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석 칼럼] 구상금 소송 철회 시의적절...정부와 제주도는 공동체 회복 德治 베풀어야 

오늘은 동지(冬至). 어둠이 가장 짙고 긴 날이면서 캄캄한 어둠을 뚫고 광명이 시작되는 날이다. 중국의 요순시대에는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이 지난 12일 전국 뉴스를 타고 전해졌다. 법원의 강제조정을 수용하여 정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반대 투쟁을 했던 강정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제기한 34억 5000만원 상당의 구상금 청구소송을 취하하기로 한 것.

상충되는 여러 헌법적 가치를 잘못 저울질한 박근혜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문재인 정부의 용단에 의해 628일 만에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일부 정당과 보수 언론은 구상권 포기에 따른 국고 손실과 불법 시위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법치가 후퇴했다며 취하 결정을 강력 성토한다.

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결정에 환호하며 이를 계기로 구럼비의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195190_224406_1401.jpg
▲ 지금은 사라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이곳은 해군기지로 바뀌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태어난 지 3만 살로 추정되는 구럼비 바위는 길이 1.2Km, 너비 250m에 이르는 하나로 된 거대한 너럭바위. 2012년 봄 다이너마이트로 구럼비 몸뚱이가 산산조각 났다. 강정 마을의 구심체였던 그곳엔 해군기지가 들어서 이젠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10년의 반대 투쟁 과정에서 700명이 넘는 주민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연행되고 그들 중 상당수가 업무·공무집행 방해, 집시법 위반, 재물손괴, 일반교통방해 등으로 처벌 받았다.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만도 392건, 3억8000만원에 이른다.

첫 번째 화살에 꿰찔린 구럼비가 연이어 구상금 폭탄이라는 두 번째 화살에 또 다시 꿰찔리면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을 입었다.

관(官)이 민(民)을 상대로 하는 구상금 청구 소송은 매우 희소하고 이례적이다. 2004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 분쟁, 2005년 새만금방조제 건설 반대 투쟁, 2008년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 등 대표적인 공공갈등 사례에서도 사업 주체인 정부가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청구한 적이 없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2007년 발표 후 첫 삽을 뜨기까지 5년, 새만금 개발사업은 1991년 11월 첫 공사 후 두 번의 중단을 거쳐 2006년 4월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기까지 만 15년이 걸렸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는 2015년 "분쟁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투입되는 예산 등 직접비용 말고도, 차량 정체 등 간접비용까지 다 합한 사회 갈등·분쟁 비용은 한 해 70조~100조에 육박할 정도로 사회적 비용도 크다"고 밝힌 바 있다.

필자가 ‘우근민 도정’ 당시 제주특별자치도 사회협약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또 주민들과 국무총리실 관계자 등을 수차례 면담하며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공사 지연 사유는 반대 투쟁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군의 잦은 설계 변경, 공유수면 매립 시 환경 훼손 등으로 인한 보완 대책 수립 등도 중요한 지체 사유의 하나다. 공사 지연으로 인한 지체상금을 피해 당사자인 강정 주민들에게 추궁한 것은 아물지 않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주권자인 국민과 주권을 일부 대행하는 정부가 소송으로 정면충돌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구상 소송의 지속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고려한다면 현 정부의 대승적 결단은 시의 적절한 것이 아닐까.

문득 2005년 상영된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의 끝 장면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넘어져 나뒹구는 십자가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소리 나지 않게 바로 세운다. 심지어 바닥에 그려진 십자가조차 함부로 밟지 않고 피해서 왕궁의 중심부에 이르러 자신의 신을 향해 기도한다. 

“영혼을 자각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혼이 소중한 것을 알기에 상대의 영혼 또한 소중함을 모르지 않겠지요.”

포로가 된 십자군들에게 귀향의 길을 터줌으로써 보여준 살라딘의 관용과 화해의 리더십으로 성지 예루살렘엔 평화가 깃든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관용과 국민 통합의 리더십이다. 우리가 보살펴야 할 것은 무너진 구럼비가 아니라 바로 그 안에 살고 있는 강정 사람들의 평화다.  

185782_213114_4828.jpg
▲ 김승석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구럼비의 트라우마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도민 통합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수형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뒤따라야 하고, 정부와 제주도는 강정마을의 갈등 해결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덕치(德治)를 서둘러 베풀어야 할 것이다.

동지를 계기로 일양시생(一陽始生)의 기운이 강정 마을에 너르게 고르게 위아래로 샘솟아 퍼지길 기대해 본다. / 유현 김승석 공동대표·변호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