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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수형인 생존자 오계춘(1925년생) 할머니가 5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4.3재심사건 심문기일에 맞춰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법원, 제주4.3수형인 생존자 18명 첫 재심 심문...판결문 없는 초유의 재심 청구 사건 ‘관심’
 
올해로 구순인 양일화(1929년생)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재판장과 마주했다. 1948년 영문도 모른채 군법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을 선고 받은지 정확히 70년만이다.
 
양 할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자 방청객으로 꽉 찬 법정이 곧바로 숙연해졌다. 폭설을 뚫고 재판장까지 찾은 고령의 4.3수형인들의 눈시울도 덩달아 불거졌다.
 
“죽기 전에 해야할 말이 있수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형무소를 다녀왔습니다. 이 억울함과 한을 풀고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재판장님이 관심을 가져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폭도로 내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이 4.3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불복해 70년만에 재심 청구에 나서면서 재심 개시를 판단하기 위한 첫 재판이 열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5일 오후 2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4.3수형인 생존자 18명의 재심청구 사건에 대한 첫 심문을 진행했다.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와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최소 1년에서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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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수형인 생존자 양일화(1929년생.오른쪽) 할아버지가 5일 휠체어를 타고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4.3재심사건 심문기일에 맞춰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문제는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되는 기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 입증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법회의 유일한 자료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수형인 명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정치국민회의 제주 4.3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1999년 정부기록보존소의 보관창고에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를 처음 발견했다.
 
수형인명부는 4.3사건 군법회의의 내용과 경과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문서다. 이 명부를 제외하면 재판과 관련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당시 군법회의의 근거가 된 국방경비법 제81조, 83조에는 소송기록의 작성과 보존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다만 공판조서와 예심조사서는 빠졌고 판결문도 작성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에는 재심 청구를 위해서 청구 취지와 재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재심청구서에 원심판결의 등본, 증거자료, 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422조(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에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해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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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수형인 생존자들이 5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4.3재심사건 심문에 앞서 제주지방법원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재판부는 이 부분을 문제 삼고 재심 청구의 적법성 문제를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내 법학자를 통해 유사사례에 대한 질의에 나섰지만 지금껏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이 존재하지 않고 공소사실 조차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수형인명부도 나중에 작성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재심이 가능한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측은 수형인 명부가 당시 형집행의 근거가 되고 생존자 진술을 통해 당시 구속과 재판의 위법성이 인정되면 재심이 가능하다며 맞섰다.
 
법률대리인들은 “수형인 명부는 국가가 작성했고 범죄경력조서와도 대부분 일치해 증거로 충분하다”며 “국가공권력에 의한 잘못을 재심을 통해 바로잡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변호인에 맞서 제주4.3 수형인과 관련한 일체의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요구했다. 다만 자료 분석 아직 이뤄지지 않아 이날 재판에서 별다른 의견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양측의 의견서를 받아 검토하고 3월19일 다시 재판을 열어 생존자 18명에 대해 순차적으로 청구인 심문절차를 진행하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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