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는 알겠지요. 이 개미를…

 

처음엔 ‘죽어가는’ 개미로 보였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의 중요성을 짧은 문장에 잘 함축시킨 이 말은 ‘우리 시대의 탁월한 문화전도사’로 꼽히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널리 보급시켰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유 청장은 문화유산 답사붐을 불러일으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비롯하여 추사 김정희의 족적을 따라간 ‘완당편전’등 ‘우리 시대의 탁월한 문화전도사’답게 깊이있는 책들을 다수 저술했습니다.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그의 말도 일부 사람들에겐 종종 회자되곤 하는 ‘유명한 말’이 됐습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추사 적거지에 대한 기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사의 논점이 약간 엇나갔습니다.

▲ 송현우 화백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느낀다’는 이 말은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유 청장의 순수한 작품(?)은 아닙니다. 채근담에도 소개 돼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의 출처가 어디건간에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유 청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나아가 ‘느끼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도 느끼게 됩니다.

지난 기사에서 소개했듯이 베르베르가 말한'개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개미의 집을 부수지 않게 된 것은 열두 살 무렵이었다'는 그의 고백의 ‘진정성’도 십분 이해합니다.

베르베르 역시 개미에 대해 아는 것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느꼈고, 느낀 만큼 개미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제 딸 아이가 개미를 밟아 죽였을 때(물론 실수였지만) 호통을 친 적이 있습니다.
딸 아이의 큰 눈망울에서 뚝뚝 떨어지던 눈물.

그리고 딸 아이의 말 ‘개미야,미안해’
개미를 볼 때 마다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개미야,미안해’

각설하옵고,오늘은 ‘색 다른’개미를 소개하겠습니다.

보통 개미의 색은 통상 검정색이거나 짙은 노란색인데(제가 아는 한) 이 놈들은 아주 ‘엉뚱한’ 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죽기 전 말라 비틀져가는’개미로 알았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이 놈들에 대해 아는 바 없으니 느낌도 색다릅니다.

이놈들의 정체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아는 만큼 느껴보고 싶습니다(베르베르라면 단박에 알텐데...)


그러나 '색 다른'개미였습니다.


'돌연변이'거나 '죽어가는' 놈이라 생각했던 이놈은 나뭇잎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에도 이놈들의 '형제'들이 있더군요.


이놈들 역시 다른 개미들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지라, '포커스'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알'을 나르고 있습니다.


이 놈들의 정체는?(아시는 분은 설명 좀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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