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년7개월간 벌어진 사건...정명(正名) 쉽지 않아"
"제주4.3, 7년7개월간 벌어진 사건...정명(正名) 쉽지 않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MG_0847.JPG
▲ 김종민 전 위원이 애월고 미술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4.3 청소년아카데미 강연을 하고 있다.
[4.3청소년아카데미]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 애월고에서 세 번째 강연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추도사 내용으로, 제주4.3 피해자 고(故) 김태생씨 얘기다.

김씨는 4.3 당시 삼양리(지금의 제주시 삼양동) 학살극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다. 토벌대는 김씨의 아내와 부모는 물론 처가 식구들까지 폭도 가족이라며 몰살시켰다. 사태가 조금 진정된 후 은신처에 나온 그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에서 총상까지 입은 그의 군번은 0310413. 일부가 주장하는 4.3 폭도이자 국가유공자인 셈이다.

4.3 70주년을 맞아 <제주의소리>가 마련한 '찾아가는 4.3청소년 아카데미'가 17일 오후 2시 애월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라는 주제로 애월고 1~2학년 미술과 학생 80명이 함께한 가운데, 토크콘서트로 진행됐다. 강연자는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기자 출신인 김 전 위원은 1988년부터 4.3 관련 기획기사를 무려 456편을 쏟아냈다. 자타공인, 명실상부 제주4.3 최고의 전문가다. 30년간 생생한 증언 확보를 위해 만난 4.3유족만 7000명이 넘는다.

최근 4.3 정명(正名)운동이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사건과 항쟁 등등. 김 전 위원은 “4.3 정명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IMG_0836.JPG
▲ 애월고 미술반 학생들이 김종민 전 위원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4.19혁명과 6월민주화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대부분은 10일 정도로 소요사태가 마무리됐다.

반면, 제주4.3은 1947년 3월1일을 시작으로 1954년 9월21일 한라산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장장 7년 7개월에 걸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다.

김 전 위원은 “1954년 9월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됐다. 4.3 발발 원인이 된 1947년 3월1일 이후 한라산은 아무나 입산할 수 없었다. 1954년을 4.3이 끝난 시점으로 보는 이유다. 7년 7개월에 걸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19혁명이나 6월항쟁, 5.18 등은 비교적 기간이 짧아 성격을 규정하기 쉽지만, 4.3의 경우 7년 7개월간 여러 고비가 있어 정의가 쉽지 않다. 탄압의 국면이 있었고, 항쟁의 국면도 있었다. 또 수난의 국면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은 “4.3 당시 희생자의 약 10%는 무장대에 죽임을 당했다. 그 중엔 경찰 가족도 있고, 군·경과 아무 관계 없는 사람도 있다.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었다. 그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도 헤아려야 하는데, 4.3을 항쟁으로 규정하면 무장대에 의해 숨진 무고한 민간인이 항쟁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4.3 7년7개월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면 안된다. 개인사, 가족사 등을 넘어 길게 호흡해야 한다. 세월이 흘러 후세가 역사적 관점으로 제대로 정명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 전 위원의 특강은 4.3이 발발하게 된 시대 상황 설명에 집중됐다. 특강이 끝나고 방송인 오한숙희 사회로 애월고 학생들이 4.3에 대해 묻고, 김 전 위원이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4.3 70주년을 맞아 기획된 청소년 아카데미는 제주중앙여고, 제주제일고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오는 6월께에는 미술로 4.3을 널리 알린 강요배 화백과 이날 청소년 아카데미를 수강한 애월고 미술과 학생들의 만남도 예정됐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6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6
남로당 놈들은... 2018-04-30 17:08:12
전문가야 !
그대는 무슨 전문가인가 ?
그대가 전문가라면
1.남로당의 짖거리때문의 생겼던 일의추억
2.군경의 소탕작전을 하지 안았더라면
3.소탕작전 으로의 억울한 죽음과, 남로당 놈들 때문에 희생당한 억울한희생을..
뭐라고 ??? 남로당 놈들이 국가유공자 ?
125.***.***.83

산폭도 2018-04-18 09:30:37
그러면 KBS 제주방송국을 습격하여 숙직하던 방송과장과 19살, 18살의 청년을 선흘곶까지 납치하여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사라종 등대지기가 무슨 죄가 있디고 죽창으로 무참히 찔러 죽였느지 답변 바란다.

죽창으로 찔러 줌깅을 당하는 그 과정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고통 고통 고총

천인공노할 범죄집단인 산폭도들의 만행은 또 그걸 가지고 지금껏 우려먹는 너는 나중 김달삼과 이덕구의 졸개일 뿐의 자리에 있을 것이나 ?

그만 우려멱고 착한 사회에 함게 하자
116.***.***.218

맑음 2018-04-18 07:23:51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있게 방향을 제시하고 잘잘못을 구분못하는 사람은 마이크를 잡을 자격이 없다고 본다
7년7개월이 무슨 촌각처럼 언어유희는 흘러가는 바람처럼 느껸진다
바른이름 하나 제대로 만들지못한 어른이들이 부끄러움을 스스로 자인하고 속죄해야한다
죽인자와 죽은자의 원인도제대로 구분못한 재판은 필요하질 않다
폭도는 폭도일뿐이다
불쌍하게 회생된 영혼을 위로할 의무가 있을뿐이다
폭도의 행태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앞으로 이런일이 발생하질 않도록 사전교육이 필요할 따름이다
116.***.***.203

또 아쉬움 2018-04-18 02:03:14
"4.3을 항쟁으로 규정하면 4.3 당시 숨진 군·경이 항쟁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뭐가 어쟀다는 말인지....
군경이 항젱의 대상이 안되는 절대적인 이유는? 법인이 따로 있나?
당시 공격과 전투의 대상은 누구였는지 역사적 사실은 무엇인지... 도대체 뭔 말이여...?
27.***.***.7

좌익모험주의 2018-04-18 00:07:55
항쟁으로 제대로 정명이 되기 위해서는
4월 3일 김달삼 등 소수의 소장파 좌익모험주의 봉기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의 무모한 무장봉기가 낳은 문제도 있고, 그들의 돌발 행동을 47년 3월 이후 발생한 제주항쟁의 중심으로 포장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좌익모험주의에 대한 냉정한.평가가 있을 때,
학살의 진실과 항쟁의 의미도
자리잡을 수 있다.
221.***.***.66

아쉬움 2018-04-17 20:12:10
4.3을 연구하고 그 역사를 규명하시는데 노고가 많으셨는데,
"세월이 흘러 후세가 역사적 관점으로 제대로 정명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
지금의 역사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건지~~?
210.***.***.254