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81) 유발 하라리(원서: 2015년)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 김명주 옮김(2017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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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원서: 2015년)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 김명주 옮김(2017년), 김영사. ⓒ제주의소리

얼마 전에 오른쪽 눈에 검은 실오라기 서너 개가 형체를 달리하며 눈앞을 오락가락하며 시야를 가리더니, 신경이 너무 쓰여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다음 날 동네 안과로 달려가는 일이 있었다. 이런 증상도 처음이었거니와 안과 방문도 처음이라 무척 두렵고 불안했다. 동네 안과에서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의사 앞에 놓인 작은 기계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의사의 육안 반, 기계 반 검사를 했는데 의사의 소견은 망막 뒤에 뭔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보이긴 하는데 이를 정밀하게 파악하려면 종합병원으로 가야한다며 소견서를 써 주었다. 그 말에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어 인터넷으로 이와 비슷한 증상도 찾아보고, 그 징후들을 읽어 볼수록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또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종합병원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종합병원 안과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약을 하지 않은 터라 거의 종일 병원에 눌러 앉아 내 이름을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그 사이 어제 갔던 동네 병원과는 차원이 다른 기본 검사와 최신형 정밀 CT기 촬영까지 받았다. 다시 한참을 기다렸고 드디어 담당 의사 앞에 불려가 앉아 그 원인을 듣고, 이에 대한 레이저 시술 권유를 받고 이에 주저없이 응했다. 이 작은 경험 속에서 내심 놀랐던 것은 동네 병원에서 사람의 육안으로 의심되었지만 무엇이라 판단할 수 없던 것이 종합병원의 값비싼 최신형 정밀기계를 통해보니 포착되어 그 원인과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즉각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틀간 밤잠을 설치며 나를 휘감아 왔던 막연한 걱정과 불안 또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순간 내 자신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헛웃음만 나왔다.

병원에서 정밀기계로 내 몸을 스캔하고 문제를 알아내 해결한 일이 뭐 그리 놀랄 일이냐며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멀쩡한 몸에 암세포도 잡아내고, 심지어는 몸에 센서와 컴퓨터를 장착하여 운동량을 알려주고, 혈압과 혈당수치를 자동으로 체크하고 위험한 선을 넘을 때마다 알려주는 생체 데이터 기술까지 나와 우리의 건강과 활동을 이미 관리하는 시대에 말이다.

그렇다. 21세기를 사는 인류는 질병을 비롯하여 기아(영양실조), 전쟁(폭력)으로 계속 고통 받는 것에 대해 자연이나 신을 탓하는 대신, 우리의 능력으로 충분히 상황을 개선하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질병, 기아, 전쟁은 이제 더 이상 무력한 인류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불가피한 비극이 아니라, 점점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최근 나의 예기치 않은 병원행과 겹치면서 이번 호에 소개할 책, 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는 21세기 신기술의 현주소와 인류의 미래를 냉정하게 가늠케 하는 흥미로운 책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책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1976년 이슬라엘 태생으로,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사피엔스》의 저자로 ‘사피엔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속편인《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또한 국내외 대중과 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유발 하라리의《호모 데우스》는 참고문헌만 45쪽에 달하고, 본문이 550쪽으로 종교, 역사, 예술, 경제, 정치, 생물학, 생명공학, 유전공학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저자는 ‘거대한 집단 인류가 지향하는 바는 역사를 통해 예측된다’는 신념을 토대로, 방대한 자료(데이터)를 이용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인간 문명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 서평이 무색할 정도로 이 책은 다양한 형태로 기사화되어 소개되고 있다. “7만 년 간 지속되어온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을 한순간에 뒤엎는 21세기 유일무이한 탐구서”, “도발적이다! 천재 사상가의 문제작”, “정치, 종교, 문화 등 모든 구시대적 신화와 인공지능, 유전공학의 새로운 신이 만나 펼쳐낼 최후의 서사시”, “<사피엔스>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주고 <호모 데우스>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준다”는 등 이 책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책 제목인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에 이어 앞으로 출현할 신인류를 가리키는 용어로, 우리말로 ‘신(神)이 된 인간’이라 번역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피엔스’라는 인류는 신(神), 인권, 국가 또는 돈에 대한 집단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 덕분에 이 행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1세기엔 신인류가 등장하여 ‘사피엔스’를 비노동 계급(쓸모없는 계급)으로 몰아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인지능력보다 앞서가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인간의 수명 연장 및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는 생명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그 단서들이다. 따라서 유발 하라리는 우리의 오래된 ‘사피엔스’ 신화들이 혁명적인 신기술과 짝을 이루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검토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본문 도입부에 21세기 인류는 마침내 굶주림, 역병, 전쟁을 극복했다는 저자의 주장과 예시부터가 과연 도발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 테러범, 범죄자의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해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15쪽)

전쟁만 해도 그렇다. 전쟁이 사라지고 있다. 전쟁이 있다 해도 여전히 물질기반 경제를 운영하는 지역, 예컨대 중동이나 중앙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날 뿐이다. 이처럼 정글의 법칙이 깨지고 있다. 석기시대부터 산업혁명기까지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이웃이 언제라도 우리 영토를 침입해 우리 군대를 격파하고, 우리 민족을 도륙하고, 우리 땅을 차지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20세기 후반 동안, 이런 정글의 법칙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마침내 깨졌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쟁은 드문 일이 되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사망 원인의 약 15%가 인간의 폭력이었던 반면, 20세기에는 5%에 불과, 21세기 초에는 약1%로 줄었다. 2012년 전 세계 사망자 수는 약 5,600만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62만 명이 폭력으로 죽었다(전쟁에서 12만명, 범죄로 인해 50만 명). 반면 80만 명이 자살했고, 150만 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현재 설탕은 화약보다 위험하다.” (31~32쪽) 

긴 역사의 과정에서 기아·역병·전쟁을 최상위 의제로 삼아 온 것이 ‘사피엔스’라면, 21세기의 초인간, 즉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호모 데우스’는 마침내 굶주림·역병·전쟁을 극복하여, 불멸·행복·신성을 향해 긴 여정을 막 시작한 새로운 집단 인류에 해당한다. ‘사피엔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였다면, ‘호모 데우스’에게는 ‘죽느냐 죽지 않느냐’가 문제가 될 판이다. 이에 힘입어 점점 더 많은 “개인, 기관, 기업, 정부들이 불멸, 행복, 신성과 같은 힘의 추구를 진지하게” (79쪽) 받아드리는 추세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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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사람들은 흑사병을 인간이 통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끔찍한 악마의 힘으로 의인화했다. 본문 21쪽 그림. 사진=고영자. ⓒ제주의소리

실제로 이들은 인간 개개인의 지식(의식)과 지혜보다는 빅데이터(지능)와 컴퓨터 알고리즘(문제를 풀고 결정하는데 사용할 방법론적 단계들)을 더 신뢰하는 초인간 종(種)으로 살아남을 미래의 인류일지도 모른다.

이런 궤도에서 21세기 주요 생산품은 빅데이터와 외부(전자)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되고 재설계되는 마음과 뇌, 몸으로 집중되는 추세다. 일례로 자동차 내비게이션 앱이 그렇다. 수백만 사용자들이 교통체증, 과속운행, 자동차 사고, 경찰차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내비를 사용하면 할수록 사용자는 점점 자신의 직감보다 내비의 말을 듣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페이스북이 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그 사람의 친구나 부모 또는 배우자보다 더 잘 더 잘 안다는 사실도 점점 정설이 되고 있다. 일부 영역에서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그 사람 본인보다 더 잘 예측할 정도라 한다. 젊은이들이 활동, 진로, 연애 상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심리적 판단을 포기하고 컴퓨터에 의존하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좀 더 향상된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의 데이터를 선뜻 내어줄 정도로 프라이버시조차 포기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이는 외부의 막대한 데이터가 내 자신(나의 마음, 뇌, 몸)을 더 잘 알고 있으리라는 신뢰이기도 하며, 한편 나 자신을 이루는 데이터의 홍수를 더 이상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외부 알고리즘이 확장되어 강화되면 강화 될수록 신인류는 불멸·행복·신성을 더욱 강력하게 추구할 것이란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과학의 주력사업이 “죽음을 격파하고 인간에게 영원한 젊음을 제공하는 것”(44쪽)이라 말하는 몇몇 과학자와 사상가들에게도 저자는 주목한다. 

그 대표주자가 세계적 석학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다. 커즈와일은 2012년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로 임명되었고, 1년 뒤 구글은 ‘죽음 해결하기’가 창립 목표임을 밝히는 칼리코(Calico) 자회사 설립했다. 또 최근 구글은 불멸을 믿는 또 한 명의 신도인 빌 마리스를 영입해 구글 벤처스(구글의 벤처 투자사)를 맡겼다. 

저자는 이들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여러 유명 인사들이 ‘영원히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하면서 이런 꿈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만간 “평등 끝, 불멸 시작”(45쪽)이라는 광고가 내걸릴 조짐이 보인다는 저자의 표현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는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종교적 영역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유전공학, 재생의학, 나노기술)라는 인식 전환과도 연결된다.

앞서 나는 유발 하라리의《호모데우스》관련 소개 기사가 많아서 오히려 서평쓰기가 주저된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컴퓨터 공학자라거나 생명공학, 인공지능 개발자 또는 미래 경제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누구보다도 최첨단 신기술 시대 ‘역사 지식’의 역설을 가장 잘 간파한 몇 안 되는 이들 중 1인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96쪽)라고 말하는 대목을 포함하여,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89~90쪽)는 대목들에서 신세대 역사학자로서의 신념과 비전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과 과거에 대한 기존의 글쓰기와 방법론을 과감히 탈피하고 ‘역사 다시 쓰기’, ‘역사 다시 말하기’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저자는 “세계를 바꾸려는 운동들은 대개 역사 다시 쓰기에서 시작한다”(92쪽)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책 속엔 종횡무진 학문적 경계를 넘나드는 용어와 표현이 난무해 보일지라도, 그가 시종일관 천착하는 주제는 ‘인간의 역사’임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지도 모른 신인류 ‘호모 데우스’는 유발 하라리 자신이 원하여 주장하는 테제가 아니라, 유발 하라리가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해 본 결과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측되는 인류의 변종임을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도 있다. 

인간은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으로 풍부한 식량·의료혜택·에너지·원재료를 제공받아, 인류의 난제였던 기아·역병·전쟁을 극복하여 통제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를 이루었을 때 도리어 더 갈구하는 법이라고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선택한 최상위 의제가 불멸, 행복, 신성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38~39쪽)이라고 저자는 극적으로 묘사한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술들은 결국 인간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100쪽)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발 하라리의《호모 데우스》는 불멸, 행복, 신성의 추구가 어떻게 인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뿌리째 뒤흔드는가? 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처한 곤경과 우리에게 가능한 미래들을 이야기하는 철학서이자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격변을 예고하는 징후는 무엇이고, 그 격변은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내리는 결정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그리고 ‘사피엔스’의 가치를 지탱한 인본주의가 실제로 위태롭다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까? 나아가 지구를 평정하고 신이 된 인간은 어떤 운명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지구에는 누가 남게 될 것인가? 등 이런 가설들 속에 저자는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책 3부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데이트 관행, 직업시장, 데이터교 등을 파헤치며 책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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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자(미학자·번역가)

(사) 제주기록문화연구소-하간 대표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기록·제주미학론. 제주도 ‘형태기록’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 《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 《新제주순력담》(2016년), 韓東亀 편저 《제주도: 삼다의 통곡사》(2017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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