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31) 김기홍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 서른한 번째 순서는 제주에서 오픈리 퀴어로 살아가면서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의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던 김기홍 씨가 주인공으로 나섰다. 

성소수자라 일컫는 퀴어(Queer)는 흔히 레즈비언(lesbian)·게이(gay)·양성애자(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딴 LGBT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 너머에 다양한 정체성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많다. 제주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던 성소수자들이 “동성애만 반대하지 말고 우리도 반대 좀 해달라”는 농담을 할 정도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가리키며 중성을 뜻하기도 하는 안드로진(androgyne),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정체성을 지닌 뉴트로이스(neutrois), 두 성을 오가는 바이젠더(bigender), 어떠한 성별에도 속해있지 않은 에이젠더(agender), 성성체성이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 등이다.

태어나면서 병원에서 혹은 국가에서 판별한 여성(XX), 남성(XY)의 성별이 아니라 그 사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을 퀘스쳐너리(questionary)라고 부른다. 

치마가 예뻐서 입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 김 씨는 스스로 안드로진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면서 음악 교사로 동료와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는 제주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다.


김태연 제주의소리 기자 (진행)
왜 탐라순담이 제주비엔날레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의아해 하시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비엔날레는 사회적 예술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 제주가 갖고 있는 현안들을 주목해보자는 과정에 투어리즘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의 엄청난 현안들이 많이 있는데, 뉴스에는 다뤄지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다보면 사회적 예술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 오늘로 서른한 번째 순서이다. 얼마 전 제주퀴어문화축제를 치르고 모시게 돼서 여태껏 해온 탐라순담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라는 주제와 관련해 큰 이야기뿐 아니라 더 미세한 이야기를 해 주시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김기홍
: 아도르노가 얘기했듯이 예술이 사회적으로 참여해야한다는 것은 현대 미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나는 음악 전공이다. 음악사를 살펴보다 보면 보통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들이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주로 남성으로 나온다. 이 중에 성소수자도 있었고 잘 나오지는 않지만 여성들도 음악가로 활동을 했었다. 비엔날레라는 예술 프로그램에 내가 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제주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가는 다른 분들은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과 같은 것을 많이 걱정한다. 나는 커밍아웃을 한 상태라 걱정을 하지 않는다.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도 치마는 입고 다녔다. 2년 전부터 입기 시작한 것 같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치마가 예뻐서 ‘입어 볼까’ 하고 입고 다녔다. 가수들처럼 랩 스커트처럼 입어봤는데 그 당시 만났던 애인이 스타킹이나 레깅스위에 입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로 입게 되었다. 입어봤더니 예뻤다. 입고 다니면서 내가 여자가 되려고 하나 이런 생각은 안 해 봤다. 치마는 여성의 복장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입고 다니면서 하나씩 하나씩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왜 이 옷을 입으려고 했을까? 그냥 예뻐서 입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나씩 여러 가지 것에 관심이 갔다. 페미니즘이나 치마를 입었을 때 화장실에 가는 것, 치마와 관련된 사회의 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성적 지향이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인데 한동안 이것을 숨기고 살았었다. 한동안 치마를 못 입었다.

김태연
: 그 시기가 언제인가?

김기홍
: 작년 5월부터이다.

김태연
: 무슨 계기가 있나?

김기홍
: 계기라기 보단 생존 때문이다

김태연
: 주변의 반응 때문인가?

김기홍
: 주변이 반응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나는 비정규직 교사이다. 작년에 제주시내 모 중학교에서 근무했었다. 학교는 보수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조금 숨기고 있었다. 그래서 바지를 입었다. 물론 화장도 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다녔지만. 치마를 올해 2월까지 입지 않다가 올해 3월부터 다시 입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내가 이렇게 입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신경을 덜 쓰시기도 하고 아버지가 뭐라 하시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 성별에 대해서 내가 확실히 남성이라고 느끼지 않았었다. 무엇일까 생각을 하면서 젠더퀴어(gender queer)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젠더퀴어 혹은 논 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 트랜스젠더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만 많이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많다.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은 젠더바이너리에 속한다고 해서 바이너리트랜스젠더라고 한다. 나는 거기에 속하지 않아서 논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라는 쪽에 속하는데 이 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안드로진(androgyne)이다. 안드로(andro)가 남성, 진(gyne)이 여성이다. 그것을 합친 젠더 중성 혹은 양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형용사로 안드로지너스(androgynous)라고 쓸 때는 중성적 혹은 양성적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리고 그 외에 보통은 조금 혼용되는 혼란스러워 하는 개념으로 바이젠더(bigender)라는 개념이 있다. 바이젠더는 보통은 남성과 여성, 두 젠더의 정체성이 왔다 갔다 한다. 일종의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 젠더 유동성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그 외에도 젠더리스 성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에이젠더(agender) 즉 나는 무성이라고 정체하시는 분들도 있다. 에이젠더 중에 뉴트로이스(neutrois)라고 신체적으로도 디스포리아(불편감, dysphoria)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다. 의학용어로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라고 한다. 성불편감이라고 번역한다. 그런 디스포리아를 지정 성별, 즉 태어날 때 의사가 지정한 성별 혹은 국가에 등록한 성별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을 디스포리아라고 하는데 나는 이것을 느꼈었다. 그것이 제3의 성이었고 그중에 안드로진이었다. 솔직히 혼란을 느꼈다기보다 이게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내 젠더의 이름을 찾아가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남이 정의 내린  게 맞는 건가 내가 생각한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들. 공부를 하다가 이쪽으로 정체화하는 게 맞겠구나 싶어서 안드로진으로 정체화했다. 그래서 나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기보다는 성정체성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렇게 정체화를 한 후에 의도치 않은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작년 탄핵인용이 되고 대선이 치러지게 되고 그 과정 중에 현 대통령과 홍준표 후보간의 이슈가 있었다. 

김태연
: 이번 축제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김기홍
: 기폭제가 되긴 했다. 그 전에 4월 중순에 군인권센터에서 동성애 군인 색출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에 관련 이슈가 정치권을 타고 흘러 나왔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반대한다고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 심상정 후보가 1분 추가 시간을 써서 성소수자들을 반대하느냐는 말을 하면서 그 날 밤에 수많은 성 소수자들이 SNS를 통해서 커밍아웃을 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것만으로 커밍아웃한 것은 아니다. 그 다음날 행성인(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항의 시위를 했었다. 주먹질을 했다느니 멱살을 잡았다느니 하는 가짜뉴스들이 떠돌면서 화가 났었다. 믿었던 주변사람들에게서 혐오 발언이 나와서 그러한 혐오발언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성소수자다. 나는 양성애자고 안드로진이다. 나는 그런 혐오발언을 듣기 싫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 가짜 뉴스가 싹 끊겼다. 운이 좋았다. 친구도 많이 안 끊겼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제외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하필 커밍아웃한 그 날 치마입고 돌아다니다가 제자들을 우연히 정말 많이 만났다. 학생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는데 응원을 많이 받았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힘들었겠다는 위로와 격려를 많이 받았다. 굉장히 운이 좋았다.

김태연
: 서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제주는 실명제 사회라고 해도 무방한 온갖 인연들로 얽힌 사회이지 않나. ‘괸당문화’라고도 이야기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주변에도 LGBT인 사람들이 몇몇 있지만 표현을 하지 못한 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김기홍
: 그런데 딱히 제주라고 해서 어려운 건 아니다. 어딜 가든 본인이 속한 사회는 다 좁다. 어디서든 힘들 수밖에 없다. 서울이 익명성이 있다고 하기 때문에 각 구역별로 커뮤니티가 생기기 쉽다. 종로의 게이커뮤니티라던가 홍대쪽의 레즈비언 커뮤니티, 이태원쪽의 게이커뮤니티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등 꽤 많이 형성되어 있다. 서울이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익명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어차피 먹고 살아야 하고 각각의 직업 가진 사람들은 좁은 사회에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이나 지역이나 아웃팅의 문제에서는 좁다. 
나는 교사이다. 교사 사회는 어딜 가나 좁다. 더욱이 초등교사사회는 무척 좁다. 교대는 특히나 거의 그 지역의 사람들이 교대를 가기 때문에 대부분 선후배 사이이고 정말 좁다. 그에 비하면 중등교사는 훨씬 낫다. 비정규직도 많고. 내가 커밍아웃 한다고 해서 나를 임용 못 보게 법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학을 경남 진주에서 나왔다. 그 곳에서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고 하더라. 어디나 다 마찬가지이다. 안 좁은 동네가 없다. 어딜 가던 간에 동네에서 오래 살고 집성촌이 있고. 어차피 다 좁다. 내가 서울 가면 당장은 익명성을 보장 받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익명성이 사라질 것이다. 
나는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도 치마를 입고 다녔다. 나는 출생신고를 하고 나서 주소지를 한 번도 안 옮겼다. 동네 분들도 30년 넘게 나를 아는 사람들이다. 편안하게 커밍아웃 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이 어려웠다. 복장은 복장이고 복장과 커밍아웃은 결이 달랐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옆에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음악교육 전공이다 보니 교회음악사를 공부할 수밖에 없다. 굉장히 억압적이었는데 이런 억압이 종교적으로 풀려지는 과정들이 있었는데 왜 이 사람들이 여전히 억압적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 카톡방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동성애자가 되려면 안드로진을 만나야 하는데 주변에 안드로진이 없다.

김태연
: 흔히 성소수자라고 하면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를 많이 떠 올린다. 그런데 이 LGBT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있다.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성소수자하면 ‘동성애’ 이런 인식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 

김기홍
: 그래서 좀 서럽다. 축제 준비하면서 가끔 이런 얘기 한다. “나도 좀 반대해줘라.” 바이섹슈얼 이야기는 아무도 안한다. 이제는 조금 아시는 분들이 생기긴 했다. 무성애자들이 서러워한다. LGBT라고만 하면 가려지는 분들이 있다. LGBT에는 유성애와 트랜스젠더만 있는데 그 외에도 신체적으로 다른 성을 가진 분들이 있다. 간성(intersex)인데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도 나온다. 10월 26일이 '간성가시화의 날'이었다. 그날 깃발 들고 알림 게시물을 만들어서 혼자 홍보활동을 했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인터섹스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염색체가 XX, XY 이 두 가지에 속할 수도 있지만 이게 아닌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터너증후군 염색체가 X 하나뿐이다. 클라인펠터 증후군 XXY, XXXY 이런 경우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가지고 있거나 질 폐쇄증이라거나 이런 것들 때문에 어느 한 성으로 정의내리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다른 생물들을 봤을 때도 간성도 존재하고 자웅동체도 있다. 지렁이같이. 하지만 간성은 자웅동체와 다른 개념이다. 아니면 성 전환이 되는 물고기들도 있다.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물고기도 번식을 위해 성전환이 되는 종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만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의사들도 아이가 태어나면 염색체 검사를 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성기를 보고 여자다 남자다라고만 얘기 한다. LGBT에서 LGBTI라고 하는 게 있는데 여기서 I가 intersex를 의미한다. 하지만 또 여기서 가려지는 게 A, asexcual 즉 무성애자들이 가려진다. 무성애자인 분들은 성적 끌림이 없다. 성적 끌림이 있는 분들은 demisexual이라고 반무성애라고도 하는데 아예 성욕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맨틱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만 성적 끌림이 있기도 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성적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성적 끌림보다는 미적인 것이나 음식에 더 많이 끌리는 분들이 무성애자들이다.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퀘스쳐너리(questionary) 혹은 퀘스쳐너(questioner)라고 한다. 나도 퀘스쳐너이기도 하다. 나는 안드로진이라고 하지만 이 안드로진이 정확한 이름일까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을 품고 있다. 이것보다 더 적절한 내 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부 radical feminist(급진 페미니스트) 분들은 젠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 터프(TERF)라고 불리는 트랜스젠더를 배재하는 radical feminist들은 생물학적 여성 남성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굉장히 혐오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보통 트랜스젠더 중에 이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를 MTF(male to female)로 인정하지 않고 MTT(male to transgender)라고 한다. 여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그 트랜스젠더들이 여성의 코르셋을 강화한다고 얘기를 한다. 나는 넌바이너리라서 신경을 안 쓰지만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왜냐하면 내가 이성으로 인식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거다. 패싱(passing)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트랜스 여성인데 성 전환 수술을 하고, 성별 정정까지 마쳤는데 이성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취업이나 뭐나 다 거부당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성전환까지도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드는데 성전환중인 트랜스젠더들은 취업도 잘 못한다.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내면 왜 주민번호 뒷자리와 다르냐는 말부터 듣는다. 이런 것들로 인해 트랜스젠더들 중 패싱에 목숨을 건 분들이 좀 많다. 이 패싱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 패싱이 안되면 먹고 사는 게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겁내시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들은 원하지 않게 호르몬 주사를 맞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웃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커밍아웃까지 하지 않더라도. 생존과 외모가 연결이 많이 되기 때문에 패싱에 굉장히 집착을 많이 한다. 뭐가 더 여성적인지 남성적이라는 것에 집착을 많이 한다. 나는 옳다 그르다고 얘기를 못 하겠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렇게 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내가 안드로진으로 살면서 겪은 일 중에 처음엔 사람들이 나에게 “남자가 치마입었어”라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아가씨, 티비에서 봤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외모는 여성적인데 행동은 남성적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여성적 남성적인 게 뭔지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안드로진이라고 정의 내리긴 했지만 이 용어에 불만이 있다. 남성과 여성을 합친 단어이지 않나. 나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옷을 입고 싶고 그게 치마일 뿐인 거고 화장하는 거 좋아하고 머리도 기르고 싶고 그런 것뿐인데 그런 것을 보고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 왈가왈부 하는 게 좀 슬프다. 뱃지를 보여 드리겠다.

김태연
: 각자마다 의미가 있지않나?

김기홍
: 트랜스젠더 깃발이다. 여성을 상징하는 분홍과 남성 상징 파랑이다. 성전환에 대한 깃발이다. 트랜스젠더 전체를 상징하는 깃발인데 다른 성적 지향이나 다른 성별 정체성을 가진 분들이 예쁘다고 많이 탐내는 깃발이기도하다. 이게 젠더퀴어 깃발이다. 넌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깃발이다. 젠더퀴어는 제 3의 성이지만 넌바이너리 트랜스젠더랑 젠더퀴어랑 거의 비슷한 말이지만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은 것 전체를 넌바이너리라고 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넌바이너리 자체를 젠더퀴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안드로진 깃발이 두 가지가 있는데 내가 가진 건 이것 밖에 없다. 

김태연
: 다른 건 위 아래가 다르다거나 그런 식인가?

김기홍
: 색깔들이 다 다르다. 성 소수자하면 무지개 깃발을 많이 쓴다. 무지개 깃발은 일곱 색이 아니라 빨주노초파보 여섯 개다. 동성애자들만 상징할 때 깃발이다. 바이섹슈얼 깃발도 있다. 위에는 빨강, 아래는 파랑 그리고 가운데 겹쳐지는 부분이 보라색이다. 인터섹스 깃발도 있는데 간성깃발은 노란색 바탕에 보라색원이 안에 있다. 깃발을 보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원불교이다. 원불교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각자 상징하는 깃발들이 있는데 자긍심 깃발(pride flag)라고 한다. 우리가 행진을 할 때 이 깃발들이 우리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이런 것들이 많이 쓰인다. 이번 퀴어 축제의 상징 ‘퀴랑이’이다.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공모를 했다. 퀴어조랑말이라고 해서 퀴랑이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내가 밀었던 건 ‘무사’이다. 그것을 제안한 분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지역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지역에 퀴어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라는 의미도 담고,  왜 네가 성소수자냐 라고 물어볼 때 그걸 왜 물어 보냐는 의미로 무사. 하지만 퀴랑이가 채택되었다.

김태연
: 축제를 치르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지 않았나? 아마 인생 출연할 TV와 뉴스 다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김기홍
: 사실 올해 7월 서울에 퀴어문화축제 갔다가 TV조선에서 인터뷰 했다. 많은 분들이 보셨더라. 그리고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다음 메인에 걸렸었다. 2007년에 대선 때 웹 전근성이나 문서 접근성에 관해 인터뷰 했었는데 그것도 뉴스에 났었다. 평생 날 것 다 난 것 같지는 않다. 

김태연
: 축제를 준비하면서 언론에 많이 조명된 것 같다.

김기홍
: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김제동 씨가 왔을 때 나가서 발언 했었다. 그 이후 나름 유명해졌다. 화장하고 다니는 것만으로 유명해졌다. 화장하는 남자라고. 그 이후 제주퀴어문화축제 준비하면서 대외적으로 얼굴 비출 일이 많아졌다.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 위원장이 된 것도 내가 유일한 오픈리 퀴어(Openly Queer)이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를 오픈리라고 한다. 오픈리 퀴어가 별로 없다. 

김태연
: 별로 없다는 게 범위가 어느 만큼인가?

김기홍
: 일단 제주에서는 거의 없다. 내가 성소수자라고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동성애 하면 에이즈를 많이 떠올리다 보니까 이 사람들은 숨을 수밖에 없다.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결시키면 안 된다. 연결시켜서 이 사람들을 차별하게 되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3조에 있는 의무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동성애자들과 많이 연결시키면서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라면서 사람들이 많이 괴롭힌다. 그래서 동성애자들도 커밍아웃을 못한다. 양성애자들은 커밍아웃하면 일부 동성애자들이 안 좋아할 수도 있고 이성애자들 중에도 안 좋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양성애자들도 커밍아웃이 쉽지 않다. 무성애자들은 무성애자라고 얘기를 하면 고자냐 등의 별 별 이야기들을 다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커밍아웃한 사람이 조직 안에 있으니까 그 사람이 조직위원장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게 아닌 사람이 조직위원장이 되면 퀴어들에 의한 축제가 아니라 퀴어들을 위한 축제가 되어 버린다. 시혜적인 축제가 되어버린다. 

김태연
: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열어줄게 그런 뜻이 되어버린다는 건가?

김기홍
: 그런 것을 고민했다. 솔직히 혼자하기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분에게 같이 하자고 부탁했다. 앨라이(ally)인 신현정 님이다. 앨라이는 동맹이란 뜻이다.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앨라이라고 한다. 나와 현정님 둘이서 공동위원장을 하게 되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다. 단독으로 했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태연
: 개인적으로는 상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김기홍
: 나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미안했다. 어차피 나는 내가 커밍아웃하면서 떠안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떠안아서는 안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게 있다고 생각을 했다. 화살이 나에게만 미치면 좋은데 현정님에게도 안 좋은 댓글이 달렸었다.< 제주의소리>에 달린 악플들은 고소를 했다. 그런 악플같은 것은 그렇다 쳐도 실질적으로 반대 운동에 나선 사람들 중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감사한 입장이었다. 알아서 홍보해 주는 셈이었으니까. 우리에겐 공짜 광고판이었다. 정말 열심히 광고해 주었다. 덕분에 분노의 모금과 분노의 참가자들이 늘었다. 하지만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안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 분들이 민원을 넣으셔서 취소되었다고 생각하셔서 모르고 못 온 사람들도 있었다. 

반대하러 온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들은 이야기인데, 동성애 반대 서명을 안 한다고 뭐라고 하기도 했다고 하더라. 제주의 성소수자 단체가 아예 없는 줄 알았는데 동아리가 하나 있었다. 영어교육도시의 어느 학교에 청소년 학생들이 만든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다. 동아리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사진 찍다가, 동성애 반대 집회를 하는 무리가 서명 해 달라고 했는데 안 하거나 반대한다고 하면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김태연
: 나도 싸웠다. 서명 안 하겠다고 하니 뭐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내게도 서명 안할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 하니 권리를 아무데다 갖다 쓰지 말라고 하시더라. 나는 충분히 관심 가지고 있고 내 개인적인 견해이니 존중해 주면 좋겠다고 하니까 요즘 젊은 것들 사회에 이렇게 무관심해서야 되겠냐고 그게 얼마나 사회를 망치는 일인 줄 아냐고 얘기를 했다.

김기홍
: 세계인권선언 자체가 국제 관습법에 준한다. 그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그런 혐오를 내비치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혐오를 내비치고 있으니까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그걸 반대한다. 2006년부터 싸웠다. 2006년에 차별금지법 입법 예고를 국가인권위원회에 했었고 그 이후에 개신교 계열과 싸움이 있었다. 개신교 계열에서는 종북, 땅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다가 이슈를 동성애 쪽으로 돌렸다. 이 이슈를 동성애 쪽으로 돌린 게 다른 게 아니라 1950년대 미국 상황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혐오 세력이 퀴어퍼레이드를 만들어 냈다. 1950년에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무너뜨리려고 계획하고 있고 자신에게 그 명단이 있다고 말 하면서 공산주의자들과 연계된 사람들에 동성애자들을 넣었다. 그 이후 1952년에 정신과 진단 기준에 처음으로 동성애가 정신질환으로 들어갔다. 이것에 의문을 품은 정신과 의사들이 꽤 있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성소수자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성소수자들이 점점 숨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숨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할 곳이 필요해서 커뮤니티가 생겼다. 이야기 할 사람들이 필요해서 모였던 곳이 스톤월이란 술집이었다. 매일같이 단속이 있었는데 1969년 6월 유독 심하게 저항하던 사람이 생겨서 그 때 항쟁이 커졌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하면서 인권단체들의 행보가 시작되었고 나중에는 모여서 그 날을 기념한 게 퀴어 퍼레이드의 시작이다. 그 이후에는 지역별로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래서 혐오세력 분들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게 폭동에서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어떤 매체에서는 여기에 동조하는 정의당은 정은당이다라고 말한다. “동성애로 독재를 하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이다”라고 별별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나는 독재 자체가 맘에 안 드는 사람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면 다원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다원성 자체를 무시하는 혐오세력도 싫어한다.

김태연
: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치러진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어땠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시기에는?

김기홍
: 성공적이었다. 퀴어문화축제를 인증해 주는 인물이 여기에도 왔다. 그 사람이 안 오면 퀴어문화축제가 아니라고 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있다. 행진도 거의 1000명쯤 되었다. 나름 여러 가지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구호 같은 것은 아쉽긴 하다.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못 쓴 것은 아쉽고 미안하기도 하다. 준비하면서 솔직히 실무를 너무 몰랐다. 나도 처음에는 교육담당으로 들어갔다. 성소수자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갔다가 위원장이 되었다. 축제나 행사의 실무를 잘 모르다보니 그런 부분에서 다들 좌충우돌 했다. 그 와중에도 잘 꾸려 주어서 축제 진행과 퍼레이드까지 다 잘 되었다.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연대해 준 외국 친구들과 육지에서 연대해준 단체와 외국 단체들, 제주의 개인들과 단체들까지 감사한 축제였다. 처음 예산을 잡을 때 적자 걱정을 했는데 적자를 보지 않았다. 내년에도 축제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법적문제도 조금 있었다. 민원조정위원회가 열렸다. 민원조정위원회가 열린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참여하기 싫었다. 이게 열린 적도 없었고 열리는 법적 근거도 희박하다. 어떤 이해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민원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민원관련법에 따르면 민원 대상은 행정기관, 국가기관밖에 없는데 우리가 행정기관이지는 않다. 내부적으로 가자라는 결론이 나서 참여를 했다. 굉장히 모욕적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없고, 퀴어문화축제라고 하면 음란으로 치부해 버리더라. 나중에 회의록을 봤는데 반대하시는 분들의 주장들은 어이가 없었고 내가 했던 주장들은 무시되었다. 육지에서 성소수자들이 찾아온다고 했을 때 굉장히 화가 났다. 제주에는 성소수자가 없냐? 내가 성소수자인데. 도민 정서를 언급하면서 그러니까 나는 정서에 안 맞는건가? 

김태연
: 나는 도민이 아닌가?

김기홍
: 자기들이 교육 기관도 아니면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했다. 어의가 없었다. 내가 교사인데 그리고 이제까지 음란물 전시도 이야기 했다. 이제까지 처벌받은 전례가 없다. 노출이 있었다고 해도 처벌받은 전례가 없었다. 그리고 오히려 기소되었던 사람은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 인분을 뿌린 분, 그 분이 퀴어문화축제를 인증해 주시는 분이다. 그 분이 오히려 기소되어 현행범으로 잡혀갔다. 아무런 처벌 사례가 없었다. 음란하다 하니까 그래 우리 음란해 하면서 그런 식으로 보여줬던 것을 갖고 음란한 축제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성인 용품, 성기구도 대 놓고 전시하는 것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고시상 문제 되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전시한 사례도 없다. 그거 가지고 이야기를 했던 분이 그 걸 가지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했던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고발이 들어가서 경찰이 왔는데 이건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왜냐하면 청소년 유해물품에 해당하는 물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서 고시한 청소년 유해물건에 해당하는 물건들이 없었다. 그런 것들을 근거로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래도 설마 취소할 수 있겠어? 요식 행위겠지. 자기들도 뭔가 근거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기다리는 중에 어느 기자분에게 연락이 왔다. 취소되었는데 들었냐고. 너무 황당했다. 취소되었다면 공문을 받아야 하니까 공문이 없으면 저희가 법적 조취도 못 취하니까 공문을 받으러 갔다. 갔더니 공문이 없다고 하더라. 언제 결제될지도 모른다고 하고. 허가 취소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들에게는 취소할 권한이 없다는 거다. 공원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허가 내주는 것은 자체가 자기들에게 권한이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 이 공문의 허가는 무엇인가? 말은 허가지만 행정상 안내에 불과하다고 하는 거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생각한 건 부스 설치도 해야 하니까 점용허가 쪽으로 협조 요청을 한 거였다. 어디든 간에 장소는 협조 요청을 하게 되어 있다. 집행정지 신청을 했는데 시청에서 자기들은 공문에 허가승낙철회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허가승낙이 아니라 그냥 안내 사항을 철회한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안내를 철회할 수 가 있나? 그쪽 법률 대리인이 그렇게 이야기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우리 쪽 법률대리인은 점용허가문제를 걸고 넘어졌는데 그 쪽에 대해서는 아예 검토를 하지 않았다. 점용허가를 거부할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그리고 거기서 얘기 했던 게 원고 적격이 아니라고 했다. 그 단체와 내가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들이 먼저 이해관계라고 해 놓고 이해관계가 없다고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내가 비온뒤 무지개재단이나 인권재단 측에 기금 후원 요청을 했을 때 내가 이름을 걸고 책임을 지는 걸로 받아 왔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내가 책임지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쪽에서 할 수 있는 논리는 다 무너진 거다. 법원에서는 불허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 쪽에서 인권위에 해명할 때도 똑같이 했다. 공문에는 불허되어 있지만 자기들은 못하게 할 의사가 없다고 표명을 했다. 우리는 점용 허가쪽을 걸고 넘어졌는데 시청에서는 아무런 말도 안하니까 이 부분은 타당하다고 해서 집행정지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에도 진정을 넣었다. 법원에 출석한 날과 동일한 날 거기 위원회가 열렸다. 그런데 시청 측에서는 두 시간 전에 법원에서 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허가 불허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 지 황당했다. 계속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법적 근거도 대지 못하니까 우리더러 나가 있으라고 했다. 한참을 얘기하고 난 뒤 우리가 들어갔을 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원래 직업이 교사라고 얘기 했다. 누구보다 더 청소년에 관해서 신경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축제를 함으로써 청소년 성소수자 학생들이 탈학교 학교를 자퇴를 한다거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아웃팅을 겁낸다거나 커뮤니티를 못 만들어서 친구들 관련된 걱정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오히려 타파할 수 있는 축제가 될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런 단체들도 왔다. 마침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도 부스를 신청했다. 성소수자보호원에서도 왔다. 청소년들이 많이 찾아와서 띵동에서 놀라기도 했다. 띵동을 몰랐던 친구들도 많았다. 이 청소년들도 와서 의지할 곳이 생길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존재하니까 모든 부모가 다 성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건 아니라는 거에 의지도 되고. 정말 의미 있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나도 계속 교직 생활을 할 거다.  학교에 커밍아웃을 한 이유 중 하나는 학교에도 성 소수자가 존재하고 특히나 제주는 괸당사회라는 말 많이 하는데 여기서 성소수자 교사가 오픈리인 성소수자 교사가 있으면 성소수자에 대한 우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문제 삼았을 때 학생들이 이야기 하면 버릇없다고 말하는 교사들도 있다. 거기에 대해 성소수자로서 발언할 수 있는 존재가 추가되는 거다. 제주에서 시험을 칠 것이고 제주에서 교사생활을 할 거다. 
다른 지역보다 제주 지역에서 하려고 생각한 것은 그 괸당 사회란 말이 너무 싫은 거다. 나도 누군가의 괸당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깨고 싶었다. 작년에는 화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사직서를 이야기한 분이 있었다. 내 담임이었던 분이고 교무부장이었다. 사실 그 때쯤 성희롱을 당했었다. 어떤 학생이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봤다. 학교 안에서는 내가 남성이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커밍아웃을 한 상태도 아닌데 그냥 게이라고 단정하고, 아니면 트랜스젠더라고 단정하고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본 것이다. 모욕감을 느꼈다. 성희롱이라고 인식을 했다. 복장이나 화장만으로 인해 모욕감을 줬으니까 벌점을 줬다. 왜 벌점이냐고 학생이 문제 삼았다. 그 학생이 “이게 왜 성희롱이냐,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얘기를 한 거다. 그 학생 때문인지 몰라도 그 이후로 교장실로 민원전화가 많이 들어왔다. 남자교사가 화장을 한다고. 교장 선생님은 화장을 할 수도 있다면서 넘겼는데 수업 중에 화장을 고쳤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다. 수업 중에 그렇게 했다면 문제가 된다고 판단을 한 거다. 남자 교사 중에 화장을 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누가 봐도 나인 거다. 그래서 부장회의에서 그 이야기를 했고 화장을 하지 말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야겠는데 교사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은 교감이나 평교사 중에는 교무부장이 가능한데 교무부장이 내 중학교 때 담임이어서 그 분이 이야기하기로 된 거였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지 모른 채 어느 날 밥 먹자는 이야기에 나갔더니 화장 안하면 안 되냐고 하더라. 화장을 꼭 해야만 하겠느냐,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고. 나는 면접 볼 때도 화장을 하고 가지 않았냐고 말했다. 남자는 남자답게 해야 되지 않겠냐면서 성별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더라.  그 전 주에 교내 연수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서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라는 말이 성희롱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성역할을 강요하는 게 좋지 않다는 애기를 했었는데, 참 당황스러웠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정 화장을 해야겠으면 사직서를 내라고 말했다. 그 때가 9월 말이었는데 3개월만 참고 3개월만 화장을 하지 말고 정 안되겠으면 그 때 사직서를 내라고 말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 전체 교사 모임이 있었는데 교감선생님이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그렇게 성역할을 본 보이라고 말했다. 대체 지난주에 했던 성폭력예방은 뭔지, 그날 어떤 선생님은 그 동안 내가 매일 화장한 걸 봐 왔으면서 “남자가 왜 화장을 해요?” 라고 말하더라. 남자가 왜 머리 기르느냐는 말도 했고. 그런데 거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고 숏커트를 하고 계신데 내가 그 선생님에게 왜 선생님은 머리가 그렇게 짧냐고 말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인 것을 숨기고 살아도 그런 일을 겪는다. 
이번 해에 임용에서 최종을 갔다. 그래서 면접 보러 다니는데 한 군데에서는 이렇게 화장을 걸고 넘어졌다. “우리 학교에서는 여학생들 화장 못하게 단속하는데 선생님이 화장을 해서 학생들이 ‘선생님도 화장을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게 하냐’고 하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화장한 여성 면접관이 하시더라. 너무 황당해서 이거 성차별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이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애초에 학생들 화장 못하게 막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애초에 통제하는 것 자체를 당연하게 여기는 상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다고 여긴다. 다른 학교에 면접 보러 갔을 때는 머리 길이를 걸고 넘어졌다. “남학교인데 학생들 두발 단속 엄격하게 하는데 선생님 머리가 이렇게 길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말하더라. 이번엔 성차별이라는 말은 못하겠고 머리를 묶고 들어갈 거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다른 계획도 있었다. 머리를 길러서 기부할 거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넘어가긴 했다. 말은 안했지만 나 같은 사람이 껄끄러울 것이다. 단속할 근거도 취약하고.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학교 안에서도 의문을 품는 부분이 있다. 
학생회 선거에서 살색 스타킹 허용이라는 공약이 나오더라. 왜 이것이 허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황당하더라. 이게 안 되었다는 것도 몰랐었다. 다른 여선생님이 왜 허용이 안 되는 건지 먼저 물어 보셨다. 학생부 쪽에서 나온 답이 내 입장에서 보면 가관이었다. 학생부 선생님들이 모여서 한 이야기 인데 여학생들이 살색스타킹을 입을 경우 속바지를 안 입은 상태로 다리를 벌려서 속옷이 보이면 민망한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이야기이다. 그럼 여름에 애들이 스타킹도 안 신고 속바지도 안 입고 다리 벌리고 앉아 있으면 어떡하려는 건가? 그냥 안보면 되고 아니면 책상에 가림막을 해 놓으면 되고 아니면 교복을 치마 없이 바지만 해도 되는 것이지 않나?  왜 이렇게 성역할을 강요하면서 통제주의적일까 생각이 들었다. 통제를 하기 때문에 교사도 통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통제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물론 교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 모범이라는 것이 도덕적 모범이고 전문직으로서 윤리의식을 갖고 일한다는 것 자체를 보여주어야 하는 거지 통제하기 때문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국가의 교사로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내뱉겠냐? 커밍아웃도 못 한 상태에서 비정규직 주제에 무슨 말을 하겠냐. 마침 그 이야기를 꺼냈던 사람은 회식자리에서 비정규직을 비하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열 받아서 사과하라고 했더니 나를 보고 비웃었던 사람이다.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미움을 받은 것 같다.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학생들도 있었다. 

김태연
: 그래서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김기홍
: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 진짜 퀴어 원래 뜻 그대로 괴상한, 이상한 그런 존재인 거다. 나 말고 다른 분들이 제주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 궁금했다. 

김태연
: 그렇다. 더 왔더라면 다른 분들의 이야기 더 넓은 이야기가 나왔을 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김기홍
: 퀴어문화축제때 제주에서 살다 서울로 간 사람이 와서 에세이를 낭독하셨다. 제주에서 첫 사랑인 형과 만났던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 주었다. 많은 분들이 울었다. 그 분 첫사랑이 얼마 전에 죽었다. 그 분도 울컥울컥 하면서 제주의 어느 동네 어느 동네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동네들을 아니까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거다. 제주에도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고 그 분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성소수자들의 삶도 별로 다를 바 없다, 다를 바 없는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 거다. 

김태연
: 이번으로 끝이 아니지 않나.

김기홍
: 계속 할 거다. 계속 하면서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제주대, 관광대, 국제대, 한라대 여러 학교에 성 소수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드러내서 이 사람들과 함께 혐오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퀴어인 자영업자들도 있는데, 축제 전에 포스터를 붙여 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하신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말이 슬펐다. 자기들이 이반(성소수자를 가리키는 은어)들만 상대하며 장사하기에는 힘들다고 말이다.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들도 편안하게 열고 살 수 있는 제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이 쉽진 않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드러냈으니까 앞으로도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것을 계기로 함께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할 사람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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