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50) 볼락 대가리 하나로 골막 상두꾼 먹이다가 남는다

* 볼락 : 볼락, 바닷물고기
* 데멩이 : 머리의 방언. 속된 말로 대가리
* 호나 : 하나, 한 개
* 골막 :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의 속칭
* 상듸 : 행상(行喪) 때 상여를 메는 사람. 상두꾼, 상여꾼
* 멕이당 : 먹이다(가). 멕이다→먹이다

볼락은 길이 20~30cn 되는 바닷물고기다. 그리 큰 물고기가 아니다. 몸집이 크지 않으니 머리인 대가리도 클 턱이 없다. 그렇게 작은 물고기의 머리 하나로 ‘골막’이라는 마을에서는 상두꾼을 먹이다가도 남는다 함이다. 
  
이야말로 과장된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 녹아 있는 것은 물건을 아끼는 근검절약하는 정신이다. 근검절약은 몸에 배어야 하는 것으로 말로 떠들어 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절약하는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옛날 절대 빈곤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던 선인들의 체험에서 나온 육성으로 들린다.

낭비를 경계한 검약한 삶을 일깨우려 한 것으로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 깃들어 있다.

비슷한 속담들이 있다.

“생이 다리 혼착으로 벡 놈 잔치 혼다”
“생이 혼 다리고 골막 상듸 다 멕인다”
“생이 혼 머리로 벡 놈 잔치해도 다리 호나 남나”
“생이 혼 머리도 일눼잔치 혼다” 
(*생이 ; 참새, *혼착 : 한쪽, *일눼 : 이레, 칠일)

어떻게 그 작은 볼락이나 참새 한 마리로 상두꾼을 먹일 것인가. 먹이다 남는다고까지 하고 있다. 실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과장도 이쯤 되면 가관이 아닌가. 하지만 그냥 시금털털하게 해보는 말이 아닌 것을 옛 선인들의 삶에서 느끼고도 남는 일임에랴. 

먹고 마시는 것에서 자고 입는 일에 이르기까지 조냥 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었지 않은가. 소출은 적고 쓸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니 도리 없는 일이었다. 근검절약으로 삶을 이어 가는 수밖에 별다른 방책이 없었다. 

그러니 능히 바다에서 낚아 온 볼락이나, 잡아 온 작은 참새 한 마리로 행상(行喪) 하는 상두꾼을 먹이고도 남는다 할 만도하다. 하긴 상여 메고 장지까지 먼 길을 가는 상두꾼 대접이 푸짐했던 관례로 하면 음식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긴 했어도 말이다. 사두꾼들 툭 하면 상여를 메고 가다 버텨 서 버리거나 뒷걸음질하기 일쑤였다. 물론 일부러 심술을 부리는 것이지만 그때마다 푸짐한 안주에 술 한 잔 대접해야 했다.

이에 못지않은 속담이 있다.

“사돈집이 식께 넘어 나민 사을 불 안 솜나”
(사돈집에 제사 넘기고 나면 사흘을 불 안 땐다)
  
예나 제나 사돈 사이의 친분과 예우는 극진하고 돈독할 수밖에 없다. 아들 딸 간의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인지라 웬만한 일에도 신경이 쓰이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옛날에는 집에 기제사를 지내고 나면 으레 차렸던 음식(제사 퇴물)을 골고루 챙겨 사돈가에 보냈다. 그러면 그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었으므로, 정지(부엌) 솥 아궁이에 밥 지으려고 불을 때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흘 동안이나 불을 안 땐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렇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말이 아니라 속에 내포하고 있는 뜻, 함의(含意)를 짚어야 한다. 그럴 만큼 조금만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끼를 때워 가며 가난한 삶을 견뎌 냈다는 뜻이다. 양식은 생존의 근본이니 쌀 한 알이나마 아끼던 옛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지 않은가.

근검절약했던 어른들의 삶은 무심결 그 자녀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으로 훈육이 되는 법이다. 사치와 낭비 풍조가 만연됐다 하나 아직도 제주사람들의 생활 속에는 예전에 몸에 밴 조낭정신이 그대로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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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량으로 넘쳐나는 제주시 거리에서 격세지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리가 텅 비었었는데…. 불과 3~40년 새에 일어난 변화, 상전벽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헌 양말, 옷가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기워 신고 입던 어머니들의 바지런한 손길이 생각나 순간 울컥하는 게 바로 그것일 테다.
  
초근목피를 먹으며 자랐다는 얘기는 오늘에 인기가 없다. 하지만 훈장은 녹슬지 않는다. 옆집 사는 분이 술 한잔한 김에 아들 넷을 앉혀 놓고 옛날 밥 굶던 체험담을 풀어 놓았더니, 녀석들 입을 모아 한소리를 내더란다. 

“아버지, 밥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영 드실 거 아니우꽈게.”

하도 어처구니없어 머쓱했다 하기에, 그래도 거기까지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웃었다. 시대의 아픔을 옛날이야기로라도 풀어 주어야 하리라.  

일본 사람들의 근검한 생활은 그들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체질화됐다고 말할 정도다. 손쉽게 말해, 도쿄의 한 지하철역 주변엔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집에서 타고 와 주차시켜 놓은 자전거로 가관을 이룬다 한다. 도쿄의 자전거 대수가 무려 560만 대로 250만대인 승용차의 2배가 훨씬 넘는다. 2일 1대 꼴로 한 집에 2대 가까이 자전거를 갖고 있다는 셈이 나온다.
  
자전거는 값 싸고 편하고 공해가 없으며 건강에 좋으니, 그들의 지혜와 근검의 상징이다. 심지어 이 자전거마저 타는 것을 삼가는 경우가 있단다. 어느 집 딸은 학교까지 40분을 걸어서 다닌다는 것이다. 중학교에서는 자전거 통학을 금지한다던가. 겨울철에도 오버나 장갑 착용을 금한다고 한다. 이유가 있다. 학생들을 단련하기 위해서란다. 롱 패딩이 날개 달린 듯 팔린다는 우리와 비교되는 대목이라,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차량으로 넘쳐나는 제주시 거리에서 격세지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리가 텅 비었었는데…. 불과 3, 40년 새에 일어난 변화, 상전벽해다. 날로 늘어나는 자동차는 교통 장애가 될 뿐 아니라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우리 선인들의 조냥정신이 실종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볼락 데멩이 호나로 상듸 멕이당 남나”고 극도로 근검절약하며 한 생을 살던 조상님이 차로 넘치는 거리를 보신다면 놀라 기절초풍할 것인데….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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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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