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 백록담 봉우리 '산방산'의 비밀

산행에서 흘리는 구슬땀. 그 땀의 의미를 느껴 본 사람들이라면 늘 산에 미친다. 더욱이 여름산행에서 흘리는 땀, 그 시원함에 젖어보았는가?

제주의 오름을 오를 때에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길을 찾는 것이다. 368개의 오름을 다 오르진 않았지만, 표지판이 없는 오름을 오를 때는 등산로를 찾지 못해 헤맬 때가 더러 있다. 그래서 '오름 등반은 탐방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일까?

 
▲ 종 모양의 종상화산체 산방산.
ⓒ 김강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6번지 산방산. 사람들이 말하는 산방산은 산방산 주차장에서부터 산방굴사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제주 오름 속에 감춰진 산방산을 해부해 보면, 그 길은 힘들고 험난하다. 하지만 험난한 길속에는 신비의 세계가 펼쳐진다.

독자가 남긴 쪽지, 표고 395m를 찾아서

산방산의 묘미는 산방산 뒤쪽으로 오를 수 있는 정상이다. 관광객들은 거의 갈 일이 없지만, 조금 힘든 산책길이라 생각하고 오르면 산방산은 그 수고보다 100배는 더 보답한다. 정상에 올라서 보면 용머리와 해안선 송악산 형제섬, 그리고 멀리 서귀포까지, 환상적인 모습, 지금도 바로 눈앞에 있다. 한번 가 보세요. - 2003년 오마이뉴스 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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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의 봉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 표고 395m지만 등산로는 급경사 입니다.
ⓒ 김강임
 
지난 2003년도에 한 <오마이뉴스> 독자가 내게 쪽지를 보내왔다. 그분이 제시한 길을 걸을 수 있음은 행운이었다.

지난 6월 18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보덕사 입구에 접어들자 오름대장인 오 선생은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행동대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불어대는 오 선생의 호루라기 소리가 산방산 입구에 울려 퍼졌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을 것 같은 날씨, 산방산으로 향하는 길은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 산방산 등성이에 있는 바위가 마치 한라산 영실 1400고지에서 바라본 오백장군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강임
 
산세와 어우러진 대나무 무더기

그러나 제주 오름은 그리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보덕사 등산로를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숲 속은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등산로는 급경사로 이어졌고,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 산방산 암벽식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김강임
 
등산로 주변에는 온갖 양치식물들이 돌 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돌 틈에서 자생하는 식물들과 눈인사라도 나눠야 하는데, 정상을 향한 마음은 다급하기만 하다. 한라산 영실 등산로를 오르는 기분이랄까? 가던 길을 뒤돌아보니 마치 한라산 영실 1400고지에서 바라보는 5백장군의 모습이 산방산 등성이에 앉아 있는 듯하다.

 
▲ 등산로 주변에서 대나무 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 김강임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등산로 한 편에 대나무 무리들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행여 '오름 기슭에 절터가 있었을까? 아니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화산덩어리 속에 대나무가 식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대나무 숲에서 뒤를 돌아다보니 산세와 어우러진 서귀포시 안덕의 마을이 한눈에 시리다.

요술부리는 전설 속 오름

더욱이 종상화산체인 산방산은 바라보는 지점마다 그 모양이 다르다. 안덕면 덕수리에서 산방산을 바라보면 그저 평범한 산 같지만, 화순해수욕장에서 보는 산방산은 우직한 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머리 해안에서 바라보는 산방산은 깎아 세운 바위덩어리가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만 같다. 이처럼 요술을 부리는 산방산은 전설 속의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형화산체 산방산  
 
 
 
▲ 송악산에서 바라 본 산방산
ⓒ김강임

산방산은 표고 395.2m, 비고 345m, 둘레 3780m인 종형 화산체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서 용머리 퇴적층과 이어져 있다. 산방산 용암동 남쪽 절벽 높이에는 풍화혈과 애추가 발달되어 있고, 해식동굴이 바다를 향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산 정상에는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까마귀쪽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고 암벽에는 지네발란, 섬회양목 등 희귀식불이 자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182-5호로 지정되고 있다. - 서귀포시 관광정보 중에서

 
 

산방덕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산방굴의 전설에서부터, 사냥꾼이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잘못 건드려 노한 옥황상제 암봉에 이르기까지, 한라산 백록담과 산방산을 연계한 비밀은 베일 속에 쌓여있다. 특히 산방산의 조면암질이 한라산 백록담의 조면암질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산방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백록담의 봉우리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수수께끼를 던져 주기도 한다.

 
▲ 진지동굴 주변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등이 자라고 있었으며 , 습기가 많았습니다.
ⓒ 김강임
 
산방산 관통하는 진지동굴과 지저귀는 새소리

일제시대의 잔해는 제주 오름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해안절벽에서부터 심지어는 용암덩어리에 이르기까지, 산방산에도 일제시대의 흔적은 어김없이 잔해로 남아있었다.

산방산을 관통한다는 진지동굴은 습기에 젖어 있었다. 진지동굴 앞에는 종상화산체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동굴 안을 들어가 굴속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검은 동굴 모습을 보는 순간이면 늘 몸서리가 쳐진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 진지동굴 앞에서 동굴 속에 숨겨진 역사의 흔적 말하기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해소하지 못하는 역사의 잔해는 왜 이렇게 어두울까?

30분쯤 올랐을까? 표고 395m의 오름을 오르면서 힘들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엄살을 부린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급경사로 이뤄진 산 속에서 길을 찾아 나설 때는 1분도 지탱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이때 여름 산이 주는 보너스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신록, 그리고 화산체가 알몸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다.

용암덩어리의 몸통을 밟고 정상부분에 다다르자, 등산로는 온통 가을빛이었다. 여름에서 느끼는 가을, 떨어진 단풍잎이 차곡차곡 싸여 가을 산을 연출한다. 푹신푹신한 단풍잎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준비해간 삶은 계란과 과일, 커피 한잔으로 허기를 채웠다.

 
▲ 산방산 정상(선대)으로 가는 바위틈입니다. 한사람씩 올라가야하며 발을 헛디디면 사계리 해안으로 떨어질것 같이 아슬아슬합니다.
ⓒ 김강임
 
선대에서 세상을 보니 세상이 바로 내 것이로다!

제주의 화산 중에서 최고로 일컬어진 산방산의 진수는 암골 벽을 타고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가파른 암벽을 올라설 때면 아찔하기조차 하다. 이때 발을 헛디디면 사계리의 포구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따라서 바위틈을 올라 갈 때는 한사람씩 조심조심해서 올라가야만 했다.

 
▲ 정상 바위에 앉아서 바라 본 용머리 해안과 형제섬 모습입니다.
ⓒ 김강임
 
더욱이 산방산은 암괴로 이루어진 종상화산이기에 화구가 없지만, 정상에 솟아있는 큰 바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용암덩어리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정상에 있는 바위는 선인이 앉는 의자로 '선대', '선인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10명 이상이 올라가면 위험하기에 차례를 기다리며 질서를 지켜야 한다.

선대에서 보는 풍경은 비경 그 자체였다. 용암덩어리 앞에 솟아있는 용머리해안과 바다 위에 아스라이 떠 있는 형제 섬. 사람들은 태평양의 바다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카메라 셔터만 들이댔다. 마치 비행기 안에서 창문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랄까.

 
▲ 멀리 송악산과 사계리 해안도로가 보이는군요.
ⓒ 김강임
 
"발을 헛디디면 떨어집니다!" 정상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경고의 메시지를 띄워주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 앞에 사람들은 위험신호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사계리 포구와 연계한 송악산의 모습이 신화처럼 떠 있고, 옹기종기 모여 지도를 이루는 우리들의 삶의 터. 그 터를 일구고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 정상에서 바라본 서귀포시 안덕, 오름과 연계한 삶의 터이기도 하지요. 마치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 같습니다.
ⓒ 김강임
 
산 전체가 용암덩어리인 산방산은 여느 제주 오름과는 다른 식생대를 갖고 있다. 특히 옥황상제가 한라산에서 홧김에 뽑아 던진 암봉의 수수께끼는 '그 암봉의 자리가 바로 백록담이고 뽑아 던진 암봉이 산방산이다'는 전설로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용암덩어리 위에 앉아 구슬땀을 닦아내는 오르미의 마음은 시원하다 못해 알싸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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