람은 살기 편하다. 가부장제하에서 남성들은 집안일을 안 해서 편했다. 그런데 이걸 놓았을 때엔 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들게 된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들도 이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굉장히 억압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면 아마 더 공부하고 싶고 알고 싶고 같이 하고 싶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리고 따님과 함께 페미니즘 책을 한두 권씩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여기에 있는 포스트잇들은 작년 제주시청 버스정류장 추모 게시판에 있던 것들이다. 이렇게 목소리를 하나하나씩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 사회의 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자그마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기록 = 이지혜 코디네이터·김태연 기자, 정리 =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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