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최근 관광, 역사, 사회학계 모두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과거 국가 권력이 저지른 폭력의 기억, 현장을 돌이켜보면서 오늘 날 반성과 깨달음을 얻는다. 제주의 경우 4.3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진지동굴, 알뜨르비행장 등 다크투어리즘으로 활용할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하와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제주도 다크투어리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하와이와 제주, 그리고 다크투어리즘] ① 미국 점령 하와이 근현대사, 이젠 자치정부 움직임

하와이의 관문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다. 하와이 전통 복장의 여성 원주민이 웃으면서 춤을 추고, 그 아래 ‘Welcome to United States’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 방문을 환영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하와이가 ‘미국땅’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그리 길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19년 이전에 하와이는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왕국이었다. 1810년 카메하메하(Kamehameha) 대왕은 몇몇 부족이 나눠 가진 하와이를 통일시켰다. 카메하메하 1세는 통일 군주로서 지금까지 하와이인들에게 명성이 높은데, 하와이 주청사 인근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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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하메하(Kamehameha) 1세 동상.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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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놀룰루시 주청사 인근에 위치한 카메하메하(Kamehameha) 1세 동상. ⓒ제주의소리

19세기의 끝자락인 1893년, 하와이에 살던 미국인들은 미 해병대를 동원한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렸다. 5년 후인 1898년부터 하와이는 미국 영토가 됐고,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다. 한국으로 치면 일제강점기가 100년이 지나도록 이어지는 셈이니, 하와이 원주민이라면 억울해서 한이 맺힐 역사가 아닐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하와이’는 하와이(Hawaii), 카우아이(Kauai), 마우이(Maui), 오하우(Oahu)까지 네 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모인 제도(諸島) 지역을 일컫는다.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인데, 2012년 139만2000명(백 단위 생략)에서, 2014년 141만9000명, 올해 142만7000명을 기록했다. 전체 면적은 2만8337㎢이며, 이중 수도 호놀룰루가 있고 약 100만명이 거주하는 오아후섬은 1545.4㎢로 제주도(1845㎢)와 비교하면 다소 작은 편이다.

인구 구성은 아시아인이 전체 60%, 백인 30%, 하와이 원주민이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인 가운데는 필리핀계가 가장 비중이 높고, 일본, 중국, 한국 등이 뒤따른다. 

하와이 현지에서 가이드업에 종사하는 이호준 씨는 “한해 하와이를 찾는 일본 관광객이 250만명에 달하는데 한국 관광객의 10배 이상이다. 일본 여행사가 독자적으로 전용 버스를 운행할 정도다. 하와이 경제 전체를 봐도 일본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민 역사가 길다보니 각 문화들이 안정적으로 융합돼 한국인을 포함, 아시아인들이 살기 좋다. 도리어 백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며 “얼마 전 하와이 주립대학에서는 어느 백인 교수가 ‘학생이 자신을 인종차별했다’며 고소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 학생은 교수를 하올리(haole)라고 불렀는데, ‘이방인’을 뜻하는 하와이 말 하올리는 하와이에서 백인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는 타 지역에서 들어오거나 제주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들을 ‘육지것’으로 불렀던 제주도 정서를 연상케 한다. 이런 차별의 배경이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착취라는 점도 비슷하다. 제주도는 가혹했던 각종 공물 상납을 비롯해 출국금지령, 4.3 같은 역사가 있었고, 하와이는 미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주권과 영토를 침탈 당해, 사실상 지금까지 점령 상태를 이어간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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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왕족들이 사용했던 이올라니 궁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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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왕조에서 사용했던 문양. ⓒ제주의소리

안종철 법학박사가 지난 2013년에 쓴 논문 <하와이원주민 문제의 역사적 쟁점과 미 연방대법원의 관련 판결분석>을 보면 “하와이는 1959년 미국의 한 주가 되기 전까지 미국령이었다. 미국령 하와이는 사탕수수 농장주들을 중심으로 한 과두체제가 주요 지배체제였다. 이들 백인 농장주들은 하와이주의 중산층의 성장을 막았다”고 지난 역사를 설명했다.

안 박사는 “오늘날에는 결국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등의 아시아인들이 주도하는 민주주의가 하와이에 뿌리내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하와이 왕국의 주민들이었던 하와이 원주민들은 철저하게 소외됐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하와이 사회에서는 ‘자치’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9월 오바마 정부는 하와이 원주민의 자치정부 수립을 승인하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하와이 자치정부 수립 내용을 담은 법안이 미 상원의회에 여러 차례 올라왔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한 지난 사례에 비춰, 진일보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과거 미국 정부의 잘못에 대한 금전적 보상 내용 미포함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부여했던 카지노 개설 권리 제외 ▲과거 하와이왕국이 관할한 연방 정부, 주 정부 소유 토지에 대한 영향 미포함 등으로 실속은 부실한 규정이라는 여론도 있다.

하와이가 미국 영토에 편입된 1898년 이후, 하와이 왕실-정부가 보유했던 공공 토지는 모두 미국 연방정부의 손에 들어갔다. 부동산 난개발, 외국인 토지 소유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제주에서, 하와이 토지 권리에 대한 지난 역사는 나름 의미있는 시사점을 안겨준다.

안 박사는 같은 논문에서 “1978년 개정된 하와이주 헌법은 대폭적으로 하와이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법안들이 포함됐다. 하와이어를 영어와 함께 하와이의 공식언어로 지정하고, 하와이사무청(Office of Hawaiian Affairs)을 신설, 공공토지로부터 나오는 수입의 20%를 하와이 원주민들의 복지향상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며 “하와이 원주민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도 하와이 주 정부 하에 설치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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