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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는 21일 제주대 인문대학 2호관 진앙현석관에서 ‘제주4.3 7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재일제주인센터 70주년 학술포럼...오광현 日유족회장 “차세대 육성, 1세대 경험 전승”

제주4.3이 오늘날 빛을 보기 까지 재일제주인들은 큰 역할을 했다. 올해 4.3 70주년을 맞아 재일제주인 4.3운동을 되돌아본 자리가 제주에서 열렸다. 일본 내 4.3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제주와 마찬가지로 ‘젊은 운동가 양성’이 꼽혔다.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센터장 최현)는 21일 제주대 인문대학 2호관 진앙현석관에서 ‘제주4.3 7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이날은 허남춘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창후 전 4.3연구소장, 오광현 일본4.3유족회 회장, 김인덕 재일코리안연구소, 홍혜숙 제주국제평화센터, 염미경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오광현 회장과 함께 4.3에 대해 관심 있는 일본 청년들도 다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김창후 전 소장은 주제 발표 ‘일본에서의 4.3추모와 운동의 전개-일본4.3운동가들을 중심으로’에서 “일본 4.3운동을 위해서는 젊은 3~4세 자이니치(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의 참여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의 협력도 장기적인 해결 과제”라고 밝혔다.

# 10년간의 침체기 끝에 1세대 품은 日 4.3추모행사

김 전 소장은 일본 4.3추모의 시작을 1985년 도쿄에서 만들어진 ‘탐라연구회’로 봤다. 이후 김민주, 양성종, 안영식, 송창빈, 김병오 등이 모여 공부 모임을 시작했고, 1987년이 되자 ‘4.3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한다. 여기에는 현광수(회장), 김민주(사무국장), 유학생이던 강창일과 김명식, 재일제주인 2세대인 문경수, 고이삼, 김중명, 이정미 등이 참여했다.

1년 뒤인 1988년, 일본에서의 첫 번째 4.3추도행사가 강연회 방식으로 도쿄 YMCA에서 열린다. 김 전 소장은 “이날 행사는 300~40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며 "김석범, 현광수, 김민주 등 재일제주인 1세대와 탐라연구회, 4.3을 연구하는 모임이 주도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활발했던 활동은 이내 힘을 잃으면서 1988년까지 침체기에 빠진다. 이 기간 동안 4.3 추모에 대한 기록도 제대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김 전 소장은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지난해 쓴 책 《4.3으로 만나는 자이니치》의 한 대목을 들어, 돈 문제와 참여 저조 등을 들었다.

1998년은 일본 첫 4.3추도회가 열린지 10년이 흐른 동시에 4.3 5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였다. 김 전 소장은 “일본에서 4.3추도행사가 본격적으로 재도약을 하게 된 것은 1988년 제50주년 오사카 4.3행사 이후부터”라며 “당시 오사카 행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의 일본 4.3운동을 반성케 하고 향후의 진로를 제시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성공 요인으로 ▲4.3 겪은 1세대가 참여한 첫 번째 추도회 ▲김윤수 심방 초청 위령굿 ▲제주 출신만이 아닌 일본인도 참여 ▲오사카는 위령제, 일본은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 기념제 구분 등을 꼽았다.

김 전 소장은 “당시 행사장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참여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재일제주인 1세 어르신들이었다”고 밝혔고, 오 회장도 “500여명 가운데는 내 어머니도 있다. 위령굿에 다녀오고 나서 어머니께서 ‘한풀이가 됐다’고 말했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 세대가 바뀌어도, 4.3은 이어져야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고 그해 10월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본제주4.3유족회’도 만들어진다. 자연스레 일본에서의 4.3 활동은 더욱 다양해지고 대중화됐다. 김 전 소장은 일본 4.3 활동에서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로 차세대 육성, 조총련과의 관계를 꼽았다.

김 전 소장은 “젊은 활동가 양성은 비단 일본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어느 나라에서도 시민단체의 활동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젊은 후계자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돼야 한다”면서 “올해 4.3에는 일본에서 제주로 220명 가까이 찾아온다. 상당수가 젊은 3~4세 자이니치들이거나 일본인이다. 이들에 거는 기대는 높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 회장은 2011년부터 일본에서 4.3기행을 시작하며 세대 전승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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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후 전 4.3연구소장(왼쪽), 오광현 일본4.3유족회 회장. ⓒ제주의소리

그는 “오사카 지역 4.3운동의 핵심은 차세대를 어떻게 육성할지, 4.3을 경험한 1세대들의 경험을 어떻게 남길지에 달려있다”며 “한국처럼 일본 청년들은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 4.3을 위해 힘써줄 청년들을 위해 기성세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찾는게 현재 가장 큰 고민”라고 밝혔다.

다만 “4.3 50주년 때 실행위원회는 재일교포 2세 남성 6명뿐이었다. 그런데 70주년 실행위원회는 24명이나 된다. 여성도 10명 이상 참여하고 일본인과 재일교포 3세도 여러명 있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김 전 소장은 “조총련 문제는 일본 4.3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 6차례에 걸쳐 4.3희생자 신고를 받았는데 아직까지 76명에 불과하다. 조총련의 조직적인 협력 없이는 일본에서의 희생자신고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 문제는 어느 한 단체나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면서 “조총련 문제는 동시에 희망이다. 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어떤 해결책이 나왔을 때 일본의 4.3운동은 질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이 밖에 ▲일본4.3유족회원 확대, 회원 명부 정리 ▲일본에서의 4.3 관련 조사·연구 ▲제주도와의 교류 확대 등을 과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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