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UNESCO)가 인증한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에는 다양한 야생식물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섬 전체가 한라산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제주는 해안 저지대에서 오름과 하천, 곶자왈, 그리고 백록담 정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과 지역에 분포하는 야생식물들이 오랫동안 생태계를 이루며 뿌리 내렸습니다. 멸종위기 식물에서부터 지천에 퍼져 있는 야생식물까지 능히 식물의 보고(寶庫)라 할 만합니다. <제주의소리>가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에 자라는 식물의 가치를 널리 알려 지속적인 보전에 힘을 싣기 위한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를 카드뉴스 형태로 매월 격주로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 (12) 가는잎할미꽃 (Ranunculaceae cernua [Thunb.] Bercht.& J.Presl) -미나리아재비과-

봄을 재촉하는 봄꽃들의 향연이 계속되는 3월의 끝자락입니다. 이제 봄맞이 꽃들은 더욱 풍성한 모습으로 반겨주겠지요. 

오늘은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가는잎할미꽃을 만나 보겠습니다. 제주에서 자라는 할미꽃을 가는잎할미꽃이라 합니다. 다른 종류에 비해 잎이 가늘게 갈라져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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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세복수초, 괭이눈 종류가 피어나고 그 뒤를 이어 제주의 할미꽃인 가는잎할미꽃이 피어납니다. 가는잎할미꽃의 학명을 'Pulsatilla cernua'라 하는데 속명 'Pulsatilla'는 '종모양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종소명 'cernua'는 '고개를 숙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할미꽃의 모습을 연상하면 학명이 적절하게 쓰여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주에서는 양지바른 초지나 풀밭, 특히 무덤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야생화입니다. 이 가는잎할미꽃을 담을 때마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 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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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할미꽃을 7종 정도로 기술합니다. 할미꽃, 가는잎할미꽃, 노랑할미꽃, 산할미꽃, 분홍할미꽃, 동강할미꽃, 긴동강할미꽃이 그것입니다. 제주에 자생하는 할미꽃은 일반 할미꽃에 비해 꽃받침잎이 조금 짧고, 꽃의 색이 진하고, 전초도 작은 편으로 가는잎할미꽃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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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자라는 가는잎할미꽃이나 육지에 나가 담아 온 할미꽃을 보면 구별이 쉽지 않으나, 제주에서 자생하는 할미꽃은 가는잎할미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할미꽃이 주는 이미지만큼이나 슬픈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옛날에 할머니가 어렵게 두 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큰 손녀는 차갑고 냉정한 성격인 반면에 둘째 손녀는 마음이 고운 성격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두 손녀는 둘 다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큰 손녀는 부잣집으로, 둘째 손녀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큰 손녀를 찾아 가지만 외면 당하고 추운 겨울날, 둘째 손녀를 찾아 가다 그만 허기와 추위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돌아 가신 자리에 피어난 꽃이 할미꽃이라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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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는 무심코 지나치는 길에도 가는잎할미꽃을 만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 야생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할미꽃을 약재로, 관상용으로 무분별하게 도채하는 바람에 할미꽃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서쪽의 오름 자락에는 예전에 비해 가는잎할미꽃을 만나기가 어려워진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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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뽀송한 꽃대와 검붉은 꽃을 밀어 올리느라 힘들었는지, 꽃이 피면 수줍게 고개를 숙여 버립니다. 중국에서는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할미꽃의 열매가 달리는 긴 털(암술대)이 할머니의 머리카락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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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중에 가장 곱다는 동강할미꽃도 있는데, 이 동강할미꽃은 1997년 야생화 사진작가인 김정명씨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1998년 그의 사진첩에 이 동강할미꽃이 발표되었지요. 저도 매년마다 이 동강할미꽃을 담으러 가곤 했습니다. 지금 시기에 맞추어 강원도 정선군에서는 동강할미꽃 축제(2018.3.30 ~ 2018.4.1)가 벌어지곤 합니다. 


다른 야생화보다 이 할미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마치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들려 주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따스한 봄볕을 받고 피어난 가는잎할미꽃이 할머니 품에 안긴 손자처럼 마냥 정겹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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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가는잎할미꽃의 변이인 '노란색' 가는잎할미꽃을 만나는 행운도 있습니다. 할미꽃의 종류 중에 노랑할미꽃이 따로 분류가 되어 있지만, 이 야생화를 담아 와서 할미꽃이랑 가는잎할미꽃이랑 비교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처에 가는잎할미꽃이 같이 있는 걸로 보아 가는잎할미꽃의 변이로 추정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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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꽃술까지도 노란색을 띠고 있습니다. 할미꽃의 특징 때문에 수줍게 고개를 숙여 버려 꽃술을 담기가 상당히 어려운 야생화이기도 합니다. 야생화를 곱게 담기 위해서는 야생화의 눈높이에 다가 서야 합니다. 그 눈높이를 맞추려면 어절 수 없이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야하는 수고를 하게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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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에 관한 슬픈 전설 때문인지 할미꽃의 꽃말이 '슬픈 추억'이라고 합니다. <제주의소리> 독자분들에게 어릴적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가는잎할미꽃을 소개해 보면서, 4월에 만날 때에는 향기 가득한 야생화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주의소리> 독자분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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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는 한라산국립공원의 협조로 <제주의소리> 블로그 뉴스 객원기자 겸 자연환경해설사로 활동해온 문성필 시민기자와 특별취재팀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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