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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공간 오이의 4.3창작극 <4통3반 복층사건>.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리뷰] 예술공간 오이 4.3창작극 <4통3반 복층사건>

70년 세월이 흐른 올해 제주4.3은 기억에 남을 많은 장면들이 있었다.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수도 중심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펼쳐진 4.3 국민문화제, 제주문예회관 개관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모여 LED 동백꽃을 만든 4.3전야제 등이 스쳐 지나간다.

현재 진행 중인 탐라미술인협회, 제주도립미술관, 제주4.3평화재단의 4.3전시와 4월 27일로 앞둔 제주작가회의 전국문학인 제주대회도 남아있다. 여기에 민·관 영역에서 많은 4.3 예술행사가 열리면서 70주년이란 중요한 시기를 기념했다. 

이 중에서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의 창작극 <4통3반 복층사건>은 독자들에게 꼭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한 공연이다.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올해 세 가지 연극 작품을 선보였다. 놀이패 한라산의 마당극 <사월굿 헛묘>(3.31), 민요패 소리왓의 소리굿 <한아름 들꽃으로 살아>(3.31~4.1), 그리고 <4통3반 복층사건>(4.2~4.3)이다.

앞서 놀이패 한라산과 민요패 소리왓의 작품은 4.3 예술운동의 역사를 묵묵히 써 내려가는 저력을 증명하듯, 공연장인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을 빈자리 없이 가득 메우며 성황리에 치렀다. 

두 작품은 마당극, 소리굿이라는 특성에 맞게 실제 4.3 역사를 상당부분 재현한다. 이에 반해 <4통3반 복층사건>은 정극(正劇)에 가깝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다소 특이한 구성이다. 

# 땅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4통3반 복층사건>은 70년 전 제주와 오늘 날 대도시, 상반된 두 공간이 하나의 무대에 공존한다. 세트 아래 쪽은 4.3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제주, 위쪽은 2018년 제주가 아닌 서울 같은 대도시다.

위에는 냉혹한 현실 앞에 결혼, 삶의 의지마저 포기하며 표류하는 청춘들이 있다. 바로 아래는 생사의 갈림길이 종이 한 장보다 얇은 흡사 생지옥이지만, 그 안에서도 사랑과 희망이 피어난다. 

정뜨르 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 변하고
하루에도 수만의 인파가 시조새를 타고 내리는 지금
‘저 시커먼 활주로 밑에 수백의 억울한 주검이 있다!’
‘저 주검을 이제는 살려내야 한다!’라고
외치는 사람 그 어디에도 없는데
샛노랗게 질려 파르르 떨고 있는 유채꽃 사월
활주로 밑 어둠에 갇혀 
몸 뒤척일 때마다 들려오는 뼈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빠직 빠직 빠지지직
- 김수열의 <정뜨르 비행장> 중에서
제주시인 김수열은 4.3학살터 제주공항(옛 정뜨르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마다, 두터운 아스팔트 아래 깔린 희생자들의 아우성이 들린다고 말했다. <4통3반 복층사건>은 이 같은 ‘공존의 부조화’를 빛과 어둠, 그리고 '꺼냄'의 연출을 통해 표현한다.

극 중반, ‘쿨(cool)’한 성격을 넘어 염세주의에 빠진 청년 백수 캐릭터에게 대학 동아리 선배는 4.3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 장면에서 작품은 어떠한 대사도 사용하지 않는다. 희미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어둠 안에서 그 선배는 무대 곳곳을 다니면서 숨어있던 70년전 제주사람들을 손 잡아 꺼낸다. 4.3 영령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그들 손에는 작은 빛 하나가 켜진다. 

무거운 현악기 연주 음악과 함께 한 동안 이어지는 꺼냄은 '이 땅에 그들이 잠들어있다'는 침묵의 외침이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70년전 대학살의 순간이 ‘세계7대자연경관’, ‘유네스코3관왕’, ‘힐링의 섬’ 제주에 엄연히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배 역할을 연기한 오상운 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가 이 장면을 마치고 감정에 복받쳐 한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기자에게 "오랜만에 연기를 하니..."라고 웃으며 무안한 듯 해명을 남겼지만, 다른 말 없이 충분히 이해가 될 만큼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연출을 종종 선보였던 전혁준 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의 감각이 이번에도 잘 발휘됐다고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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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의 교훈, ‘살다보면 살아진다’

<4통3반 복층사건> 작품 속 옛 제주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죽임 당한다. 4.3 당시 90%에 가까운 대다수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군경인지, 나머지 10%의 무장대인지, 누군가에게 숨졌는지는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무차별적인 학살의 광풍에 휘말려 목숨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평범한 도민들의 솔직한 감정을 충실히 반영한다. 

그 감정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날 청년들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가치로 변모한다. 바로 생명 존중, 상생, 평화의 가치다.

동아리 선배는 잠들기 전에 시 한 편을 꼭 읽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도전한다. 이에 반해 청년 백수는 유서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며, ‘정치하는 놈은 다 똑같은 x새끼’라고 선배에게 일갈한다.

<4통3반 복층사건>은 모든 일에 비딱한 청년 백수의 심정을 애써 고치려하지 않는다. ‘4.3 같은 거대한 아픔에 내가 겪은 아픔은 너무나 하찮게 보인다’는 외침은, 경제난과 극단적인 경쟁 속에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5포 세대(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로 치닫는 이 시대 청년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대학 동아리 선배 역시 이런 토로에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청년 백수가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냉소의 끝을 달리는 순간, 연극은 2018년과 4.3을 연결시켜 답을 내놓는다. 만취한 또래 여성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백수를 다짜고짜 때려눕히고는 ‘살 필요가 없어? 살아갈 이유를 느끼게 해주겠다’며 힘차게 뺨을 때리고 공연은 막을 내린다. 만취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아래층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끝내 눈 감은 제주여성을 연기했다. 

<4통3반 복층사건> 배우들은 윗층과 아래층,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캐릭터 간에 묘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대표할 만 한 사례가 바로 이 부분이다.

4.3으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다른 사람의 도움 덕에 조금 더 살 수 있던 이 여성은 “나 하나에 여러 사람 목숨이 붙어있다...더 이상 울지 않겠다. 먼저 세상 떠난 사람들 만나는 날에 못다 흘린 눈물을 쏟겠다”고 아래층에서 다짐한다. 그리고 다른 캐릭터로 분해 위층으로 올라와 백수 청년의 뺨을 후려친다. 

그 손찌검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런 나날이어도 끝까지 살아남아라', '넌 소중한 존재다', '네가 숨 쉬는 그 1분, 1초가 3만명의 제주도민이 간절하게 바라던 그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살아서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4.3이 오늘 날 청년 세대에게 말하고픈 당부가 실려있다. 그렇기에 효과음까지 더해 '짝!'하는 뺨 갈기는 소리가 공연장에 울리는 순간, 윗층과 아랫층의 시간은 비로소 하나로 이어진다. 4.3은 잊혀지는 과거가 아닌, 현재까지 계속 울림을 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4통3반 복층사건>이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건, 4.3을 현대적인 눈높이로 맞춘 시도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4.3 때 10살 미만이었던 어린아이가 어느덧 70~80세가 되는 시기가 됐다. 이번 70주년에 유독 많은 힘이 실렸던 것도 실 체험 세대들이 생존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면이 크다. 그렇기에 4.3의 핵심 과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진상규명과 함께,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 될 끔찍한 역사를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여부다. 

<4통3반 복층사건>은 4.3의 메시지를 기존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전달하는 연극 예술이다. 현 시대의 고민과 4.3을 연계시킨 노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감정이 슬픔·고통 일변도로 흐르는 걸 경계하면서 ‘웃음’을 놓치지 않는 건 고난이도의 작업이다. 영화 <지슬>과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보이듯 웃음은 고통의 역사가 간직한 메시지를 한 층 더 키운다. 윗층을 괴롭히는 소음의 원인이 미국인들의 파티라는 설정은 4.3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해 흥미롭다.

뒤늦은 소개 기사를 반성하는 찰나, 5월에 다시 공연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4.3을 새롭게 기억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연극을 추천한다.

<4통3반 복층사건>은 예술을 통한 4.3의 미래 세대 전승에서 의미있는 실마리다.

문의: 예술공간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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