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2. 이호동 백개 용출수

제주시 이호동의 ‘이호’란 지명에 대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호(梨湖)는 ‘백개, 백포(白浦)’를 추앙하기 위해 ‘흰과일배’의 뜻으로 이(梨)를 붙이고, 개(浦)를 호(湖)로 바꾸어 개명했다고 한다. 또는 백(白)은 이(梨)로 바뀌고 ‘덕지답’이란 못이 마치 호수 같다 하여 호(湖)를 넣어 이호(梨湖)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마을은 큰물, 문수물, 대물, 동물, 원장물, 덕지답물 등 많은 산물이 솟고 있어 물이 좋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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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살원과 문수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문수물은 이호해수욕장 동측에서 나는 산물로, 자갈이나 작은 암초들로 형성된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는 ‘모살원’이라는 곳에서 솟는다. 용출수가 바다에서 처음 솟는다고 하여 ‘민물(담수)이 바다로 나가는 문’으로 마치 수문장 같은 산물이다. 전에 모살원이 있는 이호해수욕장 주변은 돌이 많았다. 그래서 피서객들이 이호해수욕장을 찾기를 꺼려하자 2007년에 해수욕장의 돌을 제거하고 이곳에 현대적 감각을 살려 문수물 주변을 중심으로 원담을 쌓고 모살원을 재현하였다. 문수물은 다른 이름으로 민수물이라고도 부르는데, 바다에서 민물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산물은 2개의 콘크리트 원형물통을 설치한 곳에서 물이 솟고 있으며, 수량이 풍부하지만 바다와 맞대고 있어서 약간의 염분기가 있어 피부병에 특효로 알려져 있는 용출수다. 한 때는 용출수 남측 소나무 언덕에 야영하는 사람들의 식수였으나, 지금은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탐방하거나 몸을 씻는 용도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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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출수(문수물) 탐방.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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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대물은 이호해수욕장 입구 인근에 위치한 백개 서마을 냇가 ‘이호천’의 서측 비탈면에 있는 산물로 이 일대를 대물깍이라 한다.

이 산물은 두 갈래로 솟아 나오는데, 물이 많이 솟아나서 대물이라고 하여 예전엔 돌담을 둘러쳐서 식수로 이용했었다. 지금은 산물 입구를 돌로 쌓아 쌍굴을 만들고 그 안에 식수통을 보관하고 있다. 왼쪽에 만든 굴에 사각 식수통이 놓여 있고 그 주변은 옛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이 산물의 특징은 간조·만초 차이가 심한 사리 때면, 냇가(이호천) 하류에 산물이 바닷물 위로 솟아오르면서, 그 물이 이호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덕분에 옛날만 해도 장어나 숭어 등이 많이 서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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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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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 물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마을포구인 동개에서 솟는 산물이라서 동물(알물, 서물)로 불린 여성전용 용출수로 현사마을의 식수로도 사용했다. 지금은 해수욕장 서측 포구 도로 밑 사각암거에 있으며 마을 빨래터로 피서객들이 몸을 헹구지만, 어린이나 여성들만 이용할 수 있으며, 남자들은 문수물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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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입구(여성 전용).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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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내부 모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덕지물(덕지세미, 덕지수)은 언덕 아래 있는 못물이란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가물개 동남쪽에 있는 덕지답이란 논에 사용됐던 산물이다. 지금은 용출수 주변의 미나리밭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일주서로 건너 해수욕장 방면에 습지까지 만든다. 이 산물은 식수통과 물팡 등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으나 최근까지 방치되었던 산물 주변에 산책데크를 만들어 산물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산물 안에는 수풀로 가득하다. 

덕지물 남쪽 상부 120미터 거리엔 고망물이 있다. 구멍에서 솟는 물이란 뜻으로 개수된 산물입구에는 맹강물이란 표지판이 서 있다. 이 산물도 덕지답 논을 만들어준 물이다. 덕지물과 함께 가물개 윗동네와 오도롱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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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지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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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지물 내부 모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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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맹강물).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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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망물 내부 모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원장물은 옛 현사마을 포구 ‘원장개’와 이어진 원장내 하류 서쪽 냇가에서 솟아나는 용출수다. 예전에는 마을사람들이 멱 감는 물로 이용했다. 원장물 덕분에 이 하천 일대에 숭어와 장어가 서식하기도 하였다. 이 물은 목욕용으로 새로 개수되어 있으며, 산물 주변 하천가 여러 군데서 산물이 솟아나오고 있는데, 인근 밭에서 농업용수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이호유원지를 만들면서 새로 정비한 민수물이 있다. 민물이란 의미다. 민수물 주변은 암초 같은 돌들이 많아 가마우지를 비롯한 바다 철새들의 쉼터로 사용된다. 펄이 있는 곳에 파도가 친다고 하여 펄랑물이라고도 하는데, 바다 한복판인 간조대에 있는 물로 간조(썰물) 때만 접근하여 사용할 수 있었던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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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장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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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장물 내부 모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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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수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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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수물 내부 모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동성창에 있는 이호에서 용출량이 제일 크다는 큰물은 이호동 백개 동부락 식수로, 한 때 상수도용 수원지였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제주시가 관리한다. 수원지 서측에 있는 조립식 건물에 물의 일부를 공급하여 마을사람들이 사용한다.

이호마을의 산물들은 해수용장과 해안도로 개설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나 안내판 등 용출수에 대한 설명이 없어 그냥 지나치거나 우연히 발견하여도 제주의 생명수가 아니라 단순히 몸을 씻는 물 정도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안내문을 세우고 스토리텔링화 한다면 또 다른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제주의 물로 거듭날 수 있을텐데...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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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상수원).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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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사람들이 이용하는 큰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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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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