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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세월호 참사 4주기 촛불문화제 시민들 수백명 동참...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아직 미수습

네 번째 봄이 찾아왔지만 제주도민들은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았다. 제주로 향하다 침몰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최종 목적지인 제주에서 촛불이 다시 타올랐다.

416연대제주모임 기억공간 re:born은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현장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수백여명의 시민들이 몰려 4.16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 헌화하고 분향했다.

촛불문화제는 강정합창단의 노래로 시작했다. 볍씨학교 학생들은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생사를 달리한 단원고 학생들의 아픔을 마임퍼포먼스로 표현해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바다에 빠진 학생들이 허우적대는 모습과 하늘나라로 간 단원고 학생들이 소복을 입고 살아남은 학생들과 만나 껴안은 장면에서는 시민들도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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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민이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열린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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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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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전명선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안순옥 4·16연대 공동대표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진상규명을 위한 도민의 관심을 당부했다.

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4년만에 비로소 고인들을 모시고 영결식 거행했다”며 “합동영결식이야 말로 전 정권에 대한 처벌과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와 함께 연대한 국민들이 있어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우리는 고귀한 아이들의 희생 앞에서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안 공동대표는 “4년 전 그날 우리는 잔잔한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며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을 생각하며 오열하고 슬퍼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는 세월호 참사의 목격자”라며 “박근혜 정부가 구조를 방기한 거짓과 침몰 원인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침몰 당시 단원고 학생들을 구한 파란바지의 의인 김동수씨 부인 김형숙씨도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김동수씨는 병원에 입원해 이날 부인과 함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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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 당시 단원고 학생들을 구한 파란바지의 의인 김동수씨의 부인 김형숙씨가 현장 발언을 하고 있다. 김동수씨는 병원에 입원해 현장에 함께하지 못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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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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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김씨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세월호 영상과 마임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며 “남편은 4월이 되면 유독 힘들어 한다. 결국 병원까지 입원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유족들이 계신데)생존자 가족이 뭐라 할 말이 있겠나. 제 남편이 살아와서 감사하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시민이 힘내라고 외치자 김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파란바지 의인 김동수씨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8분 세월호 침몰이 시작되자 선내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고 단원고 학생 20여명을 끌어 올려 구조했다.

더 많은 학생을 구하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더 많은 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4년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월호는 2014년 4월15일 밤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다 이튿날 아침 전남 진도 맹골수도 해역에서 침몰했다.

당시 승선자는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일반승객 104명 등 모두 476명이었다. 침몰과정에서 172명이 구조되고 295명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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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주기 세월호 참사를 앞둔 전남 완도군 팽목항의 모습.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팽목항에는 여전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내걸려 있다. ⓒ제주의소리 <오영훈 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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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주기 세월호 참사를 앞둔 전남 완도군 팽목항의 모습. 빨간 등대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다. ⓒ제주의소리 <오영훈 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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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주기 세월호 참사를 앞둔 전남 완도군 팽목항의 모습.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팽목항에는 여전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내걸려 있다. ⓒ제주의소리 <오영훈 촬영기자>
9명은 여전히 미수습자로 남아 있다. 정부는 선체 수색과정에서 4명의 유골을 수습했다. 실종자 중 제주도민은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등 모두 3명이다.

도내 한 호텔에서 근무했던 이씨의 경우 2017년 5월22일 세월호 선내 3층 배꼬리 부분에서 옷과 구명조끼를 입은 유골이 발견됐다.

권씨와 혁규군 역시 제주에 주소를 두고 있다. 권씨는 사고 당일 아내 한윤지씨와 혁규군, 지연양 등 가족들과 제주로 이사를 오던 길이었다.

사고 직후 베트남 출신인 아내 한윤지씨는 숨진채 발견됐다. 동생 지연양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준 혁규군과 권씨는 4년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아직도 제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막내 지연이는 친척들의 보호를 받고 육지부로 주소를 옮긴 뒤 4년째 아빠와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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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4주기 세월호 참사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제주시청 앞 인도를 한 시민이 걷고 있다. 그 뒤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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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제주의 기억과 약속의 다짐’을 주제로 세월호 참사 4주기 제주지역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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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주기 세월호 참사를 앞둔 전남 완도군 팽목항의 모습. 빨간 등대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다. ⓒ제주의소리 <오영훈 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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