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6039.JPG
▲ 9일 오전 진행된 부모아카데미 그림책 읽기 소모임.

[부모아카데미] 참여자끼리 '그림책 소모임' 결성 "아이와 책 같이 읽으니 대화가 늘었어요"

뒤틀린 교육 현실에서 부모는 자녀 학습을 '감시하는 학부모'가 아닌, 자녀에게 자기주도 학습법을 안내하는 '길잡이 부모'가 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2017 부모아카데미(나침반교실)’.

이러한 부모아카데미가 제주 학부모들의 변신을 위한 싹을 틔우고 있다. 단순히 자녀의 성적 향상이 아니라, 자녀와 서로 행복해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소모임이 꾸려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 제주시 한라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진행된 제주도교육청(이석문 교육감) 주최, <제주의소리> 주관 부모아카데미에서 강연자로 나선 허순영 제주도서관친구들 회장은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으라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누군가 시켜서, 독후감을 쓰기 위해 눈으로 훑는 형태의 책 읽기로는 자녀의 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당시 허 회장은 부모들 앞에서 자녀들을 위한 올바른 책읽기 모습을 선보였다. 천천히 읽었고, 천천히 읽어주면 아이가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반복되면 아이들은 책을 재밌는 것으로 생각하고, 평생 책을 읽는 사람이 된다.

강연이 끝나자 많은 부모들이 고민에 빠졌다.

“책이나 읽어”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야”
“책 다 읽으면 컴퓨터하게 해줄게”

누구나 자녀에게 해봤을 말. 이 말들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이 책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다는 허 회장의 얘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강연이 끝나고 부모아카데미 주최 측에 요청이 들어왔다. '(그림)책 읽기 모임'을 만들어달라는 부모들의 성화였다. 
KakaoTalk_20171030_102844449.png
▲ 왼쪽부터 허순영 제주도서관친구들 회장과 박연철 그림책 작가.

마침내 10월26일 서귀포시 안덕면 한 카페에서 허 회장을 중심으로 책 읽기 소모임이 진행됐다. 부모아카데미가 학부모들의 자발적 소모임을 잉태한 것이다. 이날 주최 측은 박연철 그림책 작가도 섭외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을 낸 작가와의 만남은 참가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림책 속에는 천천히 읽었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는 작가의 숨은 의도가 많았다.  

박 작가는 대부분 작가들이 책 속에 많은 내용을 숨겨 놓는다고 했다. 책을 천천히 읽고, 고민하고, 상상하면서 책 속의 교훈을 찾을 때 아이들이 책을 재밌어한다는 얘기다.

허 회장과 박 작가는 어른과 아이들이 서로 그림책에 대해 얘기하면서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는 부모가 직접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꿀팁과 함께.

그날 이후 부모아카데미 참가자들끼리 소모임이 본격화됐다. 11월2일 첫 모임 이후 9일 두 번째 모임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제주테크노파크 5층에서 열린 소모임에 참여한 6명의 엄마들은 공유하고 싶은 그림책을 꺼내 놓고 대화를 나눴다.

자녀에게 읽어주고 싶은 이유, 책 속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읽어주니 자녀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등 다양한 얘기가 오갔다.

IMG_6054.JPG
▲ 9일 오전 진행된 부모아카데미 그림책 읽기 소모임.
3살 딸과 함께 참가한 이수정(37)씨는 “아이가 좋은 책을 읽었으면 해서 참가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주면서 스스로도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림책은 재밌다. 최근에 ‘뛰어난 메뚜기’라는 책을 읽었다. 날개를 사용해본 적 없는 메뚜기. (그 메뚜기는)책 후반부에 날개를 사용해 하늘을 난다.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도 ‘내가 가진 날개는 무엇일까’라고 고민하게 됐다”고 의미심장한 소감을 밝혔다.

7살·6살 딸과 2살 아들을 키우는 전윤이(44)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자연스레 눈높이를 맞추게 됐다. 아이와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 또 소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한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소모임을 통해 얻어간다”고  만족해했다.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엄마들은 즐거워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스스로도 책에 재미를 느꼈다.

'학(虐)부모'가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진정한 부모의 역할을 되짚는 것이 부모아카데미의 취지다. 주최 측은 부모아카데미 강연을 통해 참여자들이 학(虐)부모가 아닌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길 원했다.

단 1명이라도 진정한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부모아카데미의 성과가 작지 않다고 판단했다. 부모아카데미가 잉태한 모임이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토대가 될 수 있기에.

부모아카데미 단골 참가자 안혜숙(48)씨는 “(그동안)아이들에게 책만 많이 읽으라고 해왔다. (그러나)느리게, 정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보니 난 아이들에게는 잔소리꾼이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재밌게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책을 같이 읽으니 대화 시간도 많아졌다. 시간이 되는 한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것”이라며 “솔직히 ‘땡잡았다’라고 생각한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6살 딸을 키우는 노진이(45)씨는 “외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우리나라에서 책읽기는 공부와 같다고 말하니 경악하더라. 외국인 친구는 어릴 때 부모가 책을 많이 읽어줬고, 심심할 때 책을 읽으니 지금처럼 시간이 있을 때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 부모아카데미 소모임의 취지도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