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포토에세이] 주말농장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장마가 한가운데 와 있습니다. 올 여름장마는 많은 비를 몰고 왔습니다. 장마는 사람의 마음을 움츠리게 합니다. 습한 날씨 탓으로 그리워지는 것이 있다면 강렬한 햇빛이지요. 연일 내리는 장맛비가 이제는 지겹기까지 합니다.

 
▲ 장맛비로 성숙해진 수박열매입니다. 줄기-열매-꽃잎,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요.
ⓒ 김강임
 
이번 장마는 태풍까지 몰고 왔습니다. 매스컴에서 당부하는 태풍대비, 사람들은 누구나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장맛비를 무릅쓰고 주말농장에 가 보았습니다. 전문농업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2천여 평의 감귤농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말농장은 온통 장맛비에 젖어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는데 농장은 장맛비에 소란합니다.

 
▲ 구부러진 오이는 아직 애숭이입니다. 꽃잎이 떨어지면 더욱 성숙해지겠지요.
ⓒ 김강임
 
지난 주, 꽃을 피운 오이는 제법 열매가 토실토실해졌습니다. 꽃잎을 달고 있는 오이는 아직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꽃잎이 떨어져 나가야 아주 상큼한 오이의 열매로 성장할 수 있겠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보호를 받을 때는 늘 여리기만 하지요. 가지에 손을 대면 툭하고 떨어질 것만 같은 구부러진 오이처럼 말입니다. 그러다가 성장하여 홀로서기를 할 때쯤이면 아름답게 변신하지요. 성숙한다는 것은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고통이 따릅니다.

지난 5월 초순입니다. 오일장에서 오이 모종 3개와, 수박모종 6개, 가지 모종 3개, 토마토 모종 6개를 사왔습니다. 때마침 비가오지 않은 터라, 감귤농원에 새로 이사 온 모종들은 시름시름 말라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그리워했던 게지요.

농장지기는 물을 그리다가 말라 죽어가는 어린 모종들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농장지기 집에서 주말농장까지는 30분을 달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1주일에 2-3번씩 그 어린 모종에 물을 주기위해 달려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고 말입니다. 사실 오이 1천원어치만 사면 바구니 가득이고, 토마토 2천원 어치만 사면 실컷 먹는데, 기름값 들이며 물 주러 다니는 내 모습이 우스웠던 게지요.

 
▲ 자신보다 무거운 열매를 지탱하는 오이나무. 모성애를 느끼게 합니다.
ⓒ 김강임
 
그렇습니다. 몇 천원 어치만 사면 여름열매를 실컷 사 먹을 수 있지요. 그러나 오이 몇 개 수확보다 토마토 몇 개 수확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주말마다 농장 문을 열면 무럭무럭 자라나는 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귤농장 한 편에서 소곤대는 식물들의 소리는 한편의 교향곡을 듣는 것 같습니다.

제 몸무게보다도 훨씬 무거운 열매를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오이나무의 키는 1m쯤 될까요? 3개의 모종 중에서 2개는 죽고 1개의 오이나무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1주일마다 2개씩 열매가 열려 농장지기에게 행복을 줍니다.

 
▲ 수박꽃이 피었습니다. 장맛비에 피곤을 쓸어내립니다.
ⓒ 김강임
 
노란 수박 꽃이 장맛비에 피곤을 씻어 내립니다. 벌써 시장에는 달덩이 같은 수박이 나와 있는데 어떻게 수박 열매가 열리겠느냐고요? 그러나 농장지기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넝쿨이 뻗어가는 순간순간의 모습,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과정, 그리고 꽃잎이 떨어지며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열매들의 합장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묘미를 느끼기 때문이지요.

 
▲ 함께 어우러져 사는 식물의 세계. 이파리는 장맛비를 막아 주지요.
ⓒ 김강임
 
열매가 장맛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넓적한 이파리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느 한순간 위기에 처할 때 장맛비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듯이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열매의 가치는 이파리가 있기에 더욱 높습니다. 열매는 이파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지요. 장맛비에 쭉쭉 뻗어가는 넝쿨 속에서 말입니다.

 
▲ 토실토실 살쪄가는 토마토 열매, 나무에 지줏대를 세워주었습니다.
ⓒ 김강임
 
토마토 모종에도 어느새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태풍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줏대를 세워주고 이파리가 아플까봐 빗방울을 쓸어줍니다. 이파리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답례를 합니다.

 
▲ 단감열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식물도 사랑을 먹고 삽니다.
ⓒ 김강임
 
농장지기는 열매를 키워가는 단감나무와 노란 열매를 꿈꾸는 감귤열매에도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것처럼,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1주일마다 주말농장에 찾아가 나무에게 눈도장을 찍으면 나무는 눈인사로 화답합니다.

 
▲ 노란열매를 꿈꾸는 감귤열매. 열매는 농장지기의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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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농장지기의 애틋한 사랑을 알았을까요? 주말농장이 갑자기 소란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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