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2017키워드] (2) 문창우 주교..."사회약자, 현실에 거리두지 않을 것"

2017년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올 한해 도민들은 평안하게 지나가길 기원했지만 어김없이 한국사회와 제주사회엔 격랑이 일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 중에는 희소식도 있었지만, 갈등과 대립, 논란과 좌절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다가오는 황금개띠 무술년(戊戌年)은 무사안녕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제주의소리>가 2017년 제주사회를 관통한 ‘7대 키워드’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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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우 주교.

지난 6월 초여름 뜨거운 제주사회에 청량제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제주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주교(主敎) 성직자가 탄생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주교구 문창우 신부를 교구장 승계권을 가진 부교구장으로 임명하고, 6월28일 오후 7시(로마 시각 자정) 교황청과 한국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 주교는 정진석·염수정 추기경과 대주교 5명, 주교 34명을 포함해 총 41명이다. 문창우 신부와 함께 구요비 신부가 주교로 임명되면서 총 43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문창우 주교는 1963년 제주시 출생으로 오현고등학교(29회)를 졸업하고 1981년 제주대학교에 입학해 농화학을 공부했다. 

세례를 비교적 늦은 고등학생 때 받았고, 신학 공부를 위한 해외 유학이나 박사 학위도 없다. 1988년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포콜라레 영성학교에 다닌 1년 6개월이 전부였다. 비주류 중에 비주류인 셈이다.

특히 문 신부의 주교 발탁에 의미를 두는 점은 사제 전부터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문 주교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 제주대학교 가톨릭학생회장을 맡았다. 길거리에서 한국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세대다.

문 주교는 가두 농성 현장에서 학생들 곁을 지켜주던 가톨릭 신부들을 보면서 사제의 길을 결심했다.

1996년 사제로 수품된 후 서문본당 보좌, 중앙본당 보좌를 거쳐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중문본당 주임신부로 재직했다. 이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제주교구 교육국장, 2006년부터 2016년까지는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교수와 영성지도를 맡았고, 지난해부터 신성여자중학교 교장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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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우 주교는 지난 8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임명을 받고 중앙성당 제주교구 부교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교로 공식 임명된 지 4개월 된 문창우 주교는 신성여중 교장에서 제주교구 부교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 주교는 지난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4월에 주교 후보 명단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른 지역 신부님이 주교로 임명될 것으로 믿었다. 저는 구색맞추기 차원에서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6월21일 교황대사관에서 호출해 가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장을 줬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문 주교는 "(그 이후)일주일 동안 말을 하지 못했고, 언론에서 6월28일 공식 보도됐을 때 저의 첫 마디가 '하느님이 큰 사고를 쳤다'고 했다"며 "강우일 주교와 김창렬 주교가 제주출신이 주교가 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교 임명에 대해 그는 "교회 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서 실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실천을 강조했다.

또 문 주교는 "제주에 4.3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어려움을 교회가 함께하고, 연대하고, 디딤돌로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주교가 한사람 있을 때가 됐다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주교는 마음의 빚이 2가지 있다. 

비교적 늦게 사제가 돼 고위 성직자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고, 신앙적으로도 다른 신부들보다 부족한데 주교로 임명됐다고 자신을 낮췄다.

또 하나의 빚은 바로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남아있다.

문 주교는 "대학교를 졸업하자 곧바로 이탈리아 영성학교로 떠났다. 사제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과 구체화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이번에 주교에 임명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6월항쟁이었다"며 "제가 경험이 부족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어두운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함께 연대하라는 순명으로 여겼다"고 일종의 다짐을 남겼다.

문 주교는 내년 4.3 7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가 함께 성찰하고, 공감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실제로 문 주교는 교회 내 대표적인 4.3 전문가다. 1999년 발표한 논문 <4.3에 대한 신학적 고찰>은 4.3을 신학적으로 조명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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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우 주교.
문 주교는 "한국 교회가 제주4.3 70주년을 맞아 함께 기념하고, 성찰하고, 공감하는 전국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먼저 제주교구가 제안했고, 내년 1월에 '4.3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문 주교는 임기가 3년 남은 강우일 주교에 이어 제주교구장이 유력하다. 혼란과 갈등이 많은 제주사회에서 문 주교가 갈등 조정자이자 큰 어른으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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