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42) 제주여민회 ①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 마흔두 번째 순서는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단체인 제주여민회의 30년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3일 오후 4시 제주여민회 사무실(제주시 용담로 134 3층)에서 제주여민회 전, 현 대표와 이사, 사무처 관계자 등 6명이 둘러앉은 가운데 ‘제주여민회 30주년-서른 피어나다’를 주제로 탐라순담을 진행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제주지역에도 사회운동단체가 폭발하듯 생겨났다. 민주화가 가장 간절하던 때에는 여성 운동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대표를 맡을 40대를 찾지 못해 ‘아이들’이라고 불릴 법한 20~30대 여성들을 주축으로 독자적인 여성 운동 단체를 꾸린 것이 1987년 11월 29일이다. 창립 이후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며 성차별 제도 개선을 위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무려 30년, 강도 산도 세 번은 바뀌었을 시간이 흘렀다. 제주여민회에게 지난 30년은 제주지역 진보여성운동의 역사이자 제주여성의 현대사이다. 손으로 하던 빨래가 세탁기의 몫이 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주사회, 나아가 한국사회의 성 평등은 요원하기만 하다. 

강인함으로 일컫는 제주 여성의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 굳어져있음에도 행정기관의 고위직이나 선출직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것이 현실이다. 서른 해를 맞이한 제주여민회가 ‘제주 여성의 공적 대표성 강화’를 다음 과제로 내미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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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 마흔두 번째 이야기는 제주여민회의 회원들과 나눴다.

김태연 
: 오늘 탐라순담은 ‘제주여민회 30주년, 서른 피어나다’를 주제로 진행한다.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영순 
: 제주여민회 공동 대표를 맡고 있고, 1987년 후원 멤버부터 시작해서 현재는 대표를 맡고 있다. 

이경선 
: 같이 공동 대표하는 상임대표 이경선이다. 20주년 때도 대표를 맡았다. 

좌옥미 
: 20주년 때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6부터 2009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오옥만 
: 창립 멤버이자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현재는 이사라는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양희주 
: 작년 2월에 가입해서 지금은 제주여민회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조은숙 
: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이경선 
: 두 분이 30주년 공동 준비위원장이라서 모시게 되었다. 

김태연 
: 3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서도 물어볼 예정이라서 이따가 마이크를 넘기겠다. 제주여민회는 어떤 취지로 설립되었고 어떤 기치를 내걸고 활동해 왔나?

오옥만 
: 설립된 지 30년이 되었다. 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제주지역에 사회운동단체들이 생겨났다. 제주여민회는 11월 29일 가장 먼저 창립했다. 현재의 민예총이나 전교조도 그렇고 4․3연구소 등 쭉 생겨나는 시기였다. 당시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여러 가지 준비 중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여성단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주변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활동(민주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20대 때에는 여성 운동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몇몇 사람이 모이게 되었는데, 너무 너무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왔다.  YWCA 등 여러 단체들이 있지만, 여성의 권익․지위 향상, 남녀평등 이런 사회 민주화에 관심이 있는 진보적 여성단체가 없어서 지역에서 만들게 되었다. 

김태연 :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 바뀌었을 시간인데. 실제로도 그 동안 우리 사회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 가운데 여민회가 이끌었던 운동의 방향이나 목표 또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을 텐데, 그에 대한 설명을 해 달라.

김영순 
: 강산이 세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처음에 여민회를 만든 주최적인 구성원은 후배들이다. 20대 중반인 친구들이 한다고 들었을 때, 나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그걸 박수치면서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오옥만 전 대표를 비롯해서 여민회 ‘아이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역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30, 40대가 되고 흘러오는 과정에서 여민회 활동이라는 것이 지역사회 여성운동이라는 것은 당시 현안에 대응하고, 치고 나가는 부분이 있었다. 
여성의 대표성, 정책 문제에 대해서 지역의 여성 정책을 운영하는 행정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어떤 집단이 있는데, 그게 ‘제주여민회’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공무원들이 거버넌스를 되돌아보게 하도록 작용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흡한 부분들도 많다. 여민회 ‘아이들’이 40대 나이의 대표를 찾지 못했던 시절에서 지금은 20~30대 연령층의 활동가를 찾아야 하는 부분은 모든 시민운동이 비슷한 현상이자 현실이다. 손으로 빨래하다가 세탁기가 빨래하는 것처럼 물질적인 것은 변했지만, 성 평등이나 양성평등이라는 부분을 말하자면 제주 성 평등은 30년 전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면서 암울하다고 느꼈다. 

김태연 
: 30년 동안 오면서 여러 경향들에 대해서 대처해왔을 것이다. 그때마다 운동의 기조가 사회와 맞닿아있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 부분들에 대해서 시기별로 정리를 해주다면?

이경선 
: 시기라기보다는 금방 오옥만 선배가 말한 것처럼 예전에는 남녀평등, 성 평등, 평등을 비롯한 개념만 보더라도 페미니즘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물론 그에 따라 내용도 변화한다. 1980~90년대까지는 어느 지점부터는 양성평등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성 평등을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기점을 페미니즘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는 기층 여성들, 노동자 농민 여성들 등 억압받는 대상으로 하는 여성운동에서 사무직 여성이나 노동자 대상으로 확대 하자고 논의를 하면서 활동했다. 1990년대 중반에서는 성폭력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폭력에 대응하는 운동을 했다. 1995년도에 성인권상담소를 개소․운영했다.  10년 정도 인권 운동하다가 2005년에는 성 인권을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누게 되었다. 여성 문화에 대해서도 집중했다. 2006년대에 성 인권파트는 제주여성 인권연대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여민회가 여성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0년대부터 제18회 여성 영화제를 시작했다. 정책적 부분에서는 여성정책에 대한 감시,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 시기에는 여성정책에 대한 제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연 
: 두 가지 질문으로 쪼갤 수 있겠다. 여성운동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이며, 지역에서 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어느 지역이나 지역성과 분리될 수 없지만, 제주라서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는지, 혹은 어떤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서 운동을 일으켰는지 궁금하다.

김영순 
: ‘제주 여성 담론’이라는 부분에서 보면 지역에서 ‘제주 여성’을 호명하는 분위기가 있다. 2007~8년도쯤 강인한 여성이 진짜인가 그런 부분에 대해 학술 조사했다. 그걸 기초로 해서 논문도 썼다. 그런 담론이 여성들을 소비하는 형태로 지역사회의 경향이 가고 있다. 여성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지역이 특성과 맞물려서 하는 부분이 과연 있었나? 사건들이 있을 수 있으나 지역의 가부장 문화를 바꾸는 것이 요원한 현실이다. 여성들에 대해 말하는 현실을 이야기 하자면 여성의 대표성 이야기 할 때, 다른 지역의 의회 관계자들이 와서 강의할 때 2014년 의원이 두 명이 당선되었다고 하면 놀란다. 제주사회가 과연 그렇느냐고 반문한다.

김태연 
: 바로 그 질문을 하려고 했다. 지역사회에서 제주 여성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경향이 있다. 제주 여성이라는 단어가 대표성을 띠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떤 상황에서 강인하고 불굴의 의지로 생계 꾸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럼에도 어떤 곳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 드물다. 비례대표가 아닌 경우에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선출되는 경우도 경악스러울 정도로 드물다. 최근 들어서 이러한 의식들이 깨어나고 있는 느낌은 받지만 여전히 멀었다. 곧 있으면 지방선거 다가오는데, 이런 맥락에서도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과제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오옥만 
: 여민회 차원에서 준비를 의미하는가? 정치부분에서? 30주년하면서 100인 원탁회의 의제 정리하면서 여성의 대표성 문제와 더불어서 원탁회의에서 비율을 나눠봤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정치가 1순위로 나와서 저도 놀랐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공천부터 준비까지 여성이 침투하기 어려운 구조다. 혈연, 지연, 학연에서 남성에 비해서 뒤지기도 하고 자본력도 떨어진다. 공천할 때, 당에서의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남성이라서 의무 공천제로 도의원 후보를 내게 되었다. 형식적으로 해서 대부분 사퇴하게 된다. 실제적으로 유명무실한 부분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형국에도 불국하고 나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 비해서 출마의지가 있는 것 반갑다. 실제로는 지역구에서도 많지 않다. 자원에서 나가는 분들이 반갑고, 이분들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책에 대해 소신을 가지도록 여성단체들이 연대해서 지원해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명분을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김태연
: 여성 운동이 발버둥을 치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은 채 굳게 잠겨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걸림돌이 정치인 것 같다. 아직도 여성들이 거기까지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개헌 사상 첫 출산을 한 국회의원이다. 여성 국회의원들은 미혼이거나 혹은 육아에서 벗어난 나이에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이런 현실에서 비롯되었구나 생각하고, 다가올 세대에게도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다.

이경선 
: 성 격차 지수에서도 한국이 낮은 이유가 정치, 경제에서 특히 낮다.

오옥만 
: 행정에서도 주요 직책에 있어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여성국장 외에 여성이 국장으로 있는 자리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기획실장도 여성이 할 수 있는데,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여성이 국장을 한다면 보건복지국장만 봤다. 

김태연 
: 마치 여성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 같은 인식이 굳어져 있다. 이런 가운데 동력을 잃지 않고 여민회 활동이 꾸준하게 이뤄졌다. 사회 운동이라는 것이 주춤할 때도 있고 기세가 세질 때도 있다. 제주여민회가 이어져온 동력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

좌옥미 
: 20대 중반에 여민회 활동하면서 28살에 결혼하고, 출산과 동시에 휴직했다. 애를 키우면서 활동하는 게 쉽지 않았다. 10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 간헐적으로는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했다. 애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어떻게 나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나 생각해 보니 같은 생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벗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벗들이 있고, 10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도, 이것이 바로 여민회가 끌어오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라는 말을 쓰는데, 그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쓰지 않다가 자연스럽게 되었다. 별게 아니라 기존의 익숙한 관습에 대해 낯선 시선으로 보는 것이 우리 안에 있다. 불편한 것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 역시도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꾸준히 하게 한다. 

김영순 
: 이나영 교수가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해 ‘페미니즘은 빡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했다. 이것이 굉장히 공감이 된다. 그 빡침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지 듣고 싶다. 

양희주 
: 빡침의 지점이 없으면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할머니부터 남동생과 저를 차별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빡침이다. 왜 남동생에게만 밥을 사주는지 알고 있어도 할머니에게 말을 못했다. 
거기에 왜 나는 밤에 늦게 술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 무섭지? 단순히 여성이라서 그러 것들이 빡침이다. 나는 주체로 설 수 없고, 그런 것이다. 같이 술 먹고 갈 때도, 꼭 누군가 안부를 물어봐줘야 하는 상황이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지만, 누군가 살아있는지 확인해줘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회자됐던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여성 운동하는 것은 생존과 연계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빡침이다. 

김태연 
: 우리 집은 자매뿐이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좋았다. 할아버지가 여학교에 오래 근무했기에 차별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런데 어렸을 적 기억에 어머니가 친척으로부터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집안 행사에 초대받지 못하고 쫓겨난 걸 들은 적이 있다. 존재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집에서는 ‘여자여도 기죽기 말고 잘하라’는 분위기에서 커오다가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걸림돌이 많았다. 일하면서도 여성이어서 누리는 것도 많지만 어딜 가나 홍일점인 경우도 많다. 젠더 감수성을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잦다. 

좌옥미 
: 일상의 소소한 일거리들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부분들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 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이 나댄다고 한다. 깔아뭉개거나 불편하다고 여긴다.

조은숙 
: 결혼은 남자가 편해지는 인식이 여전히 있다. 여전히 누린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불편하다. 

김태연 
: ‘결혼해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주제로 탐라순담을 하면서 주변 지인이야기가 나왔다. 남성 모임에서 ‘너는 결혼했으니 돈 모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아내가 당연히 돈을 모을 거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가계 관리는 여성만의 몫인가? 상대적인 것이다. 

조은숙 
: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일부 시선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결혼한 입장에서 결혼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웃음)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결혼이라는 제도가 싫어서 둘이 사는 건 좋다. 제도권 안에서 해야 되는 여성의 역할이 있다. 어른들이 이야기 하면 그런 말 안 듣고 싶으면 화가 치밀어 올 때가 많다. 결혼은 안하는 것이 좋다. 

김태연 
: 결혼이라는 선택지 외에 동거를 택하더라도 주변에서는 여자가 무조건 손해라고 말한다. 결혼이 아닌 동거를 반대하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여자가 손해 봐서라고 이야기한다. 남자는 어째서 동거 이력이 있어서도 손해 안보고, 여성은 흠결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가슴 아픈 지점이다. 

조은숙 
: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가족 구성원 중요하다. 그것부터 깨야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다쳤을 때 보호자가 오직 남편이거나 가족 일원이어야 자격이 된다. 동거인이나 친한 사람들이 되게끔 가족 구성원에서도 상상이 필요하다. 

김영순 
: 저출산 관련 정책에서 셋 나으면 300만원을 주는 등 아이 낳으면 돈 준다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가부장 중심의 문화를 개선하는 부분이 출산율을 높일 것이다. 프랑스 보면 다양한 가정을 인정한다. 마음 놓고 아이 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전국적인 단위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지역에서는 그런 감수성의 차이가 있다.

김태연 
: 정책 입안자들이 출산과 육아에 과연 맞닿아 있어봤을지 의문이다. 

이경선 
: 이런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여러 언론을 보더라도 그렇고 제주의소리도 젠더 감수성이 약하다. 문화적인 파트는 괜찮지만, 보낸 보도자료 만큼도 못 쓴다. 모자라는 부분들이 있어서 아쉽다. 

김태연 
: 괜찮다. 시각의 차이이기도 한 부분인데 깨달아 가는 계기도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얼마나 페미니즘과 관련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다리를 놓아서 결혼하고 출산까지 한 부부가 있는데, 형부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결혼 전까지는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했는데, 출산 이후에 여성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내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상에서 눈을 뜬 계기다. 페미니즘이 자신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도 여성운동의 한부분이다.

오옥만 
: 어떤 신부님의 이야기다. 물 한 잔 조차도 자신이 떠서 먹어 본적이 없이 살아오다가 성공회대에 가서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가치관의 혼란과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페미니즘과 관련된 노래도 작곡한다. 

이경선 
: 페미니즘은 상새을 바라보는 인식론이라고 한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달라졌다. 

김태연 
: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나 간증(?)의 사례들을 모아도 페미니즘 관련 교육이 흥미로워질 것 같다. 얼마 전 우당도서관에서 우당우당 아빠들의 육아 콘서트라는 행사를 했다. 생활 영역에서의 성 평등 같이 하자는 인식들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맞다.

김영순
: 그런데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나 언론에서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변해야 하는데, 공무원도 마찬가지이고 젠더 감수성이 없는 부분이 큰 문제다. 얼마 전에 기사를 봤는데 제주도가 아닌 어느 지역의 기관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했다. 여성들이 받을 게 아니라 정책 결정자가 받아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양희주 
: 경력 단절을 도대체 어떻게 예방하나?

김영순 
:행정에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다.

이경선 
: 타이틀도 문제다. 

김영순 
: 심지어 이걸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곳에서 진행한다.

김태연 
: 워딩 자체가 인식을 드러내는 사례다.

양희주 
: 미혼 남녀를 위한 연애 특강을 한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 

김영순 
: 제주여민회가 일상의 젠더 이슈를 가지고 분노하고 대응하고 밤길을 여성 혼자 걸어도 뭐가 문제냐 하는 것에서부터 운동을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이다.

좌옥미 
: 공무원 대상으로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경선 
: 전체 공무원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김태연 
: 가부장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성 평등’ 이런 단어 자체가 알레르기다. 낯설고, 몰라도 되고, 남들은 몰라도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단어로 여긴다. 실상을 이들의 가시거리 안에 어떻게 넣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각자 정의하는 페미니즘, 여성주의, 성 평등의 개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제주여민회에서 정의내리는 페미니즘 여성주의는 어떤 개념으로 접근하는가?

이경선 
: 페미니즘을 우리나라말로 정의하면 여성주의다. 페미니즘의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이슈가 지대해졌다. 여혐 논란도 그렇고 나는 페미니스트다 아니다 논란도 관련이 있다.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도 적합하지 않는 용어가 있다. 28개 지역 여성단체가 있는데 그 중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정하는데 페미니즘이란 계급, 인종, 성적 지향, 국적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서 단순히 여성을 의미하는 것만 아니라 발생하는 모든 차별을 없기 위한 정치적 의제와 모든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이다. 여성의 권익 신장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또 여성의 권리뿐만 아니라 어느 층이든 다 있다. 인종, 성별, 장애․비장애 등 차별 받는 모든 지점들에 대해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이다. 

김영순
: 제18회 여성 영화제 통해 할례나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성차별,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 근래에 대해 양성평등이냐 성 평등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이 물밑으로 올라왔을 때 지역에서 그러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지지하는 부분들을 같이 생각하고 힘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부분들이 민감한 부분이고 조직적 차원에서 보면 반론 항의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다 잡고 있다.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도지사 성추행 사건대도 엄청 항의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제주 사회 속에서 제주여민회 30년이라는 것이 반란에 같이 하는 것, 시끄럽게 하는 어떤 분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 볼 수 있다. 

이경선 
: 제주여민회가 설립 목적을 초기와 바꾸긴 했다. 인권연대와 분리하면서 설립 목적 워딩이 조금 달라졌다. 그 당시도 성 평등을 지향 했지만 조금씩 변화 되어왔다. 특정 성에 대한 성 평등에 대해서 쉽게 정의내리기 힘들다. 특정 고정관념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사회문화적 차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개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을 성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태연 
: 운동의 기치가 시대에 따라 변화된 것처럼 개념도 달라지기도 했다. 30주년 맞이해서 제주여민회가 부쩍 달라진 인상 받았다. 특히 젊은 층에게 제주여민회가 알려지게 된 계기이자,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양희주 
: 우선은 30주년이라서 진행한 사업들부터 이야기하자면 100인 원탁회의를 7월에 진행했다. 많은 여성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서 여성의 대표성에 힘을 모으고, 가부장 문화를 타파하자는 이런 결의를 했다. 11월에는 W스테이지 제주에서 3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 했다. 사무처장님도 말씀했지만, 30주년을 이어온 원동력은 회원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다른 타 단체 활동가 분들도 ‘여민회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렇게 2개의 30주년 행사 있었다. 
그 외에 4.3과 여성 이슈에 관심 있었으나 해나가지 못했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21일에 관련 포럼을 진행한다. 4.3과 여성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오셔서 포럼을 진행한다. 그것도 제주여민회의 한 꼭지다. 제18회 여성 영화제도 했다. 도민 성 인권 교육도 작년부터 해서 2년째다. 130회 정도 교육이 진행되었다. 제주여민회가 성 평등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2030 여성 페미니즘 아카데미 캠프를 기획했다. 오랜만에 20~30대를 대상으로 타겟팅을 한 행사다. 욕심 가지지 않고, 여성들을 먼저 만나는 작업을 했다. 7강 정도로 구성했는데, 40명이 넘게 신청했다. 20~30대 청년들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년에는 개발해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김태연 
: 그 질문의 후속은 30주년 이후로 앞으로 어떤 것들을 이끌고 나갈 것인지 물어볼 차례이다.  

이경선 
: 30주년 기념식 때 희망 선언문을 발표했다. 제주 여성이 기관지 1년에 4번에 나온다. 87년부터 해서 30주년 특집호는 통권 107호다. 참고적으로 제주여민회 20주년에는 책을 묶은 것이 있다. 제주 여성의 희망선언문도 실었다. 향후 10년 우리 스스로 다짐이자 선포다.  우리 끼리 향후 10년을 진단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해보다 그런 취지로 ·100인 원탁토론회는 10대부터 70대 까지 다양한 여성군을 나름 꾸려서 진행했다  여성으로 살면서 힘든 지점 등을 비롯해서 정치 경제 문화 몇 꼭지를 가지고 진행했다. 전화 설문도 했다. 내부 회원 세미나 거치면서 세세한 부분도 많았다. 그 가운데 세 꼭지로 추렸다. 가장 큰 부분은 여성의 공적 대표성 강화다. 정치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최소 30~40%가 이야기 한다. 약한 지점들에 좀 더 구체적으로 하겠다는 다짐했다. 또 하나는 안정과 평화가 보장되는 제주 사회 실현도 목표로 잡았다. 성 평등 의식 확산을 위한 교육과 여성영화제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문화 운동과 더불어 여성들의 삶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다양한 여성분들과 공감하고, 여성학을 공부하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여성문화발굴단이라는 문화 프로그램이 있다. 제주의 여성적 가치를 재발견. 발자취 따라보는 등 그런 부분을 살려보자 문화운동을 해보자해서 카테고리화 했다. 

김영순 
: 부연하자면 공적 대표성 강화가 있다. 성 평등 의식 확산을 위한 문화운동을 인디언처럼 하려고 한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하면 정말로 비가 온다. 될 때 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일 것이다. 

조은숙 
: 그게 제주 사회가 성 평등한 사회가 될 때 까지 세 가지 이슈에 대해 노력할 것이다. 춤추면서 움직이겠다.

양희주 
: 운동의 지속가능성이 필요하다. 20․30대 회원이 별로 없다. 활동가로 유입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태연 
: 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 나눠보았다. 소감을 한마디씩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조은숙 
: 양파처럼 지는 고정과념들이 깨져서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제주여민회와 함께 춤출 수 있는 그날까지 할 것이다. 비가 올 때 까지.  

양희주 
: 모여서 한 가지를 놓고 이야기 하면 일상에서 이야기 하는 것과 느낌이 다르다. 한번 하는 것이 아쉽다. 올해는 사업이 진짜 많았다. 정신없이 이야기 했다. 말하면서 정리하는 거 부분도 있다. 

오옥만 
: 다른 단체에서 제주여민회는 어떻게 그렇게 돈독하냐고 물어본다. 전․현직 공동대표 사이들이 너무 좋다. 전 정권을 부정하는 부분도 다른 단체에서도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그런 것들 없이 격려하고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 여성주의 적인 관점이 가지는 힘이 아닌가 싶다. 삶에 굉장히 도움이 되고 의미가 돼서 오게 된다. 

좌옥미 
: 희움 30주년 소감도 적었지만,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연대 의식 등 감수성들이 여민회에서 잘 어우러진다. 자매애라는 모습으로 발현된다. 스스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그 힘으로 하게 된다. 또 여민회가 성장하는 등 선순환이 되면서 에너지 축적한다. 멋있게 잘 늙어갈 것 같다. 

이경선 
: 1992년도에 들어와서 25년이 되어간다. 동력이 뭐냐고 하면 제주여민회 의사 구조는 굉장히 수평적이다. 이사들이 현장들이 움직인다. 그게 다른 조직과도 다르다. 업을 같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활동 동력이다. 그냥 회원 활동하다가 들어와도 배척하지 않는다. 25년 동안 활동하면서 귀중한 인연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활동이다. 앞으로 나 또한 같이 가져가려고 하면서 다짐하게 된다. 

김영순 
: 자주 내는 퀴즈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교통사고 당했다. 다친 아이를 보고 의사가 내 아들이라고 하면 의사와 아들은 무슨 관계인가 라고 질문에 제대로 답 못한다. 아버지의 전 부인의 현 남편이라는 재밌는 대답도 나왔다. ‘엄마’라는 손쉬운 대답이 안 나오고 있다. 이런 사회 인식이 깨질 때 까지 운동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제주여민회 활동에 결합하면서 딸들에게 희망을 캠페인 진행함. 우리 딸들의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다. 인디언의 기우제처럼 비올 때까지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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