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8) 영평·월평동 수수물과 동새미
 
영평동은 영평상동(寧坪上洞)과 영평하동(寧坪下洞)으로 나뉜다. 

영평상동의 옛 지명은 ‘가시나물’, 영평하동은 원래 전못(前池:앞못)이라 불리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알무드내’라 칭한다. 알무드내는 ‘무드내 아래쪽에 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화북천의 지류인 부록천이다. 

영평동의 설촌 유래가 되는 물은 가시나물이다. 가시나무 아래서 솟는 물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의 명칭이 되었다. ‘가시나물’은 제주중앙고등학교 옆에 흐르는 화북천 월평교에서 남쪽으로 50m에 있는 소(沼)의 물이다. 영평동에서는 화북천을 가시나물내로 불렸다. 또한 ‘알무드내’도 식수로 전못의 물을 사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앞에 물이 있고 하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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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평교 남쪽 화북천에 있는 가시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월평동은 ‘다라쿳’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옛 문헌상에는 한자표기로 별라화리(別羅花里)라 표기한다. 다라는 ‘높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있는 숲이나 덤불이란 의미다. 그래서 다라쿳은 ‘높은 곳 숲이 있는 마을’이라고 말한다. 제주에서는 꾸지뽕나무를 쿳낭이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마을을 형성한 숲에 꾸지뽕나무가 많이 서식했었다고 추정해본다.

영평동에서 대표적인 산물은 설촌의 역사를 간직한 수수물(수수천, 수소못물)이다. 이 산물은 영평초등학교에서 약 1.5㎞ 북쪽인 영암암 입구에 있는 궤(바위동굴을 일컫는 제주어)에서 솟고 있다. 수수물은 물이 삭삭거리며 많이 나온다 하여 수수물이다. 이 물은 사방이 돌담으로 둘러져 있고 조그만 출입문을 통해 궤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다. 물통은 반경 1.5m 정도의 약간 찌그러진 반원형이며 물허벅을 담글 수 있는 정도의 깊이로 식수만 뜰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빨래 같은 걸 하려면 도랑을 통해 흐르는 물을 받아 한다. 특색이라면 물허벅을 부리거나 빨래를 널 수 있도록 물팡은 2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산물은 마치 동굴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도가 가설되기 전까지 봉개, 월평, 용강 사람들까지 이용했던 일대의 귀한 식수로 지금은 이웃한 영천암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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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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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영평동 주민들은 이 산물을 샘이라고 하지 않고 수수천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신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못이라고 했던 것은 물이 마르는 일 없이 늘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오는 물이기 때문이다. 물이 내리는 곳에 못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서 수수못물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용출수에는 제주 섬에 위인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물의 혈을 끊으려 왔던 호종단을 무리치고 산물을 지킨 서귀포시 서홍동 지장샘의 ‘호종단형 물혈설화’처럼 ‘꼬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이란 ‘행기못’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월평동에는 학술적으로 특색적인 용출수인 ‘동새미’가 있다. 동새미는 산물각이란 지명이 남아 있는 첨단과학단지 가는 첨단로에서 영주고로 가는 첨단동길 월평1교 밑 남동 측 벼랑의 암벽에, 수도관 같이 형성된 동혈을 통해 솟아나는 산물이다. 동새미란 명칭은 하천의 동쪽에 있는 바위벽 암반의 틈새에서 용출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 산물은 월평과 영평동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목장지대에 있어 주로 마을이나 집안에서 제사 시 제수로 사용하거나 물이 차서 산물 주변에 물맞이시설을 설치하여 백중날에 물을 맞기도 했다. 지금은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찾아와 굿을 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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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새미 산물터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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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새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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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바 태풍에 무너진 동새미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용출수는 용암으로 형성된 섬의 지질과 지하수 유동이라는 공학적 측면에서 함양된 지하수가 어떻게 유동(흐름)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산물이다. 수도관에서 물이 나오듯이 암반에 수도관을 박아 놓은 것처럼 암석튜브(동혈)에서 물이 솟구쳐 흘러내리고 있는데, 제주 섬의 지하수 생성과 유동을 직접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난 태풍 차바 때 산물을 바치던 큰 바위들이 급류에 의해 떠내려 가 산물 일대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 항구적인 보전차원에서 시급한 복원 대책이 필요하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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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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