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2. 일도1동 가막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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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막새미(산지천 동측 산지로 하부).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일도리는 옛 제주읍성의 동문 일대를 일컫는데, 삼성신화의 고을나가 활을 쏘아 터를 잡은 땅으로 알려져 있다. 일도1동은 지금의 칠성통 일대를 칠성골이라 했는데 과거 칠성(七星)을 배치한 땅으로 칠성단이 있었으며, 옛부터 ‘칠성대촌’이라고 부른다. 이 칠성대촌에 귀한 식수는 가막천과 급고천이란 산물이었다.

가막천과 급고천과 관련하여 「증보탐라지」에 의하면 “일도리 삼천서당에 두개의 샘이 있는데, 하나는 서당 안 북쪽의 ‘급고천’과 밖에 있는 서당 남쪽의 가막천이다”라고 했다. 삼천서당은 영조 12년(1736)에 김정(金政)목사에 의해 세워졌는데, 이때 서당의 뜰아래에 두 우물(麗澤)을 판 것을 “친구들과 강습하는 태사(兌辭)를 실천함”이라 하였다. 즉, 사상을 말이나 글로써 나타내어 주고받음을 실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조선시대 제주의 인재들을 길렀던 삼천서당(三泉書堂)은 서당의 주변에서 솟아났던 산저천(山底泉), 급고천(汲古泉), 감액천(甘液泉) 등 3개의 샘에서 따온 것으로 산저천은 금산 밑에서 용출되는 산물을 지칭한다.

가막새미는 가막천(감액천)라고도 하는데, 땅속에서 솟아 나오는 물을 쪽박으로 긁어다가 먹었다고 한다. 그 때 물 긁는 작박(쪽박)소리가 ‘골각골각’, 또는 ‘갈각갈각’ 났다는 데서 갈각물 또는 골각물(꼴깍물)이라고 불렀다. 「증보탐라지」에 의하면 “일도리 삼천서재(서당) 문 밖에 있는 물로 김정이 산물이름을 지었고 물맛이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물은 동문로타리에서 제주항 방면으로 진입하는 산지로 도로하부 사각암거에서 용출하여 산지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용출수 입구 위쪽에 산지천의 홍수재앙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냈던 조천이라 쓴 조두석이 산지천을 지키고 있다. 

조두석은 하천의 홍수예보용 석상으로 물에 잠기면 산지천 일대는 홍수범람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다. 그러나 옛 책(고서)를 탐독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워졌던 삼천서당의 주급수원인 급고천은 아쉽게도 도시개발로 이 일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매립되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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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성대촌 우물유적(관덕로 11길, 발굴 후 매립).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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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천석(동문교 하부 가막새미 입구).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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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막새미 내부 모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일도1동은 동문시장에 있던 동양극장 뒤 일대에 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구명골, 산지천 동문교 옆 칠성로로 진입하는 도로 일대에 바닷가로 냇물이 흐른다고 해서 샛물골이라 했다. 이것을 볼 때 산지천은 지천(지류)이 없는 단일하천이 아니라 곳곳에 크고 작은 지천이 있었지만 도시개발로 모두 사라져 버렸고, 동문교를 중심으로 이 일대는 물동네를 이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제주성에는 물이 없다고 기록되고 있지만, 일도1동에 칠성대촌을 이루고 많은 사람이 모여 살 수 있었던 것은 목관아지 일대를 제외하고 곳곳에 물이 풍부하게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최근에 칠성대촌이라 했던 칠성로(관덕정 11길) 차 없는 거리조성 시 탐라시대 유물로 확인된 우물3기와 추정우물 2기 등 우물터가 발굴되었다. 우물의 축조기술은 외도 돌우물군과 유사한데, 차이점이라면 외도 돌우물군에 비해 정교하고 깊다는 것이다. 이 일대는 막은골이라 했던 동네로 일제강점기 때 모토마찌(元町)라는 원정통으로 적산가옥(일본인 소유로 나라에서 접수한 집)이 많았다. 

이 동네는 필자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적산가옥인 경우 식수해결을 위해서 일제강점기 시 일본인들에 의해 얕은우물(깊이 20미터 내외)을 파서 대부분 우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칠성대촌의 땅속에는 물이 풍부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사람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조건인 물을 갖춘 마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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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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