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1. 도두 2동 사수(沙水) 용출수

예전 제주시 도두 2동의 가장 큰 마을은 '몰래(모래의 제주어)물'이란 해안가 마을이었다. 몰래물은 1702년(숙종 28)에 나온 《한라장촉》에 ‘니을포(泥乙浦)’라 기록되어 있는데, 몰래물이란 명칭은 ‘모래가 있는 곳에 솟는 물’이라는 의미로, 한자표기로  ‘사수(沙水)’라 한다. 

이 마을은 수근동처럼 1970년경에 제주국제공항 확장공사로 사라져 버렸지만, 바닷가에 있는 '몰래물'은 지금도 여전히 솟아난다. 이 산물이 있는 엉물 언덕에는 정지용의 시 <고향>이 적힌 시비(詩碑)와 함께 애향비, 몰래물향우회창립기념비, 몰래물사적비 등이 세워져있는데, 실향의 아픔과 향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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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다리물(앞), 태역섬(중간), 몰래물(뒤) .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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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물 망향비.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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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몰래물은 낭떠러지 비슷한 바위인, 제주어로 ‘엉’이라 한 바닷가 언덕 아래에서 내리는 물이라 해서 엉물이라고도 한다. 이 용출수는 마을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식수와 생활용수 등으로 이용되었으며, 도두 오래물보다 더 큰물이었다고 한다. ‘엉알’이라는 언덕 밑 암반 틈에서 솟아나는 산물은 사각 형태의 식수통을 만들어 마을의 귀한 생명수로 사용했다. 지금 이 물은 잠시 오가는 사람들이나 낚시꾼들이 사용하는 물로 사용된다. 간혹 한밤 중이나 새벽 치성을 드리는 사람도 찾아온다. 

현재 몰래물은 옛 돌담 밖으로 사각 형태의 비가림을 한 슬래브구조물로 개수하여 용출수를 보호하고 있다. 옛 돌담 위에 구조물을 씌워 돌을 붙인 형태가 지나쳐 보여 어색하게 느껴진다. 단지 진입로에 세워져 비바람에 풍화된 ‘사수천치수비’ 만이 지난 몰래물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곳 엉알(언덕 아래란 뜻의 제주어)에는 몰래물을 포함하여 산물이 세 곳에서 용출되고 있는데, 몰래물 동쪽의 태역섬과 용다리물이다. 

태역섬은 몰래물에서 동쪽으로 5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태역(잔디의 제주어)과 숨부기나무, 그리고 방풍이 자생하던 곳에 자갈과 모래가 사라지면서 마치 섬처럼 되어 버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용출수는 주로 남자목욕탕 구실을 한 물로 다시 개수되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여자 목욕탕이었던 동쪽 끝 용다리물 역시 예전 모습으로 원형이 보전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솟아나는 모습이 신통치 않다. 더욱이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가 쌓여 있고 돌담 일부가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용출수를 둘러싼 돌담은 원형달팽이 형태로서, 내부를 함부로 볼 수 없게 해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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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된 태역섬.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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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역섬 내부.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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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다리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몰래물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가면 마을 하나가 있다. 홀캐 혹은 신사수동으로 부른다. 이 마을은 몰래물 동네인 사수동이 없어지면서 새로 만든 마을로, 공항 확장으로 고향을 떠났던 사수동 사람들 일부가 여기에 와서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사수동이라고 한다. 홀캐는 바닷가에 검은 모래밭이 있어 하얀 모래밭이 있는 이호처럼 붙여진 이름이다. 신사수동 포구인 흘캐에는 '말물'이라는 용출수가 두군데서 솟아난다.

말물은 한자어로 두천(斗泉)이다. 솟는 양이 말(부피의 단위로 18리터에 해당)과 같이 나는 물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흘캐 포구 안에서 솟는다 해서 흘캐물로도 부른다. 바다쪽 남자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는 사각구조물에 ‘홀캐물(말물) 斗水’라 명패가 붙여져 있다. 

이 용출수도 예부터 맛이 좋기로 유명했던 감천이었다. 말물은 마을 입구의 여자용과 그 안쪽인 바다 쪽에 남자용이 있는데, 모두 목욕탕으로 개조되었다. 그래도 여름철에 냉욕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목욕시설 이용은 유료화로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다만 아쉬운 건 물팡이나 식수통 정도는 옛 것을 어느 정도 살리면서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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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물(앞 여탕, 뒤 남탕).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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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물 여탕 내부.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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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물 남탕.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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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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