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립박물관 유물정리를 위해 파견된 최미연·조현숙·김화미 연구원

 
▲ 제주민속사박물관(관장 민성기)에서 유물 보존을 위한 처리를 하는 조현숙 연구원
ⓒ 김기
 
소형 승합차가 멈춰서자 제주 삼양동 시멘트 포장이 된 곳에 제주 전통초가가 하나 낮게 서있고, 그 옆으로 여느 가정집 같은 건물이 일행을 맞아주었다. 이곳이 바로 제주민속사 박물관. 흰 수염이 멋지게 턱밑으로 드리워진 진성기 관장이 나와 반갑게 맞는다. 그리고 그 뒤로 긴 앞치마를 두른 여성 셋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있다.

박물관이라고 안내된 곳은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오래 전 상가에서 썼음직한 진열장이 놓여져 있었다. 그나마 진열장 속의 유물들은 가지런히 정리가 된 것이 사람 손이 정성스레 닿은 흔적은 역력했다. 그러나 진열장 속에 들여 놓을 수 없는 병풍 등은 한쪽 구석 좁은 틈새에 힘겹게 자리잡고 있었다.

 
▲ 민성기 관장(오른쪽)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민속유물 수호천사들. 왼쪽부터 조현숙, 김화미, 최미연 연구원
ⓒ 김기
한 눈에 봐도 대단히 열악한 박물관 형편을 읽을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고희의 진성기 관장은 자랑스럽게 유물들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제주민속에 관한 책도 몇 권 꺼내 보이는 민 관장이 너른 땅과 건물을 돈 한 푼 되지 않는 민속사박물관으로 유지하는 까닭은 역시 제주민속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세상은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에 오랜 세월 민 관장은 홀로 고군분투하며 박물관을 근근이 지탱해오고 있다.

제주민속사박물관은 1인 박물관이다. 관장 혼자 유물 수집 부터 전시까지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제주민속사박물관 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립박물관들이 처해있는 형편이다. 제주민속사박물관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파견된 유물정리 전문가 최미연·조현숙·김화미·양웅렬 연구원이 찾은 것은 지난 5월 초. 이들이 제주자연사박물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바퀴벌레 등 해충들을 잡는 것이었다고 한다.

직접 낳은 자식보다 아끼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유물관리를 다 할 수도 없거니와 노인에게는 너무도 벅차기만 한 일이다. 사무실 등으로 사용할 곳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 이미 작년 온양민속박물관, 밀양미리벌, 광명 충현박물관 등을 경험한 4인방이지만 제주의 상황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보통 2개월에서 3개월 가량 사립박물관에 상주하면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발한 유물관리 시스템에 준해 유물을 정리하게 되는 이들은 우선 유물들을 심각한 오염이나 훼손 위험을 피하도록 정돈을 한다. 그 과정에서 목재나 금속 유물들은 단순한 방법으로 외부의 오염을 제거하지만, 그 외 의류 등의 유물은 특수한 청소기로 조심스럽게 세정작업을 한다.

 
▲ 기본 처리를 마친 유물은 직접 촬영을 해 다음 단계인 유물 코드화 작업으로 넘어간다. 사진촬영 중인 최미연 연구원
ⓒ 김기
 
그렇게 기본적인 보호작업이 끝난 유물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촬영을 하고, 그 자료는 기타 역사기록과 함께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 컴퓨터에 저장된다. 그리고 보통은 이들의 업무가 아니지만 제주민속사박물관의 경우에는 박물관 전시실 내부의 청소 및 진열장 정리도 이들 몫이 되었다고 한다. 예산 사정상 진열장을 마련해주고, 유물관리에 꼭 필요한 항온항습조절기를 지원할 수는 없어 대신 청소라도 매일매일 한다는 것이다.

석 달마다 짐을 꾸려야 하는 이들의 삶은 대단히 고단하다. 짐도 만만치 않다. 공식업무를 위한 사무집기 일체를 모두 들고 다녀야 하는데다가 개인 짐까지 일년에 서너 번 꾸리기에는 만만치 않은 짐들이다. 그나마 내륙에서 근무할 때에는 마음 편히 집을 찾을 수 있지만, 제주도의 경우에는 겨우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족들을 만나는 등 그야말로 게릴라의 삶을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유물 만지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매일 매일 유물을 만지고 사니까 정말 행복해요"라고 고생스럽지 않냐는 말에 최미연 연구원은 대답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민속박물관에 근무하고 싶었어요" 이 팀의 막내 김화미 연구원의 대답이고, "내 몸보다 유물이 훨씬 더 중요해요. 세상이 매기는 유물의 가치가 어떻든 상관없이 유물은 그 자체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죠" 조현숙 연구원의 말이다.

팀의 청일점 양웅렬 연구원은 마침 첫 아이 출산으로 서울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말이 연구원이지 이들이 하는 일은 박물관의 모든 허드렛일을 모두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박물관 사정을 알고, 또 유물과 박물관에 대한 애정 때문에 스스로 하는 일들이다.

 
▲ 대문도 없는 제주민속사박물관에서 퇴근하는 국립민속박물관 유물정리연구원들
ⓒ 김기
 
먼지 쌓인 유물들을 소중히 다루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에 피부는 늘 위험수위에 놓여있고 무거운 유물을 들었다 놓는 과정에서 팔과 허리를 삐는 것은 다반사. 이들에게 소염진통제는 필수품. 남성 1인에 여성 3인의 연구원은 항상 객지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자주 못 보는 외로움도 이들이 이겨내야 할 필수항목.

그럼에도 이들 연구원은 업무가 없는 주말에는 해당 지역 유적을 찾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유물정리 연구원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오히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박물관의 딱한 사정들이다. 또한,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전반적인 유물들의 보존처리까지 지원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정리는 되도 열악한 사립박물관 형편에 지금까지도 계속 훼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인 박물관의 관장이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졸지에 박물관 입장 관리까지도 자연스럽게 이들 몫이 되고는 한다. 제주민속사박물관에서의 3개월이 지나면 제주의 또 다른 사립박물관인 평화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 이들의 방문은 사립박물관 입장에서는 천사나 다름없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벌레들과 싸우는 민속사 유물 수호천사인 것이다.

 
  사립박물관 협력망사업 지원 늘려야  
 
 
 
▲ 사립박물관 협력망사업 성과평가좌담회 장면
ⓒ김기

우리나라에 박물관이 몇 개나 될까? 용산에 자리잡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경복궁 경내의 국립민속박물관 그리고 중앙박물관 지역 분관이 있다. 정부예산으로 비교적 탄탄한 경영구조를 가지고 소중한 역사유물들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대학박물관과 사립박물관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박물관 구경은 좀 다녀본 사람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박물관은 200여 곳이 된다. 그 중에는 경보화석박물관, 아프리카박물관 등 관람객수도 상당수 되고 규모도 번듯한 곳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립박물관은 겨우 명맥만 잇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물 혹은 골동품으로써의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립박물관 소장유물 대부분이 관장님이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모아놓은 것들이라 테마별로는 주목할 만한 곳들이 많다" 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 이관호 연구관의 말이다. 사립박물관 소장유물들은 대부분 민속생활사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민속생활사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 및 민간의 인식이 아직 부족한 가운데 사립박물관들은 그 영세성으로 인해 다중고를 겪고 있다.

그런 사립박물관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은 ‘박물관협력망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각 지역 사립박물관들은 박물관 교육, 전시, 유물, 조사연구 등 전반적인 박물관 업무를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4일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배움터에서 열린 협력망사업 평가좌담회에 모인 전국각지의 사립박물관 관계자들은 이구동성 민속박물관의 협력망사업에 기대와 만족을 표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부에 바라는 점들도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예컨데, 예술단체에 인턴사원을 지원하는 것도 사립박물관에는 돌아가지 않는 혜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원은 사립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통해 정말 국가적으로 보전해야 할 사료들을 훼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소규모 사립박물관의 경우 수장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다. 사립박물관에 대한 협력망사업같은 지원은 현재 수준으로는 겨우 갈증만 면할 수준이라는 것이 참석자들의 평가.

사립박물관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협력망 사업예산은 증액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내년 예산은 톱다운제에 의해 줄어들 전망이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사립박물관 관계자들은 의기소침해 하고 있다.
/ 김기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의 기사제휴 협약에 의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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