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3) 외도동 도그내 용출수

‘도그내(월대천)’로도 불린 외도동은 풍부한 산물로 식수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선사시대부터 집단 거주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선사 유적인 고인돌이 집단으로 분포되어 있고, 탐라시대인 2000년전 우리나라 최대 우물군 유적이 발굴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는 “도근천은 조공천의 잘못으로 상류 위 절벽이 높고 험하여 폭포가 수십 자를 날아 흘러 그 아래의 땅 속으로 잠입하여 7~8리에 이르러 동 사이에서 솟아 나와 마침내 큰 내의 하류를 형성하므로 도근포를 일컫는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도그내는 조공을 바치는 배가 정박하는 포구가 있었던 하천이다. 제주시 서부지역의 식수를 공급했던 외도수원지가 도근천 동측변에 자리 잡은 것도 도근천 주변에 용출수들이 많이 솟아나고 용출량도 풍부했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풍족한 물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설촌이 생긴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구멍물(고냥물, 고망물, 수정천)은 돌 틈 구멍에서 나온다 하여 붙여진 용출수다. 통물길 외도펌프장에서 20미터 쯤 떨어진 남쪽 길가에 철창문을 설치하여 보존되고 있다. 이 용출수는 외도천 상수도 보호구역 서쪽 경계에서 솟아난다. 예전부터 외도 주민의 식수를 공급하던 물로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치수비(水精泉新築紀念碑: 수정천신축기념비)가 지금도 있다. 이 치수비를 보면, 1940년대에 지역 주민들에게 식용수를 공급하고 빨래도 하도록 정비했다면서 외도구민 일동이 세웠다고 설명한다. 이 용출수를 ‘수정천(水精泉)’으로 부른 것은 산물 가까이 있는 수정사터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정사는 제주 3대 고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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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구멍물 가운데 수정천은 물이 솟는 암반과 빨래터, 물팡 등 상당수가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식수통과 긴 빨래터를 연결하는 수로의 형상이 머리와 몸통만 있는 형태로, 흡사 한자 ‘철’(凸) 모양을 연상케 한다. 이 용출수는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내려도 물 양은 크게 변함이 없고 마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는 전분공장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식수로 먹을 만큼 청량한 물로 경향신문사(1987년)가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수 중 하나였다.

수정물 인근 수정사에도 스님들이 이용했던 절물(수정사물)이라는 물이 있었다. 이 용출수는 수정사 대웅전 옆에 있었던 물로, 부처님에게 올리는 봉양수나 큰스님들만 사용했었다. 지금은 주소상 절물3길에 위치해 있으며, 절물은 우물처럼 만들어 절물경로당(노인회)에서 관리한다. 절물유료샤워장의 물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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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목욕탕).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절물 옆에 있었던 수정밭물(절디밧물)은 수정사에서 경작했던 밭에서 솟았던 물이다. 지금은 경로당 맞은편 공원 연못의 물허벅진 여인상에서 나오는 분수와 공원 연못, 동측 건너편 수영장 용수로 사용한다. 

또한 산물 남쪽 우정로 15길에 ‘스님들이 입었던 누더기 옷’이란 뜻의 납세미물(남샘이, 납샘이)도 보전되어 있다. 이 물은 주로 스님들이 생활용수로 사용하거나 마을포제에서도 사용한 용출수다. 동굴 같이 움푹 팬 곳에서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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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밭물(절디밧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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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밭물(절디밧물)에서 물놀이.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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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세미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외도 해안마을은 외도 서쪽 경계에 연대가 있어서 연대마을이라고 한다. 해안마을도 용출수를 주민 식수로 사용했는데, 바로 가막물(가막세미)이다. 이 물로 인해 큰 못이 만들어졌고, 못 형상이 말의 귀와 같다고 해서 마리못(마리지(馬里池), 연대못, 연대지)라고 이름 붙여졌다.

마리못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바닷물과 가막물이 담수가 섞여 만든 기수역 해안습지다. 덕분에 못에서 무리지어 노는 고기떼의 모습은 외도8경 중 하나라고 한다. 해안마을 어귀에 있는 가막물은 마을사람들의 식수였다. 가막은 ‘검은’의 뜻을 가진 제주어로, 가막물이 모이는 못의 빛깔이 검다고 해서 붙여졌다. 또한 마리못의 ‘마리’는 ‘말(馬)’이란 의미인데, 우마가 물을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막물은 두 군데서 용출하는데, 용출량에 따라 큰물은 큰가막물, 작은 물은 족은(작은)가막물로 부른다. 현재 큰 가막물 일부는 도로 밑에 있으며, 족은가막물은 형태만 남은 채 방치되어 사라질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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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막물과 마리못.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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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가막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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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가막물 물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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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은가막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도로건설 중 도평초등학교 일대에서는 고대마을터와 돌우물군이 다량 발견된 바 있다. 이 우물은 고대마을터에서 돌로 만든 14기의 우물 집단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군 유적이다. 우물은 대부분 원형형태로 직경과 깊이가 1~3m이며 우물바닥에는 물을 뜨기 위해 사용했던 토기들도 발견되었다. 

이 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표수가 자연스럽게 모아지도록 만든 일종의 집수암거식 지표하수다. 지하수 보다는 지표수에 가까운 물을 채집한다. 그러나 이 유적은 노형과 외도를 연결하는 우평로 도로에 묻혀 버려 애석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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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우물군 유적.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도평동에도 사찰에서 사용하는 용출수가 있다. 장군내길에 있는 동굴 속 용출수인 용장굴물이다. 예전에 이 일대에 감귤을 조정에 진상했던 용매과원(龍寐果園, 용골과원)이 있는 것으로 고려하면, 과원에서 식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물은 한라산에서 천룡이 내려와 굴에 몸을 감췄다는 전설이 있는 속칭 용장굴에 있다. 사라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절의 생활용수와 조경수로 사용되고 있는데, 절의 이름을 따서 흥룡사물이라 부른한다. 그래서인지 용출되는 곳을 감싼 바위병풍의 장엄한 기운은 용이 되어 물을 감싸는 듯 하다. 

용은 다른 말로 '미르'다. 그리고 미르는 물을 의미하는 옛말에서 파생됐다. 그렇기에 용장굴물은 용이면서 곧 물이다. 산물의 영험한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사각 우물통 속에서 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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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룡사물.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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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룡사물 물통. 사진=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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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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