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19) 봉개동 조리새미와 절물

봉개무덤의 전설이 있는 이 마을은 지형적으로 곳(산의 짙은 숲)과 굴헝(웅덩이)이 많은 재래의 방목 형태와 자연극복의 의지를 만들어진 대표적인 산간마을(중산간)이다. 봉개악(奉蓋岳) 혹은 봉개오름(봉아오름)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봉개란 명칭은 봉개악리에서 ‘봉가(奉哥)’ 성을 가진 사람이 마을에 살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봉개동을 대표하는 산물로 이익(李翊, 1629~1690)의 제자인 ’명도암(明道庵) 김진용’이 식수로 마셨다는 조리새미이다. 명도암 선생은 제주 교육 기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장수당(藏修堂)을 세워 영재육성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조래천, 명도암물이라고도 하는 조리새미는 명도암 마을의 설촌 내력이 담겨 있는 산물이다. 샘은 안(內)새미와 밧(外)새미라는 두 개의 오름으로 형성된 형제오름(형제봉) 북측 기슭에 있다. 산물은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 안에서 솟아나, 아래쪽 논으로 흘러들어 이 일대에서 벼농사를 할 수 있게 해 준 물이다.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어 보호한 것은 그늘의 물은 여자물인 암물로서 양지에 있는 남자물인 숫물보다 맑고 달며, 물이 변하지 않고 항상 처음의 물맛을 유지한다는 평가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산물은 배앓이 등을 치유하는 약수의 조건을 갖춘 물이다. 지금은 이 산물로 산물주변을 대표적인 산지형 늪지가 되었다. 그래서 옛 부터 이 산물은 설사를 치유하는데 효험이 있는 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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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새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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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물 입구 조리새미가 만든 습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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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궤안에 있는 조리새미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조리새미의 산물터는 ‘쌀을 이는 조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①식수로 이용했던 용수구 ② 쌀, 채소 씻는 통(목욕용) ③빨래터(세답통) ④우마용 통 등 4단계의 물이용 시설로 제주지역의 전형적인 물이용 형태를 잘 간직한 산물이며 샘 하부에는 논농사를 한 흔적도 남아 있다.

명도암 조리새미에서 남측으로 가면 제주시가 운영하는 절물자연휴양림이 있다. 휴양림 안에는 탐방객이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절물이란 산물이 있다. 이 용출수는 절물오름(대나오름, 단하봉)에 있는 약수로 여기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절 가까이 있는 물’이라서 절물로 부른다. 지금도 이 산물 곁에 약수암이란 조그만 절이 있다. 절물은 평지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이 아니라 절물오름이 큰 봉오리인 큰대나오름 기슭 벼랑에서 수평으로 자연 용출되어 분수처럼 원형 통 안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제주 오름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비유한다면 절물은 샘솟는 젖샘이다. 

예부터 절물은 취락지인 마을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물맞이와 위장병을 치료하는 약수물로 유명했다. 특히 부녀자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을 전후하여 음력 칠월 보름날인 백중날에 ‘물맞이’하면 신경통, 허리병, 냉병, 부수럼 예방 등 만병에 약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복더위도 씻을 겸 움막을 지어 이곳 절물에 며칠간을 기거하며 병을 치료했던 영특한 약수였다. 지금은 절물휴양림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청량한 제주산물을 마시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약수터와 연못을 만들어 붕어들이 서식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물로 인해 절물자연휴양림은 계절에 관계없이 휴식과 안식을 주는 ‘파워스폿(Power Spot)’으로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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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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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 약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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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이 만든 연못.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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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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