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개체수 급증, 일부는 야생화 '민둥산' 방불...제주시, 1억 들여 전량 매수후 도태 추진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양나무 군락이 형성된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의 비양봉(峰) 진입로에 들어서자 ‘음메에에~’하는 소리가 해안가와 오름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탐방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정상을 향해 오르자 한 무리로 보이는 염소 5마리가 가파른 경사로에서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발길을 좀 더 옮기자 최근 조성된, 야자수잎 매트를 깐 탐방로 바닥 여기저기에 염소 배설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정상에 다다르자 남서쪽 경사로에 염소떼 수십여마리 가 한눈에 들어왔다. 
 
'천년의 섬' 비양도가 10년 넘게 사실상 야생화 된 염소로 몸살을 앓으면서 급기야 제주시가 혈세를 투입해 염소 전량을 수매 도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만큼  지금 비양봉은 먹성 좋은 염소떼로 인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한림읍 북서쪽에 위치한 비양도는 동서 1.02km, 남북 1.13km의 유인도이다. 섬 중앙에는 해발 114m의 비양봉과 2개의 분화구가 있다.
 
▲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에 염소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환경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제주시가 혈세를 투입해 전량 매수토대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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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 서측 경사지에 염소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가 정상 부근을 향해 이동하며 풀을 뜯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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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양봉 경사지에서 염수 무리 수십여마리가 자리를 자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 개체수가 급격히 늘면서 환경 훼손 논란도 일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 제주 해역 한가운데 산이 솟아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이 역사 자료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비양도가 국내에서 확인된 마지막 화산활동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양도가 '천년의 섬'으로 불리는 이유다. 분화구 주변에는 비양나무군락이 형성돼 1995년8월 제주도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제는 최근 염소 개체수가 100여 마리로 급증하면서 환경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양봉 정상 부근의 경우 염소 출현으로 화산송이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15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비양봉 정상 하얀 등대 바로 아래 경사로에 서 염소 수십마리가 떼를 지어 화산송이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토사침식 방지를 위해 식생 복구작업까지 이뤄졌지만 수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로 옆에는 ‘피해구역 일대에 보호책을 설치해 동물과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팻말이 보였다.
 
▲ 제주시는 비양동 남서측 경사지에 토사 침식을 막기위해 공사를 진행했지만 훼손은 가속화 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에 염소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환경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제주시가 혈세를 투입해 전량 매수토대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비양봉 정상 부근에 동물 진입을 금지하는 안내판이 내걸렸지만 사유지인 정상 부근에는 야생화 된 염소들이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현장에서 만난 관광객 박수미(32.여.인천)씨는 “등반로에 염소 배설물이 많아 보기 좋지 않았다”며 “딸과 함께 왔는데 안전상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노세호(65.서울)씨는 “비양도의 자연을 감상하러 왔는데 염소 무리를 보고 조금 놀랐다”며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비양도에 염소가 들어온 것은 40여년 전이다. 당시 한림읍에서 농가소득 사업의 일환으로 세대당 2~3마리의 염소를 지원하면서 사육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염소들이 죽고 일부는 야생화 되면서 현재는 1개 농가에서만 염소를 사육하고 있다. 번식력도 좋아 현재는 주민들조차 정확한 개체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훼손 논란이 불거지자 과거 북제주군은 야생 염소를 축사 내에서만 사육하도록 통보하고 일대를 가축사육 제한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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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에 염소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환경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제주시가 혈세를 투입해 전량 매수토대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비양봉 정상으로 오르는 탐방로 곳곳에 염소 배설물이 널브러져 있다. 최근에는 탐방로에 염소 사체가 방치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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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는 비양동 남서측 경사지에 토사 침식을 막기위해 공사를 진행했지만 훼손은 가속화 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사육농가측은 “최초 2마리를 시작으로 이후 규모가 늘자 울타리를 만들어 키워왔다”며 “방목된 상당수 토지도 우리 소유이고 다른 농가에 피해준 것도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냄새 등의 민원이 있을 수 있지만 염소도 자연 속의 한 풍경으로 볼 수 있다”며 “울타리를 보수해 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 내부에서까지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서자 결국 제주시는 염소를 모두 매입하기 위해 2018년도 예산에 1억원을 편성해 농가측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올해 7월 제주시장 연두방문 당시 마을이장이 이 내용을 공식 언급했다”며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포획비 포함 1마리당 5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비양도의 경우 대부분 사유지이고 염소도 개인재산이어서 합의가 쉽지 않다”며 “염소 소유자와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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