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 특별자치도의회 원구성 파행을 바라보는 씁쓸함

특별자치도 도의회 개원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다른 게 없다. 씁쓸함 뿐이다.
제주의 시민사회는 지난 지방선거과정에서 “도지사보다 도의원 선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 한 바 있다. 이는 단지 이벤트적인 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도지사의 비대권력에 맞설 견제수단이라는 의회 본연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10여건에 불과한 조례제정건수로 드러나듯 일천하기 짝이 없는 의회의 의정역량에 대한 쇄신을 바라는 갈구의 표현인 것이었다. 의회는 달라져야 한다. 의회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시민사회 차원이 아닌 온 도민의 여망이었다.

못된 것만 골라 배우나?

우리는 이른바 ‘정치 정상화’로 일컬어지는 지난 2004년 총선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쟁투와 합종연횡의 국회를 목격해야 했다. 소위 한국정치의 고질병이라는 정당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이합집산과 극한대결만큼은 이념적 구도로 재편되었다는 현존 국회 정당정치 구도에서도 어김없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의회정치의 요체는 정당정치이다. 이것은 원칙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지방정치에 있어서 정당이란 사실상 없었다. 단지 선거시기의 세결집의 수단이자 당선가도의 필요조건 정도로만 기능해 왔다고 하면 지나칠까?

그러나 특별자치도의회에 기대를 걸었던 주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정당정치의 가능성이 지역적 수준에서 열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일단 의원들 ‘쪽수’가 많아졌다. 지금까지 도의회는 완전한 ‘담합구조’적 기능을 일관되게 되풀이 해 왔다. 현안대처에 대한 도민사회의 요청에대해서는 의원 개개인이 독자적 입법기관임을 강조하면서, 늘 ‘늑장 부리기’와 ‘어물쩡 비껴가기’, 혹은 ‘절묘한 안배’ 등을 의회의 전체입장으로 내치곤 했던 것이다. 또 약간의 논쟁과 더불어 회의는 ‘무게 있게’ 하더니 정작 결정은 ‘간담회’등을 통해 쉽게 가는 관행 등도 사실은 몇 안되는 의원 쪽수구조와 연관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가 많아지면 ‘개별 입법기관’으로서 의원들의 다양한 입장을 큰 틀에서 묶고 가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수렴하는데 정당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낮은 수준의 정당정치의 모습이다. 진짜 정당정치의 모습은 이념적 색채가 잘 안드러나는 지역현안일지라도 이념과 정책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것의 차이를 ‘대화와 타협’의 지혜로 풀어내는 식의 모습일 것이다.

이번 도의회 원구성 과정에서 전자의 정당정치 수준은 보여준 것 같다. 즉 패거리로서의 정당정치 말이다. 이는 바로 한국정치의 고질병을 지방판으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중앙언론에서나 보던 ‘정치대결’을 바로 동네에서도 볼 수 있으니 한편으로는 참 뿌듯하다. 제주도 지방정치도 중앙정치 수준으로 드디어 올라가는구나 하는 뿌듯함!

이 여야의 자리따먹기 경쟁에 선거 때 많은 후보들이 공약하고 대부분 수용의사를 밝혔던 ‘의원 윤리실천’의 원칙과 제도는 거의 실종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버젓이 건설업계 출신 의원을 ‘환경도시위원장’으로 앉히려는 모양이다. 아무리 뒤가 급한 형국이라도 약속하고 수용했던 것은 지키는 최소한의 성숙은 이제 정치왜곡의 발원지 국회정치에도 조금은 있다. 왜 못된 것만 골라배우나? 씁쓸할 뿐이다.

한나라당, 정치적 자살골 넣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나라당은 그 안에서도 원구성 문제로 매우 심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여야간의 사태는 심각했던 한나라당의 ‘단결’을 위한 기회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자리’가 뭔가? 쪽수논리로 밀어부칠 만큼 ‘위원장 자리’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인가? 다수세력에 응당한 댓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판공비가 주어지기 때문인가? 그것은 세비 일정분을 당 정책활동비로 내는 민주노동당이면 모를까 당과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앞서의 낮은 정당정치 수준의 지방정가에서 자기정책, 당론관철에 용이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은 아닌 것 같고. 무엇인가?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면 무리없이 전개될 문제를 단 ‘한 자리’ 때문에 다수논리를 동원하는 한나라당의 행보는 참으로 그 자체로 ‘폭력’이다. 원구성 문제에서 쪽수 논리가 곧 일방적 힘의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이번 행보는 완전한 정치적 자살골이 될 공산이 크다.
우선은 상식을 벗어난 행위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당정치의 모습으로 태어나려는 의회구도에서 이런 식의 힘에 의한 ‘강행 정치’는 자기정당의 혐오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어제 선출된 한나라당 양대성 의장은 덕분에 ‘반쪽 의장’이 됐다. 이것은 앞으로 의회 의정활동 구도에도 충분한 영향요인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선출 직후 기자인터뷰에서 양의장은 의회역량 강화와 도민통합을 강조하였다. 반쪽의 리더십으로 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당리당략 떠나 총체적 의정역량을 확대”하고 “도민통합”을 이끌겠다는 것은 당리당략에 앞장선 자기 당에 대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걸 어쩌랴. “관행 대로” 한 것을 당연하게 앞세우는 리더십이 무엇을 개혁하고 무엇을 통합할 수 있을까.

상임위원장, ‘영리겸직 금지’, 원칙으로 지켜져야

도민들은 도의회 의장 선거의 쟁점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정책 쟁점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다. 없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여야간 경선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장에 출마하는 의원의 정견과 소신을 도민들은 접할 수 없었다. 원구성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일방통행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열린우리당 조차도 의장선출 문제에 대해서는 다수논리를 그냥(!) 수용해버리고 만 것인가?  위원장 자리 한 석 놓고 그렇게 다투면서 왜 의장자리는 순조롭게 몰아주는지 이해 안가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민의의 전당의 수장을 뽑는 이 ‘잔치’가 철저히 도민들로부터 유리된 사실이다. 이것은 투명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의장도 서로 정견을 내놓고 공개경쟁하는 방식이 되었어야 했다. 뽑는 것은 의원들이 대신 뽑아도 도민들에게도 판단할 기회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상임위원장 자격문제로 벌어진 사법수사대상자 논란은 판단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작 의원윤리의 근원적 문제가 담겨 있는 ‘영리겸직’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 문제가 상임위원장 선출의 우선 자격요건이 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가칭)‘의원윤리실천조례’의 제정에 대해서는 당선된 의원들도 대부분 동의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정작 상임위원장 선출은 그것에 위배되게 해놓고 이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출발부터 약속위반이다.

도의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이는 의원들도 최소한 겉으로는 공감하는 바다. 그것을 위한 진정성을 보여주길 바란다. 원구성은 파행으로 치달았더라도 사후에라도 구체적 해명과 구체적 의회 쇄신책을 도민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고 유 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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