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12)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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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출처=교보문고 홈페이지.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더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만약, 수능 시험일에 모든 수험생들이 시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학기 중에 날을 정해서 전국의 학생들이 10일간 학교를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투표권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법령이 가로막힌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전국의 학생들이 단체행동에 돌입한다면 어떨까요?

학생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정치의 대상이지만, 선거를 포함한 정치적 선택에 어떠한 참여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정상은 아닙니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학교를 10일 동안 빠졌을 때 할 거 같은 일에 대해서 쓰고 싶다. 
매일 공부에만 시달리는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고 10일 동안 학교에 안 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학생들은 매일 놀겠지? 그럴 것이다. 
그런 재밌을 거 같은 글을 써보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 어느 중학교 1학년이 쓴 글

세상의 모든 지식인들과 ‘어른’들은 온몸을 던져서 ‘혁명’을 막습니다. 최소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혁명을 피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건강성을 갖춘 혁명을 적극 지지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정치 혁명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 있을까요? 어른들은 학생들의 정치 참여와 정치적 각성을 억지로 막고 있지만 아무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저는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돕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형이 되려고 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 말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새 시대는 찾아온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구시대와 새 시대의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변곡점이 너무 늘어진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우리 역사는 실기(失期)한 자에게는 일호의 가차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요새 말로 ‘한 방에 훅’ 갈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변죽만 울리고 무릎을 꿇었던 총기 규제 프로젝트. 그 쟁쟁한 로비스트의 산맥인 전미 총기 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와 미국 10대의 싸움은 어떻게 될까요? 만약 이 싸움에서 미국의 10대가 승리해서 미국의 총기 규제가 성공한다면 이 혁명은 전 세계의 10대들로 이어질 것입니다. 미투 운동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일본 천엔(千円)권 지폐에 들어간 일본의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 그는 일본의 서울대학교라 할 수 있는 도쿄 제국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섰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2000년도 아사히신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지난 1000년간 일본이 가장 사랑한 작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의 작품 《마음》(1914)은 메이지유신 시대를 대표하며 지금도 일본 교과서의 첫머리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입니다. 

물론 다른 작품에 비해서 구시대적인 것을 많이 담은 낡은 느낌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그려진 5개의 죽음 중에서 3개의 죽음이 사무라이의 정신을 암시한 자살이었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작가는 서양으로부터 강제로 문명화된 일본이 내면과 문명의 승리를 거두려면 자기투쟁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근대정신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근대적인 정신에 일본적인 것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무척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내 과거를 자네 앞에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자네를 존중하게 됐습니다. 예의고 뭐고 없이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어떤 것을 움켜쥐고 싶어 하는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을 갈라 따뜻하게 흐르는 피를 빨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난 살아 있었습니다. 죽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고 자네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죠. 나는 이제 자진해서 내 심장을 갈라, 심장의 피를 자네 얼굴에 끼얹으려 합니다. 내 심장의 고동이 멎었을 때, 자네 가슴에 새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합니다. - 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 3부 「선생님의 유서」 일부
15세 주인공인 ‘나’는 ‘선생님’에게 과거를 이야기 해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이 구절은 ‘선생님’의 답변이자, ‘나’에게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과거 애인을 빼앗길 것이 두려운 청년시절 선생님은 “정신적인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여자 알기를 돌처럼 하던 철학도 K는 이 말에 부끄러워 자살합니다. 시간이 흘러 친구를 죽였다는 자책과 오랜 시간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선생님도 결국 유서를 남기고 자살합니다. 여기다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여 고백하게 만든 ‘나’를 더하면 강력한 정직의 삼각형이 완성됩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어른으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무엇이 부끄럽냐고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을 위해서 좋은 것은 하나도 남겨 주지 못했고, 나쁜 것들만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에게 사회를 물려받고 나면 놀라실 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살아왔는지 고발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로 대표되는 메이지 유신 세대들은 조선을 비롯한 침략 전쟁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이와 달리 자국 중심으로 살펴볼 때 그들은 일본 정신과 서양 정신이 결합된 근대정신을 후세들에게 물려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에 개봉된 한국사 소재의 영화들을 예로 살펴봅니다.

《1987》(2017), 《택시운전사》(2017), 《명량》(2014), 《변호인》(2013), 《남영동 1985》(2012) 등을 보면 수백 만 명에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습니다. 다만, 지난 과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그치고, 천편일률적인 시각에 성찰과 재해석은 부족해 보입니다. 마치 제가 어릴 적 봤던 스티븐 시걸 같은 근육질의 남자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웅 이야기가 조금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과거 역사를 소재로 다뤘지만 깊은 성찰·비판을 통해 현재에 메시지를 주는 <이키루>(1952), <타인의 삶>(2006) 등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욕을 많이 먹을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 사회·세대 중에서 ‘가장 정직하지 않은 어른들’은 1987년 당시 청년이었던 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어울리는 정직한 말이 되어야겠기에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한국’적인 것을 찾아 신나게 짜깁기하세요

일본의 지성인들이 그렇게도 ‘일본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혼신을 기울인 까닭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자 진정한 근대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우습게 여기고, 일본을 조금이라도 두둔하는 발언을 하면 ‘친일파’로 쉽게 욕하지만 일본은 만만치 않은 나라입니다. 특히 근대에 도달하기 위해 쏟았던 열정 만큼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적인 것에 대한 열정은 세계사적으로도 인정받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인과 일본인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웃으로부터 무엇이든 차용했고, 그러면서도 우월감과 문화적 개성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힘든 유연성과 성장능력을 갖추게 된 중세의 유럽과 일본은 1500년 무렵에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 어느 문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문화수준과 문명양식에 도달했다. -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1》 중 일부
조선이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올인’한 반면 일본은 많은 문명 중의 하나 정도로 취급했으니 문화의 ‘포트폴리오’를 만든 셈입니다. 일본이 일본적인 것을 무기로 근대화를 이루었다면, 우리 역시 ‘한국적인 것’으로 진정한 근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껍데기만 근대화되었을 뿐 정신은 아직 전근대적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광복과 건국 전후로 한국적인 것을 포기했고, 조선시대의 선비들도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중국적’인 것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오래 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라’를 주목합니다.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을 했기에 교과서에서는 자주적 통일이 아니라고 기록돼 있기는 하지만 신라만큼 한국적인 것의 전형을 보여준 모델을 찾기 어렵습니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중앙집권화가 가장 늦었고 당시 고급 종교였던 불교 도입도 가장 늦었습니다. 한반도의 남단이라는 지리적 한계도 있었지만 저는 신라적인 토속 문화와 불교, 유교 등의 고급문화를 결합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유교를 받아들이는 데 머무르지 않고 ‘화랑도’로 결합시킴으로써 삼국통일의 기틀을 갖추었죠. 

신라처럼 고급 문명에 대한 짜깁기, 즉 패치워크(patchwork)를 가장 적극적으로 했던 시대를 공부해야 합니다. 패치워크란 ‘헝겊 조각들을 재봉틀로 박아서 서로 붙이는 작업, 즉 짜깁기’(황태연,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말합니다. ‘패치워크 문명론’을 제안한 동서양 철학교류사의 석학인 황태연 교수(동국대)는 ‘융합’과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융합은 화학변화로 인해 자기를 잃어버리는 반면 패치워크는 자기 헝겊조각과 그 색깔이 남아 있습니다. 주자학 역시 패치워크 문명론의 좋은 사례입니다. 

주자는 자신이 대표하는 ‘유학’에 경쟁력을 더하기 위해서 불교와 도교 등 다른 학문 분야에서 주요 이론들을 짜깁기해 ‘신유학’을 창시했습니다. 하지만 신유학 위에 서서 불교와 도교를 ‘허무적멸지도’라고 비난함으로써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죠. 우리 역사에서 보면 ‘서학(西學)’에 대응하는 학문인 ‘동학(東學)’은 유교, 불교, 도교, 그리스도교는 물론 민간신앙까지 당시 모든 문명을 담은 그릇이었습니다. 동학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는 것도 ‘한국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국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들이 한국적인 것을 끼고 승리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동안 면면이 이어져 온 흐름과 새로운 흐름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이 역사의 발전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설 《그 후》, 《산시로》에서 보이듯 반사회적이고 사회비판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캐릭터를 많이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이토록 낡고 전통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그려낸 의도를 이제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이 《마음》을 작가의 대표작으로 삼고 100년 넘게 사랑한 까닭도 알겠습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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