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올 한해 도민들은 평안하게 지나가길 기원했지만 어김없이 한국사회와 제주사회엔 격랑이 일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 중에는 희소식도 있었지만, 갈등과 대립, 논란과 좌절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다가오는 황금개띠 무술년(戊戌年)은 무사안녕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제주의소리>가 2017년 제주사회를 관통한 ‘7대 키워드’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인물로 본 2017키워드] (1) 촛불집회 단골 사회 김남훈…“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촛불의 힘! 박근혜 퇴진.구속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집회에는 7살 어린아이부터 여중.여고생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 업이 다양한 연령대, 계층이 참여했다. 국민 수다꾼 김제동도 제주 촛불집회를 찾았다. ⓒ제주의소리
2016년의 마지막 밤. 촛불시민들은 제주시청 광장에 모여 “2017년에는 국민이 승리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목놓아 외쳤다.

‘송박영신’. 박근혜를 보내고(OUT), 새해를 맞이하자는 이들의 외침은 결국 현실이 됐다.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를 권자에서 끌어내린 것.

2017년 정유년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실감한 한해였다.

올해 전국 대학교수들이 꼽은 사자성어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은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촛불을 든 국민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사악함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게 했다는 의미일 터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다 시민촛불과 박근혜대통령 탄핵은 촛불의 힘으로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그야말로 ‘촛불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역사적 사건이다.

전국적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한 연인원은 1700만명. 제주에서도 지난해 10월29일 첫 촛불이 타오른 뒤 해를 넘겨 3월까지 스무 번의 촛불집회를 이어가며 연인원 5만6000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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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친환경우리농산물학교급식제주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촛불집회 단골 사회자 김남훈씨.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촛불집회 단골 사회자 김남훈씨(45)에게 촛불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이번 촛불은 우리가 광장에서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에 대한 경험이었다. 일부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집회가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체화한 중요한 경험이었다.”

6.15공동선언실천본부 제주본부 집행위원장, 친환경우리농산물학교급식제주연대 사무처장, 참교육제주학부모회 사무국장, 민주평통 자문위원, (사)한국청년센터 제주지부장이 지금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이지만, 지난해 10월부터 해를 넘겨 지난 3월까지 근 6개월 동안은 ‘박근혜정권 퇴진 제주행동 기획팀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촛불시민들에게는 후덕한 인상의 단골 사회자로서 기억이 더 남는다.

지난 22일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광장 민주주의’였다.

사실 그는 소위 ‘운동권’이다. 집회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 그였지만 이번 ‘촛불집회’을 겪으면서 대중이 뭔지, 광장이 뭔지를 절실히 느꼈다.

“과거에는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을 조직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주도했고 활동가들은 그 동안의 실무적인 노하우를 가지고 판을 깔았을 뿐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도 잘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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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구속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집회에는 7살 어린아이부터 여중.여고생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 업이 다양한 연령대, 계층이 참여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100여개 단체가 참여해 ‘박근혜정권 퇴진행동’을 만들었지만, 이들의 역량만으로는 스무 번의 촛불집회를 개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게는 하루에 초 6000개까지 준비를 한 적도 했다. 초 값만 수백만원이 들 정도였다.

김씨는 “시민들의 모금이 없었으면 행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많을 때는 한 번에 800만원까지 모인 적이 있다”며 “무대설치나 음향장비 업체들도 최소한의 인건비만 받고 도와줬다. 이들이 전부 박근혜를 퇴진시킨 주역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그의 삶은 촛불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한 주의 시작을 토요일에 진행할 촛불집회에 철저하게 맞춰졌다. 월요일, 기획회의로 시작해서 기획회의에서 토요일 집회의 얼개가 짜지면 그에 맞춰 금요일까지 실무준비를 한 뒤 토요일에는 소위 노가다를 한다.

사회자로서 어떻게 하면 참가자들에게 재미를 줄까. 이벤트 고민에 그렇지 않아도 숱이 없는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이었다.

스무 번의 촛불집회 사회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뭐냐고 묻자, “7세 꼬마가 부른 ‘헌법 제1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엄마, 아빠와 함께 나왔던 7살 어린이자 혼자서 헌법 제1조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가슴이 짠했다. 그 아이가 그날 간직한 광장민주주의의 기억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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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이겼다! 국민이 이겼다! 박근혜 퇴진.구속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집회에는 7살 어린아이부터 여중.여고생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 업이 다양한 연령대, 계층이 참여했다. ⓒ제주의소리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제주행동이라는 조직이 탄핵과 퇴진 이후 단계에서 적폐청산으로 더 멀리 보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은 솔직히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이후 원탁토론회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지속적으로 끌고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덧붙인 말. “제주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도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해법을 같이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적폐청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가 이어지는, 다시 시작하는 광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박근혜 퇴진과 구속 이후에도 제주에서는 여전히 촛불이 타오른다. 물론 주제는 달랐다. 제2공항 문제로, 현장실습 고교생 사망사고가 날 때도….

촛불, 이제는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그만큼 행동하는 시민들이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독일 프리히 에버트재단은 평화적 집회문화를 만들어낸 1700만 대한민국 촛불시민에게 ‘에버트 인권상’을 안겼다. 촛불을 든 제주도민 5만6000명도 엄연한 수상자다.

▲ 촛불의 힘! 박근혜 퇴진.구속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집회에는 7살 어린아이부터 여중.여고생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 업이 다양한 연령대, 계층이 참여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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