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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청 소속 공무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부경진씨가 '마흔'이 넘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화제] 관광진흥과 부경진 주무관 <영포자가 꿈꾸는...> 인기몰이..."40대 내 모습에 만족"

전 국민의 유행어가 돼버린 ‘수포자’와 ‘영포자’. 수학과 영어를 포기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특히 영어는 세계공용어나 다름없는데도 직장인은 물론 전 국민을 괴롭히는(?) 존재가 된지 오래다.  

영어 전공도 아니고, 해외 유학 경험도 없는 40대 직장맘. 남편과 함께 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 제주의 한 평범한 공무원이 5년간 자신의 블로그에 써온 영어 관련 글을 모아 펴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주인공은 제주시청 관광진흥과에 근무하는 부경진 주무관(41.행정 7급). 

그의 책 ‘영포자가 꿈꾸는 영어 원서 쉽게 읽기’는 어느새 국내 최대 서점으로 꼽히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와 여의도 IFC몰 영풍문고 자기계발 부문 베스트셀러로 떡 하니 자리 잡았다.  

톡톡 튀는 제목 때문일까. 하지만 부 씨는 자신의 책 인기 비결에 대해 겸손하게 말했다. 

"평범한 직장 여성의 글이랄까...책이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어진 미소. 

부씨는 책에서 영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영어는 학창 시절에는 시험 때문에, 취직해서는 승진 때문에, 엄마가 되어서는 ‘엄마표 영어’라는 이름으로, 또는 할머니가 되어서는 ‘할머니표 영어’라는 표현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주변을 맴돌며 평생을 괴롭히는 듯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 젊든 나이가 들었든 고민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부씨에게도 영어는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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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의도 IFC몰 영풍문고 자기계발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 부경진씨의 책.

2012년 35살에 ‘사춘기’가 찾아왔다는 부씨. 그만큼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 어느순간 '마흔살의 내 모습'을 고민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부씨에게 올레길 걷기, 등산, 여행 등을 권유했지만, 그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책 읽기를 택했다. 처음엔 책 표지를 종이로 가리고 다녔다. 주변에서 ‘수준 낮은 책을 읽는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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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자기계발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 부경진씨의 책.
문득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영어. 책을 읽으면서 영어 실력도 높이는 방법으로 영어 원서(原書) 읽기를 결심했다. 

스스로 영포자라고 표현할 만큼 영어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늘 공책도 가지고 다녔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 영어 사전을 펼치고는 펜을 끄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간 영어 원서를 읽고 난 뒤 느낀 점 등을 자신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baobabs ) 에 올렸다. 그러던 2017년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책 출판 의사를 물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일종의 터닝포인트였다. 

업무와 육아에 바빠 출판사 대표를 서울에서 딱 1차례 만났다. 대부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2월5일 초판 인쇄가 시작됐다. 책이 세상에 나온 건 2월12일. 직장맘의 차분한 글은 금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두 달도 안돼 국내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3월에는 2쇄가 시작됐다. 요즘 출판시장은 그야말로 침체기. 통상 1쇄로 약 5000부를 발행하지만, 다 팔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2쇄 자체만으로도 부씨의 책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6일 점심시간을 쪼개 <제주의소리>와 만난 부씨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루이스 새커(Louis Sachar)의 ‘못 믿겠다고?(THERE'S ABOY IN THE GIRLS'BATHROOM)'에 나온 문구를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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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씨가 자신의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으로 183~186쪽을 가리키고 있다. 부씨가 마음에 들어한 표현은 피아노 건반 88개, 알파벳 26개, 한글자모 24개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이다.

“책들은 모두 달라요. 하지만 사실 모두들 같은 단어를 사용해요. 책이 하는 일은 단지 26개 알파벳을 다르게 배치하는 것인데, 서로 다른 것을 얘기해요"(못 믿겠다고 中)

“모두 똑같이 88개의 건반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사람에 따라 이토록 화음의 여운이 달라지다니, 깜짝 놀랄 정도다. 한정된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부씨는 “한글도 자모 24개 배열을 통해 서로 다른 내용이 서술된다는 말이다. 인상 깊었다. 24개 자모를 이리저리 배열하다보니 책까지 출판하게 됐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하루가 고단해도 시간을 쪼개며 글을 썼다. 삶의 활력소가 됐다. 활력을 되찾으니 가족관계부터 사회생활 등에 더 열정을 가질 수 있었다. 천천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의 척도가 넓어진 기분이다”라고 발간 소감을 밝혔다.

부씨는 “영포자지만, 앞으로도 영어 원서를 읽어 나가려고 한다. 책 머리에서 ‘마흔의 내 모습’이 고민된다고 했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 나의 모습은 마음에 든다”고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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