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이 전국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주민중심'이라는 가치가 단순히 말의 성찬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역민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보장할 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제주의소리>는 서울 성북, 세운상가, 목2동, 군산, 나주 속의 공동체들을 찾아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지금까지 그들이 이뤄낸 변화와 남은 고민을 공유하는 일이 제주형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19) 나주 원도심 ‘따따부따’의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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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도시재생 한마당 일환으로 열린 주민참여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전남 나주시의 '나주읍성주민 따따부따'팀. ⓒ 나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국토교통부는 2016년 12월 도시재생사업의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2016 도시재생 한마당’을 열었다. 주민참여프로그램 경진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으로 활력을 찾는 지역들이 모였는데 당시 대상을 차지한 곳은 전남 나주시의 ‘나주읍성주민 따따부따’팀.

이들은 성과를 반듯하게 정리해 내보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도시재생 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됐지만 행정절차가 늦어지면서 사업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주민들의 고군분투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돈 안 줘도 되니 그런 방식으로 동네 어지럽히지 말라”면서 대규모 예산투입에만 의존한 도시재생사업 방향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의 솔직함은 단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분위기를 기억하는 이길환 나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이 곳 주민들은 사업비가 들어오는 것과 관계없이 ‘내 동네가 더러우면 내가 직접 치운다’는 마인드로 알맹이 있는 일들을 꾸준하게 이어왔다”며 “사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접근이 훨씬 유익하다”고 말했다.

나주읍성 따따부따의 주 활동지는 나주 금남동 지역. 과거 도시의 중심지였지만 최근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원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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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읍성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금남동 일대에는 이 같은 표지판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원도심 주민들 입장에서는 개발논리가 아닌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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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원도심은 삼국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공간들이 모여있는 흔치 않은 지역이다. 지역이 가진 역사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나주아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마을이 지닌 역사성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 나주아이

광주광역시가 주변 지방도시를 빨아드는 것은 물론 인근에 혁신도시까지 생기면서 금남동 원도심 지역은 총 인구 감소, 고령화, 경기침체 등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읍성 가운데 규모와 역사가 가장 크고 오래된 나주읍성의 중심지였던 만큼 문화재지역으로 묶여 각종 개발행위는 물론 집 축조마저도 제한이 많다.

인근 혁신도시나 광주광역시로 옮겨가고픈 욕구가 클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주민들은 고향을 두고 떠나는 대신 부딪쳐보기로 했다.

시작은 마을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특히 조손·편부모·다문화 가정이 많은 만큼 여기 아이들이 학교가 끝난 뒤 의미있고 재밌게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만든 ‘나주아이’는 풍부한 역사적 자원을 가진 읍성 일대를 직접 찾아보며 지역밀착형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꾸준히 이어가다보니 협력의 여지가 생겼다. 전남외고 학생들은 아동들을 위한 외국어멘토링을 함께 진행했고 교육청과도 각종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숨통이 트였다. 재밌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근 혁신도시지역 아이들까지 참여할 정도가 됐다.

대형 곰탕식당만 들리고는 쌩 빠져나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건강한 지역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주말장터도 시작했다. 곰탕식당 손님을 노렸던 잡상인들이 차지했던 자리에는 이제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다양한 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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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금남동 주민 박형근 씨가 '한 뼘 정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치된 공터의 가치를 높이고, 경관도 개선하며, 로컬푸드 장터와도 연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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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원도심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다양한 공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 자원들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연결시키느냐가 앞으로의 도시재생 관건 중 하나다. 사진은 나주향교 대성전의 모습. ⓒ 제주의소리

방치됐던 빈집을 정비하고 꽃을 심었고, 공터마다 ‘한 뼘 텃밭’을 만들었다. 이 텃밭에서 생산된 배추를 가지고 김장축제도 진행했다. 고립된 육지의 섬으로만 여겨졌던 나주 원도심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변화를 이끈 금남동 주민자치위원회의 박형근(52) 사무국장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산업기반이 없고 소멸위험도가 높은 지역에는 ‘여기 있는 사람이 남아줘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며 “이를 위해서는 이 곳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주축이 돼 시작한 동네 가꾸기는 ‘남을 이유’를 만들기 위한 작은 한 걸음이었다. 행정적 지원이나 외부투자 유치에 기대는 대신 작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

‘지방소멸’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 최근,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개발 대신 소규모의 도시재생을 지방발전 전략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소멸위험이 높은 지역이 겪는 위기감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광주의 위성도시로 불리게 된 나주, 그 중에서도 지난 몇 년 간 쇠퇴 속도가 빨랐던 금남동 원도심 주민들의 도전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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