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4.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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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재능, 착한 성품을 가진 아이에게 해주는 말

“아주 어릴 적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국 작가, 아니 세계 작가인 조지 오웰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 제가 만나는 어린이와 청소년 중에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글 솜씨와 생각하는 수준이 놀라운 아이도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꼭 좋은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좀 씁쓸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의 글과 그림은 참 좋아. 그래서 너는 상처를 많이 받을지도 몰라. 질투심이 나서 그럴 수도 있고, 너를 좋아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그렇기도 할 거야. 심지어 어른도 너를 괴롭히고 상처 줄지 몰라. 

아이들은 알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착하지 않다는 사실을. 착하지 않은 세상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그래서 착한 사람임을 포기하고 상성(喪性), 자신의 착한 성질을 잃어버리죠. 꽤 오랫동안 착한 성질을 잃지 않으면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독촉을 당합니다. “그렇게 착하게만 살아서 손해 본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흔들리죠. 

조지 오웰은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착하지 않은 세상의 압력에 억눌려 마음이 심해어(深海魚)처럼 괴상하게 찌그러지는 것보다는 종이라는 나만의 공간에 이야기를 함으로써 복수를 하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나만의 확실한 복수 방법, 글쓰기

"내가 작가라면 여러 학생들의 평일 아침을 주제로 쓰고 싶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가 높아질수록 아침이 힘들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세세하게는 모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2명, 중학생 2명, 고등학생 2명, 대학생 1명의 아침들을 보여줄 것이다."

학생의 아침이라는 주제를 학생이 쓴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렙니다. 아침의 풍경은 지루하잖아요. 원래 아침은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태양이 대지를 달구는 대장간의 느낌이죠. 하지만 직장으로 가는 어른들,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있으면 빠른 발걸음과 전혀 다른 지지루함이 있습니다. 지각이라도 할까봐 앞만 보고 걸아가고, 만원 버스 안에서 몸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극도의 신경을 쓰다 보면 얼굴이 일그러지기 십상이죠. 바깥 풍경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버스 안에서 조지 오웰 같은 눈을 하고 한 아이가 사람들의 표정과 바깥 공기, 그리고 버스의 움직임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관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는 그 아이가 눈물겹게 고마울 것 같아요. 

조지 오웰은 명료한 문체로 사회 부조리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평생 동안 썼습니다. 《동물농장》, 《1984》 등의 소설뿐 아니라 《카탈로니아 찬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파리의 밑바닥 생활》 등의 르포르타주로도 유명합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쓸 때는 밑바닥 인생을 체험하고 감정을 직접 느끼기 위해 가장 열악한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아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아이들의 목소리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한계는 명백했습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아이들의 처지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사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건은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죠. 

한 학기라는 시간 동안 반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수업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글에 소질이 보이는 학생들을 가려서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겪은 일을 쓸 수 있고, 거기서 비판을 담을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시를 많이 썼지만 읽지는 않고 썼기 때문에 글에 한계는 명백했습니다. ‘읽고 쓰기’를 균형 있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의 시선이 종이 위에 차분하게 펼쳐지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꿈꿉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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